백신 쥐고만 있는 美... 글로벌 대란 '책임론'

백신창고 꽉 찼는데 수출 막는 美... 글로벌 백신 대란 ‘책임론’ 대두

입력
2021.04.26 06:00
수정
2021.04.26 06:51
3면
구독

국방물자생산법으로 백신 완제품·원료 수출 통제
'백신 기지' 인도 생산 차질 우려… 아프리카 직격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일 백악관에서 코로나19 대응책을 설명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일 백악관에서 코로나19 대응책을 설명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지구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고통받는 가운데 미국이 백신 독점과 수출 통제로 ‘글로벌 백신 대란’을 악화시켰다는 책임론이 일고 있다. 미국의 백신 패권주의 탓에 백신 공급망이 막혔을 뿐 아니라 ‘세계의 백신 공장’인 인도는 직접 타격을 받아 생산 차질 우려가 나날이 커지는 상황이다. 인도발(發) 백신 위기는 아프리카 빈국에서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해외에 보낼 만큼 백신이 충분하지 않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은 24일(현지시간) 기준 인구 40%가 백신을 최소 한 번 이상 맞았다. 일부 주(州)는 16세 이하까지 접종 대상을 넓혔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가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일주일간 하루 평균 접종 건수는 286만회로 전주(338만회)에 비해 확연히 줄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백신을 맞았다는 얘기다. 접종자가 없어서 폐쇄되는 접종센터도 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백신 완제품은 물론 원료와 설비까지 국방물자생산법을 적용해 해외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인도에선 한 달에 백신 1억6,000만개가 생산되는데 미국에서 37개 핵심 원료를 받지 못하면 공장이 즉시 가동을 멈추게 된다. 세계 최대 백신 생산업체인 세룸인스티튜트 아다르 푸나왈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원료 수출 금지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개발도상국 백신제조사 네크워크’ 사이 프라사드 책임자는 “백신 한 묶음(Batch)을 만드는 데 60~180일이 소요된다”며 “원자재 공급이 중단되면 백신 생산 기간이 길어질 뿐 아니라 생산 라인이 한번 멈춰서면 재가동하는 데도 시일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단적인 예로 화이자 백신은 19개 국가, 87개 업체로부터 280개 원료를 조달하고 있는데 미국의 수출 통제로 최근 유럽 백신 회사들이 위기를 겪었다.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원자재가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인도 생산량이 줄어들고 결국 빈국에 백신이 공급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조치가 빚어낸 결과는 끔찍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달 2일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아부자 국제공항에 도착한 코로나19 백신. 아부자=AFP 연합뉴스

지난달 2일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아부자 국제공항에 도착한 코로나19 백신. 아부자=AFP 연합뉴스

실제로 백신 위기는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가뜩이나 백신 물량이 달리는 상황에서 인도가 감염자 폭증에 대응하려 백신 수출을 일시 중단한 탓이다. 빈국에 백신을 공급하는 백신 공동 구매ㆍ배분 프로젝트 ‘코백스’는 세룸인스티튜트로부터 초기 물량 71%를 받을 예정이었지만 현재까지 4,300만회분밖에 못 받았다. 올해 목표량 20억회분 중 2%에 불과하다.

그 피해는 아프리카에 집중되고 있다. 아프리카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전체 13억 인구인 아프리카엔 백신 3,600만회분이 공급됐고 1,500만회 접종됐다. 사하라 사막 이남 국가엔 고작 600만회분이 공급됐는데 미국의 한 개 주가 받은 물량보다도 적다. 보츠나와에선 일부 지역에서 접종이 중단됐고, 케냐는 1,2차 접종 간격을 8주에서 12주로 늘렸다.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나미비아와 케냐 같은 나라에선 현 상황을 두고 ‘백신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 정책)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주요 생산국이라는 사실도 미국 책임론에 설득력을 더한다. 미국은 이 백신에 대해 사용승인을 하지 않아 수천만회 분량을 쌓아뒀으면서도 가난한 나라들의 도움 요청은 외면하고 있다. 아프리카보건연구소 윌럼 하네콤 교수는 “도덕적 의무를 넘어 실질적으로 전 세계 감염병 확산을 통제하지 않을 경우 결국엔 부유한 나라들에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표향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