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라스 쉬프는 왜 뵈젠도르퍼를 고집하는가

입력
2022.11.24 20:00

안드라스 쉬프가 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마친 뒤 한국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번 연주에 사용된 피아노는 쉬프가 특별히 요청한 뵈젠도르퍼였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피아니스트의 피아니스트'라 불리는 안드라스 쉬프(Andras Schiff)가 지난 6일 롯데 콘서트홀에서 모처럼 한국 청중과 만났다. 이번 연주는 무대 위에 놓여진 악기부터 독특했다. 대개의 피아니스트가 선택하는 스타인웨이가 아니었다. 쉬프의 요청으로 뵈젠도르퍼 피아노가 특별히 공수되었다. 전 세계 공연장 9할 이상이 보유할 정도로 스타인웨이의 아성은 높고도 견고하다. 이 폭력적 세계화에 쉬프는 오래전부터 경종을 울려왔다.

뵈젠도르퍼는 피아노 한 대를 제작하는데 6년의 세월이 소요될 정도로 대량생산의 효율에 포섭되지 않은 독특한 브랜드다. 이제껏 생산된 악기 수로 따지면 스타인웨이의 10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연륜을 갖춘 기술자들이 한 대 한 대 충분한 시간을 들여 탄생시키는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자타공인 이 피아노의 열혈 팬인 쉬프는 음색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뵈젠도르퍼를 연주하다보면 다른 피아노가 범접하지 못할 '칸타빌레' 사운드를 뽑아낼 수 있습니다. 진정 노래하는 악기라 할 수 있죠. 건반의 반응이 즉각적이면서도 정교하니까 피아니스트 입장에선 연주하는 재미를 한층 더 느낄 수 있습니다. 공명은 놀랍도록 따뜻하고 투명합니다. 피아니시모(pp)의 음영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더 부드럽고 더욱 우울한 음색이 뵈젠도르퍼에선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유별난 찬양만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여타 피아니스트들이 뵈젠도르퍼에 대해 느끼는 아쉬움을 쉬프 역시 솔직하게 인정한다. "물론 고음역에서 스타인웨이만큼 울림의 반향이 짱짱하지는 않습니다. 음색이 전체 음역에 고르게 평준화되어 있지도 않고요.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각 음역마다 개성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거겠죠. 스타인웨이가 산문적이라면 뵈젠도르퍼의 음색은 시적입니다."

안드라스 쉬프가 뵈젠도르퍼 피아노 건반을 치고 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사람들은 짓궂게도 뵈젠도르퍼를 향한 쉬프의 전적인 신뢰를 스타인웨이에 대한 불신으로 과장하며 가십거리 삼길 서슴지 않았다. "저는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존중합니다. 하지만 세계 대부분의 콘서트홀을 이 피아노가 독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종류의 악기로 모든 레퍼토리를 연주해 버리니까 아무리 피아니스트가 여럿이어도 소리가 비슷해져 개성을 구별하기 힘들잖습니까. 이건 세계화의 폭력과 다름없습니다. 악기로부터 비롯되는 사운드의 다양성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스타인웨이에 대한 쉬프의 비판적 태도는 결국 심각한 불화로 비화되고 말았다. 오스트리아의 슈바르젠베르크에서 열렸던 음악축제 슈베르티아데가 그 도화선이었다. 2019년, 주최 측에서 제공한 유일한 피아노가 뉴욕산 스타인웨이였던 것이 문제였다. 슈베르트 작품으로만 구성된 공연에 뵈젠도르퍼가 아닌 피아노로 연주해야 하다니, 쉬프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급기야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린 마스터클래스에서 스타인웨이에 대한 가차 없는 독설을 공개적으로 늘어 놓았다. 이 장면은 언론에 대서특필되어 축제 자체를 곤경에 빠트려버렸다. 주최 측은 예정되었던 쉬프의 2020년 공연을 취소시켰고, 쉬프도 질세라 슈베르티아데와 완전한 결별을 선언한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도 쉬프는 기존의 음악계 관행에 얽매이지 않았다. 특정 브랜드의 피아노로 모든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콘서트홀의 오래된 선례에 따끔한 경종을 울렸고, 무슨 곡을 어떤 순서로 연주할지 사전에 공지하지 않았다. 68세 노년의 거장이 헤쳐 나가는 창의적 모험, 뵈젠도르퍼와 동고동락한 독특한 사운드가 콘서트홀을 가득 공명시켰다.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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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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