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이 염치와 신뢰를 얻는 방법

입력
2022.11.23 00:00
26면

대통령은 모든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
법리 아닌 정치 책임을 떠맡는 사람
자기 몫의 실수 사과해야 지지 회복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순방 중 발생한 '비속어 논란'이 MBC 취재진의 동남아시아 순방 전용기 탑승 배제로 이어지더니 급기야는 '국가 안보'와 '헌법 수호', '국민의 안전 보장' 문제로 비화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18일 모처럼 재개된 '도어스테핑'에서 MBC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 배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우리 국가 안보의 핵심 축인 동맹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아주 악의적인 그런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라며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으로서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또 언론의 자유만큼 책임도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국민의 안전 보장과 관련되는 것일 때는 그 중요성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MBC의 보도 내용을 보면 대통령의 입장에서 부당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 지난 18일 도어스테핑 말미에 "뭐가 악의적이냐"는 MBC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으로 대응한 것에 잘 나타난 바와 같이 몇몇 사안에서 MBC의 보도가 '무책임'하고 '악의적'이라고 볼 수 있는 여지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통령실의 지적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다수 국민들은 비속어 논란에 대해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은 채 책임을 전적으로 언론에 떠넘기는 대통령의 '몰염치(沒廉恥)'에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다.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일컫는 염치(廉恥)가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몰염치'는 '수치심을 모른 채 자기 잘못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행위'를 일컫는 표현이다. 지난 9월 비속어 논란이 처음 불거졌을 당시, 그냥 간단히 말실수했다고 사과하고 끝내면 될 일을 왜 이렇게 문제를 계속 키우며 잘못을 언론에 떠넘기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대통령의 발언 장면을 자막과 함께 내보낸 MBC의 보도가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면에서 국가 안보를 해치고 헌법을 위반했는지는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없다. 오히려 대통령의 최근 언행이 국가의 품격을 해치고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를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은 평생 검사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법적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과 책임을 추궁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데는 인색해 보인다. 정부 출범 직후 인사 검증 부실 논란 때도 그렇고, 얼마 전 '이태원 참사' 때도 그렇고, 법적으로 자신이 잘못한 일이 없는 일에 대해 굳이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대통령은 설령 법적인 책임이 없다 하더라도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국정의 모든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떠맡는 정치적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막스 베버(Max Weber)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의 '책임 윤리'를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정치적 지도자, 주도적 역할을 하는 정치가의 명예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전적으로 자기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것, 바로 그것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자기 책임을 거부할 수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할 수도 없으며 또 해서도 안 됩니다."

정치 지도자가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정치적 책임을 마다하지 않을 때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가 깊어진다는 사실을 윤석열 대통령이 하루속히 깨닫고 '몰염치'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범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정치학)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