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찾은 실종 아들, 친자 아니었다…부모는 알았을까

입력
2022.09.02 00:00
16면

[세계의 콜드케이스]<43> 미국 루이지애나 '바비던바' 실종 사건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1912년경 촬영된 아들 바비던바(오른쪽)와 엄마 레시던바. 위키피디아 제공

1912년경 촬영된 아들 바비던바(오른쪽)와 엄마 레시던바. 위키피디아 제공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네 살배기 아이 바비던바가 사라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아빠인 피서던바가 낚시찌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물고기와 힘겨루기를 하던 시간은 길어야 1분. 물고기를 놓쳤다는 실망감을 달래고 문득 아들이 잘 놀고 있나 옆을 쳐다봤으나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엄마인 레시던바가 자신을 놀리려고 아들을 숨긴 것으로 생각했으나, 호숫가 뒤편에서 식사 준비를 하던 레시던바는 "무슨 소리냐"며 오히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부부는 호수가 완전히 어둑해질 때까지 던바를 찾아 헤맸지만 끝내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오열하는 레시던바 옆에서 아빠인 피서던바는 낚시에 정신을 뺏겼던 자신을 자책했다. 지역 경찰서에 던바의 실종 사건이 신고된 것은 이튿날 새벽이었다.

실종 이듬해 '던바'와 닮은 '찰스'가 발견됐다

1912년 8월 루이지애나주 스웨이즈 호수 근처에서 물놀이를 하던 바비던바가 실종됐다. 경찰은 신고를 받은 즉시 추가 수색에 나섰으나 던바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부유했던 던바 부부는 경찰 수색 외에 사람을 추가로 고용해 호숫가 주변을 며칠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루이지애나주 지역 신문이 부부의 딱한 소식을 접하고 던바 찾기 캠페인을 벌였다. 이 소식을 중앙 언론이 소개하면서 동정 여론이 미 전역으로 확산했다. 정치인도 던바 실종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 주 정부가 대대적인 경찰력을 도입해 던바 수색에 다시 나선 배경이다. 한동안 미 전 국민의 주요 관심사는 던바의 실종사건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환에 대한 기대감은 낮아졌으나, 사람들은 던바의 흔적이라도 찾기를 바랐다. 하지만 수개월이 지나도 아이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던바의 존재가 사람들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갈 때쯤인 이듬해 4월, 던바와 외모가 비슷한 아이가 미시시피주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 부모에게 전해진다. 그 아이의 이름은 '찰스 부르스 엔더슨'. 이 아이를 데리고 있었던 사람은 '윌리엄 월터스', 그리고 아이의 엄마는 월터스 집안에서 일을 하는 '줄리아 엔더슨'으로 밝혀졌다. 다만 줄리아가 이 아이를 입양해 친자 관계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던바 부부는 즉각 미시시피로 향해 아이를 만났다. 신기하게도 수개월이 지났지만 아이는 엄마를 기억했는지, 레시던바를 보자마자 "엄마"라고 외치며 그의 품에 안겼다. 레시던바도 아이의 그런 모습에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꼭 안았다. 신문들은 잃어버린 던바를 수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찾았다며 이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사람들은 던바의 생환에 열광하며 던바 부부에게 축하를 전했다.

하지만 '아이를 찾았다'는 것은 던바 부부의 일방적 주장이다. 찰스를 보호하고 있던 월터스는 "남의 아이를 강탈하려는 것"이냐며 던바부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경찰도 난감했다. 당시에는 유전자(DNA) 검사 기술이 없었기에 양측 주장의 논리성을 따지는 선에서만 개입해야 했다. 결국 이 사건은 법정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월터스는 재판에 사활을 걸고 임했다. 재판에 질 경우 자신이 키우던 생때같은 아이를 남에게 뺏길 뿐 아니라, 자칫 유괴범으로 몰려 처벌을 받을 수 있어서다. 찰스의 엄마라고 주장했던 줄리아도 공범 혐의를 받을 공산이 컸다. 재판이 시작되자 줄리아 역시 "친자는 아니지만 정식으로 입양해 키우고 있던 자신의 아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재판정은 찰스가 입양된 과정에 집중했다. 입양 과정의 흐름을 살펴본다면 두 사람이 던바를 납치했는지 여부가 드러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재판정의 요청에 줄리아는 찰스의 입양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줄리아가 설명하는 입양과정은 이랬다. 줄리아는 원래 월터스 집안에 고용돼 가사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찰스의 생모도 줄리아처럼 월터스 집안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월터스 집안의 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찰스를 낳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불치의 병으로 친모가 사망하면서 줄리아가 이 아이를 입양해 키우게 됐다는 것이다. 월터스 역시 이 아이가 자신 집안의 핏줄이기 때문에 찰스를 거둬들였다고 해명했다. 월터스와 줄리아는 정식 부부 관계는 아니었지만 한 집에서 생활하며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재판이 진행될수록 상황은 줄리아와 월터스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우선 던바 부모는 재력이 풍부해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했지만,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월터스는 그렇지 못했다. 변호사가 재판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재판의 흐름은 점차 던바 부부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던바의 무사생환을 기대하는 국민여론 역시 재판정에는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했다.

