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취재편의 대가 900만원

입력
2022.11.24 04:30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재진과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을 하고 있다. 뉴스1

대통령실과 MBC의 갈등이 정국 블랙홀이 되고 있다. 대통령실이 MBC 취재진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한 결정이 시발점이다. 논란이 일자 단지 편의를 제공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반박했지만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진행되는 대통령 순방 취재는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곧 취재를 제약하는 것과 같다는 걸 대통령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일례로 전용기를 타면 기자단은 출입국 심사를 따로 받지 않아도 되지만, 민항기를 이용하면 많은 시간을 공항에서 허비해야 한다. 나라를 옮겨가며 분 단위로 쪼개 숨가쁘게 돌아가는 정상외교 일정을 따라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각 언론사가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전용기를 타는 이유다. 윤 대통령의 이번 동남아 순방도 4박 6일의 비교적 짧은 일정이었음에도 1인당 900만 원을 지불했다.

윤 대통령은 MBC의 전용기 탑승 배제 이유에 대해 “해외 순방에 국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외신이 특정 언론사 전용기 탑승을 배제한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국제적 이미지만 추락했다. 국제기자연맹은 15일 “윤 대통령의 MBC 공세가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며 비판 성명을 냈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MBC와 갈등을 키우고 있다. 윤 대통령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 과정에서 벌어진 MBC 기자와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의 말싸움 장면이 고스란히 방송을 탔고, 대통령실은 MBC를 향해 “이게 악의적이다”라며 날 선 반응을 내놓는 등 감정싸움으로까지 확장시켰다. 일부 여당 의원은 도어스테핑 당시 기자가 팔짱을 끼고, 슬리퍼를 신었다며 태도를 문제 삼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권에서조차 조선시대 ‘예송 논쟁’과 다를 게 없다는 자조가 나올 정도다. 대선 캠프 전략기획실장을 맡았던 금태섭 전 의원은 “한국 사회가 지금 이런 문제를 풀고 앉아 있을 때인가”라고 지적한다. 한 여권 인사는 “이렇게 가다간 ‘기자가 양말을 신고 있었느냐’까지 문제 삼을 지경”이라고 한탄했다.

2019년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미 정상회담 당시, 북미 양자회담 직전 북측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온 백악관 순방 기자단을 막아 섰다. 외교 관례상 정상 간 만남은 양국이 동의해야 공개하는 만큼 회담 취재는 불발되는 듯했다. 하지만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회담장 문 앞을 가로 막던 북한 호위사령부 소속 경호원들을 향해 육탄돌진했고, 백악관 기자단이 회담 취재를 할 수 있도록 길을 텄다. 먼 길을 동행한 기자단을 위해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는 행동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에는 샌더스 대변인 같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역대 대선 중 가장 적은 0.7%포인트 표차로 당선됐다. 그만큼, 듣기 싫은 소리가 듣기 좋은 소리만큼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려되는 건 여권이 지금처럼 비판적 언론 보도를 자신들이 차지한 권력을 훔치려는 행위쯤으로 바라본다면, MBC 전용기 탑승 배제 같은 소모적 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당장 대통령실과 MBC ‘싸움 구경’에 시급한 국정 과제는 공론장에서 사라졌다. 당면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필부필부의 지혜까지 끌어모아도 부족한 이때 진짜 국익을 해치는 행위가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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