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에 사라지는 국민게임... '카트라이더 아버지'의 심경은

입력
2023.01.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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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영석 노리온소프트 대표
27년 전 넥슨 입사... 2004년 카트라이더 총괄
지원도 없던 카트라이더, '국민게임'으로 성장
"게임이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기는 놀이"

'카트라이더의 아버지' 정영석 노리온소프트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자택 인근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게임이 '아저씨'들의 전유물이던 시대가 있었다.

국내 온라인 게임의 태동기였던 1990년대 후반을 돌이켜보자. 국산게임으로는 '리니지', 외산게임으로는 '스타크래프트'의 인기와 함께 바야흐로 '대(大) PC방 시대'가 열렸다. 당시 인기를 끌던 게임들은 모두 사냥, 전투, 성장을 중심으로 누가 더 센 지 겨루는 게임이었다. 게임의 배경은 대부분 피와 살이 튀는 '전쟁'이었다.

그래서 어른들의 놀이였던 게임엔 '중독' '폭력성' 등의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학생들은 게임에서 멀리 분리되어야 했다. PC은 담배연기로 가득찬 흡연실에 가까웠다.

그랬던 게임이 2000년대 초반부터 달라졌다. '메이플스토리', '크레이지 아케이드' 등 귀엽고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또 조작도 쉬운 캐주얼 게임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있던 가장 대표적인 게임이 바로 '카트라이더'다.

200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1980·90년대생들에게 카트라이더는 누구나 한 번쯤 해본 적 있는 추억의 게임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워 즐길 수 있어 '국민게임' 칭호까지 붙었을 정도였다. 카트라이더 이후 캐주얼 게임이 대세가 됐을 정도로, 게임이 특정 마니아층의 독점물에서 벗어나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놀이가 된 출발점에 카트라이더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자들만 드글대던 PC방에 여성 게이머들을 끌어들인 일등공신 중의 하나기도 하다.

카트라이더가 올해 3월 30일 서비스를 종료한다. 지난 2004년 6월 처음 선을 보였으니, 19년 만이다.

설 명절을 앞둔 17일 한국일보는 '카트라이더의 아버지'라 불리는 정영석 노리온소프트 대표를 만나 카트라이더 서비스 종료에 대한 소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 대표는 1996년 넥슨에 입사해 2003년 카트라이더 제작 총괄을 맡았다. 그 성과를 인정 받아 개발본부장 등을 지냈다. 하지만 2012년 돌연 퇴사 후, 작은 개발사인 노리온소프트를 직접 세워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그게 되겠어?" 넥슨도 버렸던 게임, 카트라이더

2004년 6월 출시된 온라인 레이싱게임 카트라이더. 넥슨 제공

"아들이 이제 중학생인데, '너가 하는 카트라이더 게임, 내가 만든 거다'라고 해도를 믿지를 않아요. 처음 카트라이더를 개발했을 때 유통기한을 '2년'으로 봤거든요. 20년 갈 줄 알았으면 넥슨을 안 나왔을텐데(웃음)"

긴 세월이 흘렀다. 18년 전 미혼의 꿈 많은 개발자였던 정영석 대표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를 둔 아버지가 돼 있었다.

정 대표는 1996년 막 창업한 넥슨에 입사할 당시 전자통신공학을 전공한 대학생이었다. 개발뿐 만 아니라 그림과 디자인에 능통해 그래픽 디자이너로 업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입사 후 그가 맡았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어둠의 전설'이었다. 어둠의 전설은 큰 성공은 아니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내면서 정 대표의 능력도 어느정도 인정을 받았다.

그가 한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처음 개발한 작품은 '비트댄스'였다. 비트댄스는 캐주얼 리듬액션 게임으로 2001년 8월 오픈 베타테스트를 시작했지만 게임의 퀼리티 문제, 낮은 시장성 등으로 정식 출시도 못해보고 서비스가 중단됐다. 입봉작부터 쫄딱 망했던 셈이다.

정 대표는 "당시 고 김정주 넥슨 회장이 '네가 말을 잘 하니 마케팅 부서로 가거나, 아니면 게임 개발 쪽에 남을지 결정해라. 대신 너한테는 프로젝트 전체를 맡기긴 힘들겠다'고 했다"며 "오기가 생겨서 게임 개발을 계속하겠다고 했더니 기획팀장으로 발령 받은 프로젝트가 '크레이지 아케이드'였다"고 회상했다.

