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교위, 새 교육과정 수정 권한 있나… 심의 코앞인데 아직 '논의 중'

입력
2022.12.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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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 과정서 나온 의견 반영할 법적 근거 없어
교육부 "국교위와 협의" 국교위 "받은 제안 없어"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11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교육위원회 제2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11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교육위원회 제2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르면 다음 주 교육부로부터 새 교육과정 최종안을 넘겨받게 될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아직도 수정 권한 등 심의 방식을 확정짓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유민주주의' 표현과 '성소수자' 등 성(性) 관련 용어 삭제를 둘러싸고 마지막까지 진통을 겪고 있는 교육과정 개정안이 사회적 합의기구의 의결을 거친다는 명분 속에 자칫 정부의 뜻대로 의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교육부는 "국교위에서 결정된 새 교육과정을 고시한다"는 계획이지만, 국교위는 정부가 제출한 최종안을 어떻게 심의할지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0일 교육부는 행정예고안을 발표하면서 "심의 과정에서 나온 의견을 어떻게 반영할 수 있는지 규정한 법령은 없다"고 설명했는데, 3주 동안 어떻게 할지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낸 셈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교위가 최종안에 대해 수정할 권한이 있느냐'는 질문에 "심의·의결 방식은 국교위에서 정해야 할 부분"이라며 "국교위법이나 초중등교육법 어디에도 심의·의결 방식을 규정해 놓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국교위와 교육부가 계속 협의하면서 심의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할지 조정해 가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국교위 간 논의도 원활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교위 측은 "교육부로부터 심의 방식을 제안받은 건 없다"며 "아직 의사결정과정 중인 사안이라 정해진 게 없다"고 말을 아꼈다.

여전히 불명확한 국교위의 수정 권한 때문에 자칫 정부안이 사회적 합의기구의 심의·의결을 거쳐 고시됐다는 정당성만 부여받은 채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한 국교위원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달 25일 열린 국교위 3차 회의에서 위원들이 새 교육과정의 수정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눈 내용을 교육부에 전달했고, 교육부는 이를 반영해 최종안을 만들겠다고 했다"면서도 "첨예한 쟁점에 대해서는 국교위 내에서도 합의점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정부안에 대해 수정을 요구한 의견이 얼마나 반영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교위가 제 역할을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특히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2022 교육과정 개정안 심의·의결이라는 논쟁적 사안을 첫 과제로 떠안으면서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컸다. 전문가들은 애초에 교육부와 국교위의 역할에 대해서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국교위 전문가로 꼽히는 김용일 한국교육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이번 문제는 교육부가 국교위를 '필요에 따라 활용하는 기구'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라며 "교육부와 국교위의 모호한 관계를 법령 개정으로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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