상황적 증거도 월터스에게 불리했다. 우선 아이가 레시던바를 보자 "엄마"라고 외친 것이 결정적이었다. 또 던바가 가지고 있던 팔 부위 상처를 찰스가 비슷한 부위에 가지고 있다는 점도 참작이 됐다. 찰스의 독특한 입양과정도 판사의 의심을 샀다. 친모가 죽고 찰스의 아빠가 누군지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의 유괴를 충분히 의심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재판은 던바 부부의 승리로 끝났다. 찰스는 던바 부부의 집으로 돌아갔고 월터스는 아이 납치 혐의로 수감됐다.

1914년 미국 신문에 보도된 바비던바와 찰스 논란. 신문은 실종되기 전 바비던바(왼쪽)의 사진과 찰스의 얼굴을 비교하며 같은 사람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1914년 미국 신문에 보도된 바비던바와 찰스 논란. 신문은 실종되기 전 바비던바(왼쪽)의 사진과 찰스의 얼굴을 비교하며 같은 사람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던바 부부에게 돌아갔지만…"DNA 불일치"

루이지애나 집으로 돌아온 찰스는 '던바'로서 삶을 평탄하게 살았다.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찾아준 부모 곁에서 머물며 결혼해 4명의 아이도 낳았다. 던바가 숨을 거둔 것은 그의 나이 58세였던 1966년이었다.

하지만 유괴범으로 몰린 월터스와 줄리아의 집은 행복하지 못했다. 줄리아는 던바가 집을 떠난 후 자신의 친자식들에게 "양아들인 찰스를 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이미 법정 판결이 났지만, "던바 부부가 찰스를 강탈해 간 것"이라는 주장도 굽히지 않았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흐른 2004년 바비던바 실종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이 사건에 흥미를 느낀 한 언론사 기자가, 던바의 손녀에게 연락을 취해 던바와 던바 부모 사이에 DNA 검사를 제안하면서다. 사람들 사이에서 바비던바 실종 사건 얘기가 오르내리는 게 싫었던 손녀와 가족들은 사건에 종지부를 찍고자 이 제안을 수락하고 DNA 검사에 응하게 된다. 던바가 실종된 1912년 후로부터 90년인 지난 시점이었다.

검사 결과는 놀라웠다. 바비던바 즉 원래 이름 찰스와 던바 일가 사이에서는 친자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즉 미시시피주에서 찾았다는 던바는 줄리아의 주장처럼 찰스였던 것이다.

1913년 던바 부부에게 돌아가는 찰스(왼쪽)의 모습. 위키피디아 제공

1913년 던바 부부에게 돌아가는 찰스(왼쪽)의 모습. 위키피디아 제공


풀리지 않는 의문들


사건을 명확하게 정리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DNA 검사는 모든 상황을 원점으로 되돌렸다. 찰스가 던바가 아니었다는 것이 확인됐지만, 던바 실종을 둘러싼 의문점은 오히려 더 증폭됐다.

가장 큰 의문은 던바 부부가 '찰스'를 자신들이 잃어버렸던 '바비던바'로 진짜 믿었는지 여부다. 던바 부부가 찰스를 처음 만났을 당시 상황을 전한 신문기사를 보면 엄마인 레시던바는 아이의 외형이 자신의 아이와는 다르다며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온다.

어린아이의 모습이 시시각각 변하고 던바가 부모의 손을 떠난 지 수개월이 지났기 때문에 부모라 하더라도 아이의 변한 모습에 낯섦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후 오랜 기간 그 아이를 키웠을 때는 던바와 찰스가 다른 사람임을 알아챘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사람들은 납치범인 윌리엄이 2년 정도 수감하고 풀려난 정황도 의심하고 있다. 던바 부부는 월터스가 찰스에 대한 양육권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그의 석방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월터스의 딱한 사정을 감안한 선처일 수도 있으나, 통상 자신의 아이를 납치한 사람에게 동정심을 베풀기는 쉽지 않다. 납치범인 월터스가 비교적 짧은 기간인 2년 정도만 수감했다는 것은 당시 경찰도 그의 납치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아이 유괴 혐의는 최대 종신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다섯 살밖에 안 된 찰스가 왜 레시던바를 보고 "엄마"라고 외치고 품에 안겼는지도 의문이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에게 찰스가 이런 행동을 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찰스의 복잡한 입양 과정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즉 친모의 얼굴을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을 찾겠다고 멀리서 찾아온 젊은 여자를 '엄마'라고 굳게 믿었다는 것이다. 줄리아는 당시 찰스에게 "친모는 죽지 않고 멀리서 살고 있고, 곧 너를 찾아올 것"이라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생모를 잃은 찰스를 달래기 위함이었다.

찰스와 월터스, 줄리아의 관계도 여전히 미궁이다. 사람들은 찰스가 윌리엄 집안의 후손이라는 줄리아의 설명을 근거로 찰스의 생부가 월터스일 수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찰스 생모가 사망한 후 월터스가 줄리아와 동거하면서 자연스럽게 찰스를 거두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DNA 검사로 찰스가 던바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미국에서는 애꿎은 월터스와 줄리아가 아이를 뺏기고 유괴범으로 몰렸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며 당시 경찰과 법원의 무능함을 탓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던바 부부가 재력을 바탕으로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간 만큼,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쟁도 확산했다. 던바 부부가 찰스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라도 알아챘다면 또 다른 범죄라는 비판도 잇따랐다.

하지만 사건 당사자는 모두 숨을 거둬 명확한 사실을 확인하기는 어려워졌다. 특히 당시 실종된 바비던바가 호숫가에 빠져 사망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납치됐는지 여부도 끝내 확인할 수 없는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민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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