개발이 어느정도 진행됐던 크레이지 아케이드에 합류한 정 대표는 캐릭터들에 숨을 불어넣는 역할을 맡았다. 정 대표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귀여운 발음으로 바꿔 캐릭터들에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크레이지 아케이드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다오와 배찌 등 이 게임의 인기캐릭터들은 현재 넥슨을 대표하는 마스코트가 됐다.

그런데 그렇게 애써 만든 캐릭터들을 한 번 쓰고 두기 아까웠단다. 정 대표는 이 캐릭터를 활용해 레이싱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다행히 허가가 떨어졌다.

"마음대로 해봐. 그런데 지원은 없어."

"누구나 다같이 잠깐 즐길 수 있는 것이 게임"

지난 2011년 10월 경기 수원시 수원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대통령배 KeG 수원정보과학축제'에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한 팀이 돼 레이싱게임 '카트라이더'를 즐기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2003년 처음 카트라이더 프로젝트에 배정된 인원은 정 대표를 포함해 단 두 명. 이후 두 명이 더 추가돼 총 4명이서 카트라이더의 기초를 다졌다고 한다.

지원은 부족했지만 개발 과정은 즐거웠다. 아무도 "이래라 저래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 대표는 "어쩌면 회사에서 우리 팀이 있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라며 "그 정도로 기획부터 출시까지 어떤 간섭이 없었다"고 말했다.

마음대로 만들 수 있었던 카트라이더는 평소 그의 게임에 대한 지론이 반영된 작품이었다. 정 대표는 "취향에 따라 갈리겠지만, 게임을 할수록 그 경험이 캐릭터가 아닌 게이머에게 쌓이는 게임을 선호하는 편"이라며 "게임을 하면서 고민도 많이 해아하고 시간·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롤플레잉(RPG)이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보다는, 버추얼파이터 같은 격투 게임이나 축구 게임 등 짧은 시간 동안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을 좋아하고 또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카트라이더에는 게임을 오래할수록 강해지는 레벨이나 경험치 시스템이 없었다. 기존 레이싱게임과 달리 조작도 쉬워서 누구나 카트라이더의 핵심인 '드리프트' 기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여러 사람이 다같이 즐길 수 있도록 '팀전'과 '아이템전'도 추가됐다. 통상 레이싱 게임에 들어가는 파츠 업그레이드 시스템도 모두 빠졌다.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정 대표는 "개발 단계에서 지켜보니 항상 이기는 사람만 이기더라"며 "내가 이기지 않더라도 우리 팀이 이기면 이길 수 있는 팀전이 카트라이더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새벽까지 혼자 컴퓨터 앞에서 쓰러지는 것이 게임이 아니라, 오락실처럼 다같이 모여서 깔깔거리면서 잠깐 재밌게 놀 수 있는 것이 게임이라는 본질을 카트라이더에 녹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본 카트라이더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대성공을 거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했던지, '국민게임'으로까지 불렸다. '최고 동시접속자 수'가 인기 게임의 척도이던 당시 최고 20만 명을 기록했다. 출시 1년도 안 돼 등록회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한때 스타크래프트를 꺾고 PC방 점유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정 대표는 카트라이더 출시 1년간 매주 주말을 회사에서 보냈다. 10명으로 늘어난 개발진이 매주 새로운 트랙과 카트바디를 업데이트했다. 정 대표는 "나이는 서른셋인데, 모은 돈은 없고 빚도 수천만 원인 상황에서 카트라이더가 망하면 저도 완전히 망하는 거라 출시 초기에는 잠을 거의 못 잤다"고 말했다.

넥슨의 스타개발자가 돌연 퇴사?

정영석 노리온소프트 대표(당시 넥슨 개발본부장)이 2007년 12월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카트라이더의 성공으로 정 대표는 흔히 말하는 스타 개발자가 됐다.

이후에도 그의 게임에 대한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이후 '에어라이더'와 '버블파이터', '배틀스타 리로드' 등 그가 제작에 참여한 게임은 모두 한국에선 늘 비주류로 불리는 아케이드 게임이었다. 카트라이더와 비교하면 모두 아쉬운 성적이었다. 하지만 정 대표는 게임의 성공을 다르게 정의했다.

"보통 카트라이더 개발에 통상 20억~30억 원 들었다고 해요. 게임 개발비라는 것이 결국 인건비 곱하기 개발기간이니깐요. 그런데 저는 20억 원의 비용으로 게임으로 만들어서 40억 원만 벌면 성공한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던전앤파이터 등으로 성공을 거둔 회사 입장에서는 그 정도로는 성공이라고 할 수 없었던 거에요.

