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일본 사회와 과로사

입력
2022.12.31 04:40
12면

비정한 노동 문화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과로사는 경제담론의 많은 논의가 개인보다 기업 위주로 진행되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일러스트 김일영

과로사는 경제담론의 많은 논의가 개인보다 기업 위주로 진행되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일러스트 김일영

◇일본에서 처음 보고된 ‘과로사(karoshi)’

과도하게 일을 하다가 사망에 이르는 ‘과로사’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문제시되었다. 이 말이 일찌감치 한국에도 ‘수입’되어 회자되었기 때문에, 과로로 목숨을 잃었다는 상황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도 있겠다. 하지만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라. 인간이 과도한 노동 때문에 죽음에 이른다는 전개는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극심한 피로를 느낄 때까지 일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또, 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몸과 마음이 매우 지쳤다는 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죽음이 가까워 왔을 정도라면 육체와 정신이 보통 피폐한 것이 아닐 텐데, 그럴 때에는 당장 일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순리다. 그 당연한 순리를 지킬 수 없다면 어딘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노동 때문에 삶이 위협받는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개인을 몰아가는 노동 환경에 비정함을 느낀다.

1970년대 일본에서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과로하는 노동 환경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을 때만 해도, 일본 정부와 의학계는 “과로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심지어는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노동조합도 과로사라는 현상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일본 사회도 처음에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죽음에 이르는 현상’을 비정상적인 해프닝 정도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과로사는 개인이 죽음에 이른 직접적인 사인을 기술하는 의학 용어가 아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도 계속 일을 하게 만든 노동 환경이 죽음의 진짜 원인이라는,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용어인 것이다. 영어에는 과로사라는 단어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과로로 인한 사망’(overwork death)이라고 풀어서 설명하거나, 혹은 과로사 (過労死, かろうし)의 일본어 발음을 알파벳으로 그대로 표기해 ‘karoshi’라고 쓴다.

◇조직을 중시하는 관료주의가 과로를 부채질한다

일본에서 과로사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지된다. 과중한 업무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심혈관 발작에 따른 죽음, 혹은 업무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 혹은 직업적 스트레스의 강도가 높은 노동 환경에 기인한 자살 등을 폭넓게 과로사로 인정할 뿐 아니라, 과로사 방지를 위한 법률이 제정되는 등 다방면으로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개인을 죽음에 다다르게 할 정도로 혹독한 노동 환경이라면, 소음과 공해 물질로 가득 찬 작업장이나 쉴 새 없이 일할 것을 강요하는 고약한 현장 감독관 등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일본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온 과로사 사례들은 그런 전형성과는 거리가 멀다. 국내에서 매출 1, 2위를 다투는 유명 광고회사 사원, 대형 언론사의 정치부 기자, 대기업 영업사원, 병원에 고용된 ‘페이닥터’나 간호사 등 이른바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들이 과로사의 피해자로 스러져 간 경우가 적지 않다. 각자가 처한 노동 환경이나 경위는 다양하지만, 모두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 과도한 야근이나 휴식 없는 업무에 내몰리다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거나 스스로 불행한 선택을 했다.

일본의 대학에 재직할 때에도 주변에 조마조마하게 느껴지는 연구자 동료가 적지 않았다. 강사로 일했던 한 일본인 친구는 일주일에 무려 11개의 강의를 맡아 가르쳤다. 늘 이 대학 저 대학을 동분서주하는 사정을 들어보니, 그 정도로 많은 강의를 소화하지 않으면 생활비를 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무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과로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기본 급여만으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고소득층 전문직종에서도 과로사가 빈발하는 것을 보면, 경제적인 이유만이 과로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한 일본인 친구는 지방 대학에서 정규직 교수로 자리를 잡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강의나 연구와는 무관하게 몰려드는 자잘한 서류 작업,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학생과의 면담 등으로 매일같이 야근에 내몰리다가 연구실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위험한 상황을 넘기고 한동안 학교 업무를 쉬었지만, 모처럼의 휴식 기간에 마음이 퍽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자기 때문에 다른 동료의 업무가 늘어났다는 미안함이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바쁠 때에 쓰러지다니 민폐’라는 까칠한 반응을 보인 동료도 있었다고 한다. 주변에 신세 지는 것을 꺼리는 일본 문화적 성향도 있겠지만, 보다 일반적인 조직 문화에서도 개인의 돌출 행동은 눈총을 사기 쉽다. 조직의 업무가 수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한 명이 일을 쉬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피곤해진다. 회사원이 지쳤다는 이유만으로 휴가원을 내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또 당장은 휴식을 취했다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조직 내 협업 고리가 망가지면 이후에 더 큰 업무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

개인보다 조직의 목표를 중시하는 분위기, 관리 지향적인 관료주의적 접근법이 ‘과로하는 사회’를 부채질한다. 예컨대, 일본 정부는 과로사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매주 노동시간이 60시간이 넘어서는 안 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가이드라인 덕분에 많은 회사원들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했는지 매일 일과표를 작성해서 제출하는 새로운 업무를 떠안게 되었다. 나 역시 업무 일과표를 작성하는 것이 꽤 고역이었다. 대학 교수는 강의와 연구를 위해 ‘생각하는 것’이 일인데,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무슨 업무를 했다고 기입하는 것이 까다로웠다. 무리하게 업무 일과표를 작성하느라 야근이 오히려 늘어났다. 법의 명분은 좋지만, 천편일률적인 관리를 통해 구성원의 과로를 방지하겠다는 관료주의적인 실천방법에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결국, 과로는 개인적으로 감당하고 관리해야 하는 사안이 아니라, 과도한 노동을 강요하는 사회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손보지 않으면 극복하기 어려운 숙제인 것이다.

◇비정한 노동 문화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로사가 과연 일본만의 문제일까? 과거에는 과로사가 일본 사회의 가혹한 노동 문화 때문에 일어나는 이례적인 일인 양 생각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과로사 사례가 보고된다. 과거 “일본인은 일벌레”라고 조롱하던 서양에서도 심심치 않게 과로사가 거론되는 것을 보면, 글로벌 자본주의가 전 세계인에게 일벌레가 될 것을 강요하는 듯하다. 사실 과로사 문제가 일본에서 처음 제기된 것은, 일본 기업의 노동 환경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이 과한 노동으로 내몰리는 비정한 상황에 대해 끈질기게 문제 제기를 해 온 노동 문제 전문가와 연구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아직 갈 길은 멀어도 노동자 친화적인 직장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통의 인식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도 일본 못지않게 과로사가 많은 나라다. 그뿐 아니다. 일본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 노동자가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안전사고도 빈번하다. 세계적인 기준에 비추어 볼 때에 열악한 노동 환경과 가혹한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경제의 급선무라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그런데 오히려 노동자들이 장시간 연속 노동이 가능케 해야 한다든가, 산업 현장의 중대 재해에 대한 처벌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등 정반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니 어리둥절하다. 여전히 많은 경제 담론이 기업 중심적으로만 돌아가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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