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금융' 유착 비리에 베트남 경제 흔들…한국 기업에도 '불똥'

입력
2022.11.24 04:30
<60> 결국 터진 건설-금융 유착 비리
'정부·은행 지원' 업계 2위 노바랜드 부도 위기
기업 여신 중단 '초강수'… 韓기업도 자금난

편집자주

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작업이 중단된 베트남 남부 호찌민시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의 모습. 최근 베트남은 건설부동산 기업들의 자금난으로 인해 복수의 건설 프로젝트가 멈춰 선 상태다. 베트남 천연자원부 홈페이지 캡처

'포스트 차이나'를 자처하며 "성장 또 성장"을 외치던 베트남이 '건설-금융' 유착 비리 후폭풍에 휘청이고 있다. "베트남에 부정부패 사건이 한두 건이냐"고 심드렁하게 넘기기엔 이번 사태 파장은 심상치 않다. 주요 은행에 예금자들이 몰려들어 돈을 모두 찾아가는 '뱅크런' 사태가 발생한 데 이어, 베트남 대기업 순위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유명 건설부동산 그룹도 줄줄이 도산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자금을 조달해 사업을 진행 중인 한국 기업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이번 사태로 한국의 대베트남 투자가 끊길 것을 우려하며, 한국 기업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VTP-SCB' 비리… 베트남 민낯 드러내다

베트남 남부 푸꾸옥섬 해변에 들어선 한 베트남 건설부동산 기업의 리조트 단지 모습. 현재 푸꾸옥은 개발이 더뎠던 섬의 중서부 지역까지 자국 기업들의 대형 프로젝트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빈펄 홈페이지 캡처

베트남의 건설-금융 유착 비리는 사실 비밀도 아니었다. 건설사는 정부의 비호 아래 금융권 돈을 쉽게 끌어다가 노른자 땅을 개발하고, 그 개발 수익은 정부와 금융권이 함께 나누는 방식은, 베트남뿐 아니라 주요 개도국 발전 과정에서 종종 발견됐다.

문제는 베트남의 건설-금융 유착 비리가 전체 경제를 흔들 정도로 그 규모를 키웠다는 점이다. 다낭·냐짱·푸꾸옥 등 유명 관광지만 가봐도 유착 비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모든 해안선의 가장 좋은 경관에 자리한 베트남 건설부동산 기업의 호텔·리조트는 수를 세기도 힘든 정도로 많다. 조금이라도 남는 땅엔 이들이 베트남 부자와 외국인을 상대로 판매 중인 고급빌라촌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 많은 휴양시설을 누가 다 이용할까" 걱정이 들 정도의 건설 프로젝트 광풍은 철저히 권력의 비호와 뇌물 관행으로 얼룩져 있었다. 중앙정부의 유력 최고위 정치인이 특정 부동산건설 기업과 '스폰서 관계'를 맺으면 이후 관이 관리하는 대형은행이 기업의 대출을 맡는다. 당연히 정치인과 은행 수뇌부는 정기적으로 거액의 뇌물을 받았고, 기업은 그 대가로 손쉽게 은행 돈으로 신규 프로젝트를 계속 발주·진행했다.

베트남 남부 호찌민에 위치한 반띤팟(VTP) 그룹 본사와 VTP 오너 쫑미란(왼쪽 상단) 회장의 모습. VN익스프레스 캡처

언젠가 터질 폭탄은 결국 지난 9월 폭발했다. 버튼을 누른 건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급성장 중이던 반띤팟(VTP) 그룹과 이들의 자금을 담당한 사이공중앙은행(SCB)이었다.

23일 VN익스프레스 등 현지매체에 따르면, SCB는 2018년부터 VTP에 담보나 지급보증도 없이 25조 동(약 1조3,600억 원)을 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쉽게 돈을 구한 VTP는 마구잡이로 호찌민 등 남부에 고급 아파트와 리조트를 지었다. 그러나 이미 포화상태인 시장은 VTP의 매물에 관심이 없었다.

VTP로부터 일부 자금도 회수 못 한 SCB의 난감함은 서서히 대중에 알려졌다. 당연히 SCB 고객들은 "파산 전 자산을 찾아두자"며 일제히 은행에서 돈을 인출했다. '뱅크런' 사태가 터진 것이다. 사정당국은 그제야 수사에 나서 지난달 7일 VTP 오너 등 6명을 구속했다. 금융당국은 SCB도 탈탈 털었다. 그 결과 SCB와 불법 거래하던 762개의 기업의 자산도 동결됐다.

끝이 아닌 시작, 업계 2위 '노바랜드'까지 무너진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위치한 중앙은행 청사의 모습. 베트남 관보 캡처

상황이 심각해지자 베트남 정부는 '건설-금융-관'으로 이어지는 유착 고리를 끊기로 마음먹었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베트남 경제 자체가 흔들릴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베트남에 투자하는 글로벌 기업들도 'VTP-SCB' 사태가 터지자 "현지 금융 절차 투명성을 보장해달라"고 강하게 정부를 압박했다.

