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백세] 50~60대가 격렬한 농구를? "한번 중독돼 보실래요?"

입력
2022.12.12 12:00
수정
2022.12.12 16:26

<3> 아버지 농구단을 아시나요

편집자주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한국은 2025년엔 65세 이상 비율 20.6%로 초고령 사회 진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83.5세이나 건강 수명은 66.3세에 불과합니다. 평균 17.2년을 질병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서글픈 현실. 건강한 노년을 실천하는 이들이 즐기는 운동을 통해 100세 시대 건강 장수법을 소개합니다.

아버지 농구단 '레전드' 회원들이 10월 22일 서울 세곡중학교 체육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레전드는 12월 강원 인제에서 열리는 전국 대회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류효진 기자

아버지 농구단 '레전드' 회원들이 10월 22일 서울 세곡중학교 체육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레전드는 12월 강원 인제에서 열리는 전국 대회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류효진 기자


주말을 맞은 지난 10월 22일 서울 세곡중학교 체육관. 오후 3시가 다가오자 귀밑머리 희끗희끗한 50~60대 장ㆍ노년 남성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아버지 농구단 ‘레전드’ 팀 회원들이 주말 농구를 즐기기 위해 모인 것. 간단한 준비 운동 후 곧장 연습 경기로 돌입하는 모양새가 이미 적지 않은 기간 체력과 기본기로 다져진 듯했다.

놀라운 점은 28mx15m 크기의 농구 코트를 모두 사용(풀 코트)한다는 것. 청년들도 소화하기 쉽지 않은 운동량이다. ‘너무 힘들지 않나?’는 질문에 한 회원은 “아직 일흔도 안 됐는데 무슨 소리! 이 정도는 충분히 뛰어야지”라며 큰 소리로 웃었다.

서울고등학교 동문 출신들로 모임의 첫발을 뗀 후 2017년에 정식으로 창단, 이제는 농구를 좋아하는 만 50세 이상이라면 누구든 환영이다. 전체 회원은 30명. 매주 3시간 가량 농구를 즐긴다. 강동희 전 프로농구단 감독과 신동찬 등 전 프로선수 출신도 있지만, 대부분 일반 직장을 다니거나 개인 사업을 하는 아마추어다. 전국 28개 아버지 농구팀 중 평균 연령이 가장 높지만 전국 대회에선 꾸준히 4강~8강에 진출할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몸 놀림은 조금 느리지만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듯한 정확한 패스와 슛 정확도, 상대 수비를 따돌리는 스크린 플레이와 외곽으로 공을 돌리는 모습까지 베테랑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레전드 회원이자 아버지농구협회장 김세환(67)씨는 “고교 엘리트 팀과도 어느 정도 경기가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강동희 전 프로농구 감독(5번) 등 아버지 농구단 '레전드' 회원들이 10월 22일 서울 세곡중학교 체육관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류효진 기자

강동희 전 프로농구 감독(5번) 등 아버지 농구단 '레전드' 회원들이 10월 22일 서울 세곡중학교 체육관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류효진 기자

격렬한 몸싸움이 동반되는 스포츠라 부상 염려가 없을 수 없다. 김 회장은 그러나 “매주 꾸준히 운동하다 보니 다들 노하우가 생겨 의외로 큰 부상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다들 상황에 맞게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면서 “운동 후 다음날 근육통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기분 좋은 통증이다”라며 웃었다.

물론 시니어 경기인 만큼 경기 시간은 7분씩 4쿼터로 조금 완화했다. 또 ‘아버지 농구’인 만큼 팀당 55세 이상 선수가 최소 1명 이상 코트에 있어야 한다. 만 60세 이상 선수가 득점할 경우 1점을 더 주는 어드밴티지 규정도 있다. 예를 들어 63세 선수가 2점슛에 성공했다면 3득점으로, 3점슛은 4득점으로 인정한다. 지난 2013년 6팀으로 시작한 시니어 농구는 협회에 등록된 팀만 전국 28개 팀에 300여 회원에 달할 정도로 확산했다. 지난 6월에도 18개 팀이 참가해 열띤 경쟁을 펼쳤고, 오는 12월에도 강원 인제군 일대에서 전국대회가 또 열린다. 일부 팀들은 태국 등 해외 원정경기까지 떠난다고 한다. 협회 차원에서도 내년부터 일본, 대만, 중국, 필리핀 등 인근 국가 팀을 초청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김세환 아버지농구협회장이 10월 22일 서울 세곡중학교에서 농구를 즐기고 있다. 김 회장은 위암으로 위를 90%나 절제하는 위기를 겪었지만, 농구를 통해 꾸준히 체력을 단련하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김세환 아버지농구협회장이 10월 22일 서울 세곡중학교에서 농구를 즐기고 있다. 김 회장은 위암으로 위를 90%나 절제하는 위기를 겪었지만, 농구를 통해 꾸준히 체력을 단련하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장ㆍ노년들이 격렬한 스포츠 중 하나인 농구에 이처럼 매료된 이유는 뭘까.

우선 노년기 건강 유지에 농구만 한 것이 없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실제로 김세환 회장의 경우 지난 1998년 위암 판정을 받고 위의 90%를 절제하는 등 큰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체력 보강을 위해 2004년부터 농구공을 잡았고, 암 극복을 위한 기본 체력 유지에 큰 도움을 받았다. 또 다른 팀의 A(53)씨의 경우는 10년 가까이 만성신부전증으로 고생 중이지만 역시 꾸준히 농구를 하면서 건강을 지키고 있다. 김 회장은 “농구 때문에 암을 극복했다고 할 순 없지만 현재 신체 건강의 60~70%는 농구 덕분”이라며 “많이 뛰어다니니 자연스레 유산소 운동이 되고 폐활량 및 체력 증진에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규칙적인 생활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게 크다”라고 농구 예찬론을 펼쳤다.

정신 건강에도 좋다. 김 회장은 “농구 등 단체 스포츠는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다. 팀을 위해 내가 뭘 해야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즐겁고 점점 중독된다”라며 “물론 판정 불복, 팀 운영에 대한 의견 대립 등 트러블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적당한 스트레스다”라며 웃었다. 회원 B씨도 “마음이 순수해지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신체적인 것 외에도 도움되는 점이 많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아버지 농구단 '레전드' 회원들이 10월 22일 서울 세곡중학교 체육관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류효진 기자

아버지 농구단 '레전드' 회원들이 10월 22일 서울 세곡중학교 체육관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류효진 기자

고령화시대를 맞아 향후 ‘아버지 농구’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협회의 판단이다. 아직은 젊은 동호회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아버지 농구팀이 커질 것이라는 확신이다. 김 회장은 “젊은 팀에선 장ㆍ노년들이 체력ㆍ실력적으로 젊은 회원들에게 밀리는 게 현실”이라며 “하지만 아버지 농구팀에 오면 에이스가 된다. 코트를 마음껏 누리는 즐거움이 짜릿하다”라고 말했다.

물론 활성화를 위해선 △체육관 대관 △회원 유입을 위한 홈페이지 활성화 △전국대회 개최 △공식 리그 운영 등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김 회장은 “일흔 나이에도 코트에서 잘 뛴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더 나아가 후배들에게도 ‘농구 하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다”고 다짐했다.

강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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