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사태' 재현될 수도"... 핵폐기물 '원전 내 저장'에 언급된 이 사건

입력
2022.01.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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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2차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본계획 의결
원전 소재지 반발..."과거 갈등 재현될 수도" 우려
2003년 부안서 주민 간 의견 대립
군수 집단폭행 사건으로 비화돼
1년 2개월 끌다 '부지 재선정' 결정
1990년대 안면도·굴업도서도 반발
'과학적 근거' '투명한 정보 공개'
뼈아픈 교훈 얻기까지 19년 걸려

제10회 원자력진흥위원회 회의에서 '제2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이 의결되자 원전소재지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중간저장시설 마련 전까지 사용후핵연료의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도 확정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부안 사태'가 재현될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사진은 김종규 당시 부안군수 폭행사건을 다룬 2003년 9월 10일 자 한국일보 3면 머리기사.

제10회 원자력진흥위원회 회의에서 '제2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이 의결되자 원전소재지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중간저장시설 마련 전까지 사용후핵연료의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도 확정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부안 사태'가 재현될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사진은 김종규 당시 부안군수 폭행사건을 다룬 2003년 9월 10일 자 한국일보 3면 머리기사.

지난달 27일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10회 원자력진흥위원회(원진위) 회의가 '제2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관리 기본계획'을 의결했습니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 사용후핵연료 처리시설 부지를 선정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습니다. 두 차례 지역 주민의 의사를 확인하도록 의무화했죠.

부산·울산·전남·전북 등 원전이 있는 지역의 광역단체 행정협의회는 그러나 "원전소재 지역주민과 소통 없었다. 전면 철회하고 원점에서부터 다시 수립하라"며 기본계획에 반발했습니다. 중간저장시설이 마련되기 전까지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부지 안에 저장(임시저장)하도록 하는 내용도 확정됐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그날 부지 선정 절차 착수 후 20년 내 중간저장시설을, 37년 내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결과적으로 원전 소재지에서는 최소 20년은 더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해야 합니다.

원전 소재지역 주민들은 '최악의 경우 임시저장시설이 이대로 영구처분시설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발전소 작업자들의 옷이나 장갑 등 상대적으로 방사능 세기가 약한 중·저준위방폐물 관리시설 부지를 정하는 데만도 19년이 걸렸기 때문에, 고준위방폐물인 사용후핵연료 시설 마련은 더욱 더딜 수밖에 없다는 우려입니다.

실제 지역 민심은 심상치 않습니다. 특히 경주 지역의 분노가 큽니다. 중·저준위방폐장 유치 당시 고준위 방폐장은 다른 지역에 짓겠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민심을 달랠 묘수를 찾지 못하면 갈등이 더욱 증폭될 수도 있다', '2003년 전북 부안군 방폐장 사태('부안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옵니다.



주민 간 갈등 증폭, 군수 집단폭행... 폭력 얼룩진 '부안 사태'

2003년 7월 15일 자 한국일보 11면. 부안군 위도에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건설이 확정됐다는 소식과 함께 지역 주민의 반발을 전하고 있다. 방폐장 유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김종규 당시 부안군수의 상여를 메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2003년 7월 15일 자 한국일보 11면. 부안군 위도에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건설이 확정됐다는 소식과 함께 지역 주민의 반발을 전하고 있다. 방폐장 유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김종규 당시 부안군수의 상여를 메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정부가 방폐장 부지를 물색하기 시작한 것은 1986년입니다. 경주에 중·저준위방폐장을 설치하기로 결정한 것은 2005년이고요. 그 19년 동안 '부지 선정→주민 반대→무산'이라는 사회 갈등이 되풀이됐죠. 앞서 언급된 일명 '부안 사태'도 그중 하나입니다.

갈등은 2003년 7월 14일 김종규 당시 부안군수가 경제적 혜택을 이유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방폐장 유치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됩니다. 방폐장 건설 신청지인 위도 주민 1,400여 명 가운데 93%도 같은 이유로 방폐장 건설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부안 내륙에선 연일 가두 시위, 해상 시위가 벌어지고 이장들이 연쇄 사퇴를 할 정도로 주민들의 반대가 거셌습니다. 안전성의 척도가 되는 활성단층 존재 여부, 지하수층의 분포 여부를 파악하기엔 조사 기간이 열흘 남짓으로 짧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2003년 9월 10일 자 한국일보 3면. 김종규 당시 부안군수가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 반대 주민 중 일부에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전하고 있다.

2003년 9월 10일 자 한국일보 3면. 김종규 당시 부안군수가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 반대 주민 중 일부에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전하고 있다.

주민투표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갈등은 극에 치달았습니다. 위도와 육지 주민의 대립으로 주민공동체가 와해됐죠. 심지어 김 군수가 방폐장 유치에 반대하는 주민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하는 사건도 발생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듬해 2월 시민단체 주재로 주민투표가 시행되는데요. 주민 91.83%가 방폐장 건설 반대표를 던집니다. 투표는 12개 읍·면 36개 투표소에서 치러졌는데요, 위도면은 유치 찬성 주민들의 투표장 점거로 투표가 무산됐습니다.