이에 베트남 정부는 모든 건설부동산 기업에 대한 신규 여신부터 전면 중단했다. 이어 건설업계의 기존 대출 건에 대한 전방위 심사에도 착수했다. 몇몇 중견기업은 쓰러지겠지만 일단 고름은 짜내고 가겠다는 의지였다.

베트남 남부 동나이성에 건설 중인 노바랜드의 아쿠아시티 프로젝트 현장의 모습. 노바랜드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베트남 정부의 결정은 더 큰 후폭풍을 불러왔다. 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없게 되자 업계 2위 '노바랜드'가 심각한 자금경색에 빠지며 부도 직전 상태에 빠진 것이다. 노바랜드는 한국의 '레고랜드'와 마찬가지로 복수의 지방성 정부와 정부 계열 은행의 전폭적 지원 아래 '신도시급' 리조트 단지를 건설 중인 대기업이다.

실제로 내년 2분기 완료 예정인 남부 동나이성(省)의 '노바랜드 아쿠아시티' 경우, 현재까지 알려진 투자액만 12조953억 동(약 7,046억 원)에 이르며 부지는 무려 1,000헥타르(㏊)에 달한다. 이 외에도 남부 빈투언성에는 680㏊에 30억 달러(약 4조587억 원)가 투자될 '노바월드 마리나 시티' 사업 등 10여 개 프로젝트가 전국 각지에서 진행 중이다. 현지에선 노바랜드가 쓰러지면 연쇄 도산할 관련 기업 수는 최소 수천 개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노바랜드가 흔들리자 다른 건설부동산 기업들도 줄지어 위기에 봉착했다. 현재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는 재계 1위 빈 그룹을 포함, 재계 서열 10위권의 썬그룹·에코파크 등은 몰려오는 회사채를 막기 위해 비상경영에 돌입한 상태다.

베트남 건설업계 관계자는 "여신이 막힌 후 100위 내 베트남 모든 건설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급히 현금자산을 매각하고 있다"며 "여기에 동-달러 환율도 연초 대비 8.57% 이상 오르고 있어 금융권과 유착으로 성장한 상당수의 건설부동산 기업이 연말연시에 줄줄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지금은 버텨야 할 때… 韓기업 신규 투자 보수적 접근 필요"

글로벌 부동산컨설팅업체인 세빌스 베트남 사무소의 이석우 팀장이 지난 18일 진행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베트남 건설-금융 시장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현지 금융업계의 대혼란은 베트남에 진출한 9,000여 한국 기업에도 대형 악재다. 당장 베트남 은행 자금으로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던 일부 한국 건설사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A기업의 경우 현지 한국 주재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B기업도 두 달째 한국 협력업체에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관건은 베트남 정부의 여신 중단 기조가 언제까지 유지되느냐다. 이와 관련 현지 금융권에선 베트남 중앙은행이 내년 초에는 여신 중단 지시를 해제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베트남 C은행 관계자는 "외국인직접투자(FDI)를 계속 유치해야 하는 베트남 입장을 감안하면, 감사를 통해 부정부패가 적발된 기업은 올해 내 사법처리하고 내년부턴 나머지 자국 및 외국 기업에 대한 여신은 기존보다 더 꼼꼼히 체크하는 방식으로 풀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금융 불안정성이 커지다 보니 베트남 신규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 또한 커지고 있다. 현재로선 100% 한국 자본으로 투자를 진행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현지 자금 조달 계획이 계속 공회전할 확률이 높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글로벌 부동산컨설팅업체 '세빌스' 베트남 사무소의 이석우 팀장은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이 자국 경제의 근간인 건설부동산 기업들을 완전히 망하도록 두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건설-금융 유착 비리 사태 여파와 국제정세를 면밀히 파악하면서 당분간은 최대한 보수적으로 베트남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1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호찌민 정치아카데미에서 개최된 '한국-베트남 수교 30주년 콘퍼런스' 현장에서 양국 경제분과 발제자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베트남 정부는 불안과 당혹감에 빠진 한국기업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여념이 없다. 자국 내 환부를 도려내는 작업 때문에, 최대 FDI 국가인 한국이 베트남을 기피하는 상황이 발생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냣호앙 베트남 기획투자부 외국투자팀장은 지난 21일 수도 하노이에서 진행된 '한국-베트남 수교 30주년 기념 콘퍼런스'에서 "베트남은 지금 개방적인 기업 활동을 위한 정책적 어려움을 제거하는 과정 중이다"며 "특히 베트남에 투자하는 한국기업을 위한 환경개선 작업을 지속적이고 집중적으로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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