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행복을 신성화하는 조급한 현대인이여… "신은 죽었다" [다시 본다, 고전]

입력
2022.04.14 14:30
수정
2022.04.14 16:39
15면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편집자주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다시 조근조근 얘기해 봅니다. 다수의 철학서를 펴내기도 한 진은영 시인이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뭉크 '프리드리히 니체의 초상화'(1906). 위키미디어 커먼스

뭉크 '프리드리히 니체의 초상화'(1906). 위키미디어 커먼스

독일 철학자 니체(1844-1900)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독자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책이다. 철학책인데도 모든 문장이 비유와 비약으로 가득한 시처럼 느껴진다. 시인 쉼보르스카의 말대로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시를 썼으니 그는 분명 뛰어난 시인이었다!"('읽거나 말거나')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은 주인공 차라투스트라가 말한 "신은 죽었다"일 것이다. 이 말은 세상의 모든 종교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처럼 들린다. 세계 곳곳의 분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이와 대적하려는 사람들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작가 살만 루슈디는 이슬람 종교를 비판하는 소설을 썼다가 이란 정부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고 숨어 지내야 했다. 소설의 번역자들이 테러범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개신교 목사였던 니체의 아버지는 그가 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났지만, 어머니의 열성적 종교 교육으로 그는 어린 나이부터 성경을 줄줄 외우고 꼬마 목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러나 커 가면서 점차 종교의 억압적 교리와 숨막히는 분위기를 싫어하게 된 니체는 자신의 여러 책에서 용감하게 종교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이 때문에 "신은 죽었다"라는 그의 주장은 무엇보다도 기독교를 비롯해 유일신을 믿는 종교들에 대한 비판으로 보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니체는 신이 없다고 믿는 무신론자들에게도 신의 죽음을 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들은 과학이나 민족 또는 화폐라는 신을 섬기는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는 없지만, 돈의 가치를 신처럼 받드는 사람은 돈의 신도이다. 그들은 이윤만 생긴다면 다른 사람들의 희생쯤은 괜찮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인종주의를, 또 어떤 사람은 성차별주의를 모태 신앙으로 삼는다. 니체는 이처럼 기존의 가치나 사회적 통념들을 무조건 옳다고 믿으며 절대화하는 사람들을 광신도로 간주하며 이들의 귀에 속삭인다. "신은 죽었다니까."

그렇다면 절대로 종교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뜻일까? 니체의 관점에서 보자면 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 즉 절대적 교리를 의심하는 사람만이 참된 종교인이 될 수 있다. 유대의 종교 율법은 장애인을 죄인으로 여기며 예배당에 출입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예수는 이 율법을 거부하며 장애인들을 환대했다. 어떤 신학자들은 예수가 행한 진정한 기적은 서 있지도 못하는 사람을 일어나 걷게 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나 병자들은 죄인이 아니라고 선언하며 그들을 예배당 한가운데로 오게 한 것이라고 말한다. 마틴 루터는 교황의 무오류성 교리를 의심했다. 그동안 신의 말씀이라고 전해진 전통 교리들에 대해 회의했기에 그는 종교개혁을 시행하고 새로운 종교적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프리드리히 니체. 위키미디어 커먼스

프리드리히 니체. 위키미디어 커먼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자신들 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대낮에는 별들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기존의 가치들을 대낮처럼 환한 진리라고 믿는 사람은 어떤 별도 발견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그 결과로 생겨나는 혼돈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제 안에서 춤추는 별을 찾게 된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회의하라. 심지어 행복을 원하는 마음까지도. 니체는 춤추는 별을 언급한 다음, 행복을 찾아다니는 것은 비천한 인간의 일이라고 덧붙인다. 행복이 현대인을 지배하는 새로운 신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사라 아메드는 '행복의 약속'(후마니타스 발행)에서 우리가 행복이라는 관념 아래 특정한 삶의 방식을 강요당한다고 말한다. 행복이 지배의 기술이 되었다는 것이다. 행복은 이제 우리가 따라야 할 절대적으로 올바른 길로 간주된다. 이를 확인해주는 기본 지표들도 있는데, 결혼이나 안정된 가족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많은 부모가 이렇게 말한다. "얘야, 우리가 바라는 것은 너의 행복뿐이다. 그러니 네가 뭘 하고 싶든 좋은 학교에 입학하고 대기업에 취직해라. 때 맞춰 결혼하고 행복한 주부, 행복한 가장이 되어라. 빨리 안정을 이루어라…"

그러나 세상의 아이들아, 정해진 궤도에서 이탈하는 삶은 불행할 거라는 협박에 굴하지 말고, 혼돈을 기꺼이 맛보며 천천히 너 자신이 되어라. 남이나 스스로에게 자신의 성과를 증명하려고 서두르지 마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만 나 자신을 기다리는 것을 배웠을 뿐이다." 점점 조급해지고 불안해하는 우리를 향한 그의 다정한 전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프리드리히 니체 지음·정동호 옮김·책세상 발행·560쪽·2만 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프리드리히 니체 지음·정동호 옮김·책세상 발행·560쪽·2만 원


진은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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