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자주 쓰는 말이, 당신이다

입력
2022.12.02 22:00
23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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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어 휘게(Hygge)는 편안함, 따뜻함, 안락함 등 일상에서 얻는 기쁨을 뜻한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한때 우리나라에도 온갖 CF와 광고 문구, 심지어는 자기계발서에 휘게라는 단어가 따라붙기도 했다. 지금도 휘게라는 가게가 전국적으로 몇십 개에 이른다. 성공을 추구하는 우리나라 문화에 지친 이들에게 휘게라는 단어는 퍽 매력적이었나보다.

설명하면 모두가 이해하는데 우리말로는 한 단어로 존재하지 않는 말들이 있다. 마리야 이바시키나의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은 그런 말로 이뤄진 책이다. 프랑스어로 에스프리 드 레스칼리에(esprit de l'escalier)는 계단을 내려오면서 떠오르는 농담을 뜻한다. 누구나 자리는 뜨고 난 후에 "아까 그렇게 말할걸!"이라고 이마를 치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핀란드에는 뮈오타하페이(myötähäpeä)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내가 느끼는 수치심을 말한다. 책에 나온 단어는 아니지만 티에라 델 푸에고에서 유래한 말 중에 마미흘라피나타파이(Mamihlapinatapei)는 가장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 중 하나로 꼽힌다. 말없이 두 사람이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어 하지만 둘 다 시작하지는 않는 것, 또는 상대방이 두 사람 모두가 원하는 것을 제안하기 바라면서 서로를 쳐다보는 것으로 번역된다. 설명하면 누구나 '맞아, 그런 때가 있지'라고 동의할 만한 단어가 어떤 문화권에는 있고, 다른 문화권에는 없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말들에도 나라별 특징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노르웨이에는 자연을 즐기는 순간에 대한 표현이 많고, 중국에는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나 연대감을 뜻하는 단어가 많다. 그럼 우리나라에만 있고 다른 나라에는 없는 말이 뭐가 있을까?

태권도, 김치 같은 고유명사를 제외하고 어떤 행동이나 문화, 정서를 설명하는 말 중에는 대표적으로 재벌, 먹방, 갑질, 개저씨, 애교, 오빠 등이 꼽힌다. 재벌은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됐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갑질을 소개하며 2014년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을 그대로 전하기도 했다. BBC가 오늘의 단어로 꼰대(Kkondae)를 선정한 적도 있었다.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으로 다른 사람은 늘 잘못됐다고 여긴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단어들 중에 부정적인 단어가 많아 얼굴이 붉어진다. 우리나라는 휘게라는 단어를 사랑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가진 단어는 재벌, 갑질, 꼰대 같은 것들이다. 줄 세우기를 습관화하고, 남들과 비교하기 좋아하고,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이 낮은 탓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쓰는 언어가 당신의 세계라던데,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 걸까.

분노가 자원이 된 세계에서는 순간적인 분노를 일으키거나 표현하는 단어들이 많이 쓰인다. 유튜브의 섬네일은 폭력적이고 감각적인 단어로 가득 찬다. 관심은 곧 돈이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으로는 분노만큼 즉각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시간과 감정을 들여 콘텐츠 제공자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사이, 당신의 언어는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당신이 가장 자주 쓰는 단어는 무엇인가?


박초롱 딴짓 출판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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