결국 정 대표는 2012년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그는 "그럼 내가 직접 회사를 차려서 개발비 5억 원짜리 게임을 만들어서 10억 원만 벌어야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퇴사를 결심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만든 작은 개발사가 노리온소프트였다. 노리온은 '온라인 놀이터'라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이후 10년간 노리온소프트는 '드래그레이서' '몬스터 벽돌깨기 히어로' 등 간단하지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캐주얼 게임을 만드는 데 주력해왔다.

후속작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레이싱게임 카트라이더의 후속작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넥슨 제공

그 사이 카트라이더는 서비스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여러 문제을 겪었다. 중국 시장에서 최고 동접자 80만 명을 기록하는 등 인기는 여전했지만 '국민게임'이라는 칭호는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중반 스페셜포스, 서든어택 등 1인칭슈팅게임(FPS)이 인기를 끌면서 다수의 유저가 빠져나갔다. 유저간 실력 차이가 커지면서 캐주얼 유저들은 떠나고, '고인물'(한 게임을 오래해 실력이 높은 유저)만 남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결국 넥슨은 카트라이더 서비스 종료 예고와 함께 지난 12일 정식 후속작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를 출시했다.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는 원작의 게임성과 조작성 등 장점을 잘 계승하면서도, 언리얼 엔진을 사용해 그래픽을 현세대로 끌어올리는 등 모바일을 비롯한 차세대 플랫폼에 맞게 재탄생시켜 게이머 사이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카트라이더의 아버지'라 불리는 정 대표는 아들 같은 게임인 카트라이더의 서비스 종료가 아쉽지 않았을까.

정 대표는 "게임은 머리를 식히고 즐겁기 위해 하는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20년 전에 나온 게임이니, 언제 서비스가 종료돼도 이상하지 않을 게임이었다"라며 "사람들이 즐겁게 했다면 언제 끝나도 상관 없었다"고 말했다.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를 해봤냐는 질문에 정 대표는 "당연히 해봤다"며 "아들과 같이 해봤는데 그 옛날 우리가 카트라이더란 게임에 담으려던 그 본질을, 그 마음을 잘 녹여내 너무나 좋았다. 개발진에 정말 고맙고 고생했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개발팀은 보통 하나의 게임을 개발완료하면 콧대가 높아져 다른 신작을 개발하러 넘어가기 마련"이라며 "'카트라이더: 드리프트'의 디렉터가 오랜 시간 카트라이더의 운영을 책임졌다고 들었는데, 그만큼 카트라이더라는 게임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게임 너무 몰입하지 마세요"

'카트라이더의 아버지' 정영석 노리온소프트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자택 인근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그럼 앞으로 정 대표는 어떤 게임을 또 개발하려는 걸까. 신작 소식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요즘 위치 기반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자를 위한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에 집중하고 있어요. 최근 게임에 흥미가 없어졌거든요."

평생을 게임개발자이자 게이머로 살아온 그의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나온 셈이었다.

정 대표는 "제가 게임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그 순간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바로 전원을 켜서 할 수 있는 것이 게임밖에 없었던 시절"이라며 "과거에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려면 다운로드를 완료하는데 대기 시간이 길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실시간 스트리밍이 가능해진 데다 간편한 콘텐츠가 대세가 되면서 인내와 플레이의 정성이 필요한 게임이 오히려 '불편한' 콘텐츠가 된 셈"이라며 "오페라가 그 시대의 '퍼블릭'이었지만, 이제는 매니아층의 산물이 된 것처럼 게임의 시대도 저물어 가고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앞으로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것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가겠다는 것이 정 대표의 포부다. 사람들이 웃고 즐길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 형태가 지금까지는 게임이었다면 앞으로는 그것이 게임이 아니어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정 대표는 "게임은 이래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게임은 오락'이라는, 근본에 가장 충실했던 개발자였던 셈이다. 그와 같은 개발자들 덕분에 누군가의 전유물이었던 게임은 2023년 설 명절 가족이 모두 함께 모여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놀이'로 자리를 잡았다.

"게임이 반드시 그래픽이 좋아야 하고, 독창적이어야 하고, 업계에서 숭배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에요. 게임을 하는 짧은 시간이나마 즐거울 수 있다면, 그게 저한테는 가장 좋은 게임입니다. 게임에 너무 몰입하지 마세요."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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