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한 범죄의 조건

입력
2023.01.17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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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대브링크스 강도

1950년 1월 18일 자 '보스턴글로브' 1면. bostonglobe.com

1950년 1월 18일 자 '보스턴글로브' 1면. bostonglobe.com

영국의 ‘대열차강도(Great Train Robbery, 1963)’의 예처럼, 범죄 이름에 ‘대(great)’가 붙는 예가 드물지만 있다. 언뜻 부적절해 보이는 저 수식어가 붙으려면 우선 범죄 규모가 범죄사에 남을 만큼 대담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무고한 희생자가 없어야 한다. 범행 계획과 실행 과정 전체가 비범하고 치밀해야 하며,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미스터리 요소도 필요하다. 1950년 1월 17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일어난 ‘대브링크스강도(Great Brink’s Robbery)’도 그런 사건이었다.

강도단 11명은 보스턴 북부의 현금수송차량 회사 ‘브링크스’ 차고지 금고에서 단 30분 만에, 당시로선 최대 규모인 현금 등 270만 달러(근년 기준 3,100만 달러)를 털어 도주했다. 그들은 금고를 지키던 직원 5명을 노끈과 테이프로 묶었을 뿐 전혀 부상도 입히지 않았고, 노끈 외 단 하나의 물증도 남기지 않았다. 연방수사국(FBI)은 미국 전역의 유사 범죄 전과자를 상대로 수사를 벌였지만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범행 계획은 1947년 시작됐다. 강도단 일부가 회사에 위장 취업해 경비와 금고 및 경로상의 폐쇄장치나 경보기 위치 등을 파악하고 열쇠를 복제하는 게 그들 임무였다. 물론 그들은 실제 범행에선 빠져 각자 알리바이를 만든다는 계획. 하지만 회사 이전 등 돌발 변수로 인해 그들의 범행은 5차례나 무산된 끝에 실행됐고,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돈에 일절 손대지 않는다는 맹약을 하고 뿔뿔이 잠적했다.

그들 중 한 명이 다른 절도사건으로 기소된 뒤 자기 몫으로 변호사를 고용해주지 않으면 범행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위험한’ 메시지를 공범들에게 전달했다. 리더는 암살자를 고용했지만 실패했고, 죽을 뻔한 절도범이 강도사건 전모를 폭로했다. 강도단은 공소시효(당시 만 6년) 만료일을 채 한 달도 안 남긴 56년 12월 체포돼 최대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돈의 행방은 끝내 자백하지 않았다. 경찰이 회수한 돈은 5만8,000달러가 전부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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