정부는 주민 투표의 법적 효력이나 구속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7개월 뒤 부지 선정 재검토 방침을 밝히며 사실상 위도 방폐장 건설을 포기합니다. 김 군수가 방폐장 건설을 신청한 지 약 1년 2개월 만에 사태는 일단락됩니다.



과학적 근거 마련, 투명한 정보 공개... 19년 만에 얻은 뼈아픈 교훈

1990년 11월 10일 자 한국일보 3면. 안면도 주민들의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건설 반대 시위를 담았다.

1990년 11월 10일 자 한국일보 3면. 안면도 주민들의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건설 반대 시위를 담았다.

부안 사태 이전에는 충남 태안군 안면도(1990년), 인천 옹진군 굴업도(1994년) 등에 방폐장을 건설하려했으나 모두 무산됩니다. 그중 안면도는 '6공 이후 최대의 민란'이라 불릴 정도로 주민 반발이 거셌습니다.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이 경질될 정도였죠.

안면도 주민들이 특히 분노했던 이유는 방폐장 건설 사실을 기사를 통해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취재기자의 칼럼에 따르면 과기처의 한 고위간부가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안면도에 중간처리시설 건설'을 시사하면서 기사가 보도되기 시작합니다.

과기처는 그러나 보도 이후에도 "영구처리장 설치 계획은 확정된 바 없다. 서해과학연구단지를 구상하고 있다"고 오리발을 내밀었습니다. 정황상 연구단지에 유치할 원자력 연구소는 핵폐기물 중간저장시설임이 뻔했는데도 '영구'처리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도를 부인했죠.

칼럼을 쓴 기자는 "과학적으로 국민을 설득시켜야 할 과기처의 대응 자세는 어이가 없을 만큼 비과학적이었고, 평화롭게 살던 안면도 주민을 '폭도'로(한 걸음 더 나아가 '전과자'로) 만든 불행한 이번 사태의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고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1995년 10월 9일 자 한국일보 2면. 활성단층 발견에 따라 굴업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건설이 백지화됐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1995년 10월 9일 자 한국일보 2면. 활성단층 발견에 따라 굴업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건설이 백지화됐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굴업도 때도 굴업도 주민들은 찬성했으나 모섬인 덕적도 주민들이 반대하는 갈등이 있었는데요. 결국 굴업도에 방폐장을 짓기로 결정했으나 1년 만에 백지화됩니다. 활성단층이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선정 당시 과기처는 '지질학적 안전성'을 주장했지만, 정작 한국원자력연구소는 "지진에 취약해 핵폐기물 후보지로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행정 불신이 깊어지는 결과를 낳습니다. 국내에서는 활성단층에 대한 연구나 대책이 전무한 실정이라는 사실도 그제서야 알려졌죠.

부안 사태 이후인 2005년 정부는 부지 공개 모집, 정부 합동 설명회, 주민투표를 거쳐 경주에 중·저준위방폐장 건설을 확정합니다. 그리고 10년 뒤 경주 방폐장이 가동을 시작하죠. '안전성에 관한 과학적 근거 마련',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한 주민 설득'이라는 교훈을 얻기까지 뼈아픈 경험을 치른 셈입니다.



기약 없이 이어지는 사용후핵연료 원전 내 임시 저장

2018년 11월 기준 사용후핵연료 예상 포화시기 변화.

2018년 11월 기준 사용후핵연료 예상 포화시기 변화.

문제는 방폐물 중 가장 방사능 누출이 많은 '진짜 핵폐기물' 사용후핵연료 처리시설(중간저장시설, 영구처분시설) 부지 선정은 2022년인 지금도 첫발도 못 뗐다는 사실입니다.

부지 선정 및 건설 시기는 점점 늦춰져만 갑니다. 2015년 공론화위원회가 "2020년까지 영구처분부지를 선정하고, 2051년까지 건설"을 권고했으나 이듬해에 정부는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2028년 부지 확정, 2053년까지 건설"로 기간을 늦춥니다. 이번에 발표한 2차 기본계획에 따라 더 연장됐고요.

원전 내부의 임시저장 시설 포화시점도 계속해서 재조정됩니다. 매일 핵연료를 교체해야 해 사용후핵연료가 가장 빠르게 쌓이고 있는 중수로형 원전인 경주 월성 원전의 경우 2018년(2013년 발표)→2019년(2015년)→2019년(2016년)→2021년(2018년)으로 포화시점이 바뀝니다. 최근엔 당초 예상보다 4개월 늦춰진 2022년 3월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고요.

사용후핵연료 저장 간격을 빽빽하게 조정하며(조밀 저장) 포화시점을 겨우 늦추고 있는 건데요. 그러나 월성 원전은 정말 한계에 다다라 맥스터(임시저장시설) 추가 건설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민 간 갈등이 비화되기도 했고요.

방폐장 건설, 그에 따른 사회적 갈등은 원전이 현존하는 이상 우리가 치러야만 하는 비용입니다. 정부 기조가 탈원전이든 감원전이든 원전 유지든 상관없이요. 이번 2차 기본계획의 발표로 공은 다시 차기 정부로 넘어갔습니다. 네 달 뒤 들어설 새 정부는 갈등을 최소화하며 국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묘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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