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마라도 고양이 싹 다 잡으려 했던 문화재청, 왜?

입력
2023.01.21 04: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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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천연기념물 뿔쇠오리 피해 민원에
2월 전 마라도 내 고양이 대거 포획 계획
준비 없이 무조건적 포획 안 된다는 비판에
포획 시기 늦추고 방안 마련하겠다고 선회


동물자유연대가 지난해 5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도 내 고양이들의 중성화수술(TNR)을 실시할 당시 촬영한 고양이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동물자유연대가 지난해 5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도 내 고양이들의 중성화수술(TNR)을 실시할 당시 촬영한 고양이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천연기념물을 관리하는 문화재청이 우리나라 최남단 섬 마라도에 사는 고양이의 대대적 포획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고양이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인 뿔쇠오리에 피해를 준다는 지속적인 민원이 제기된 데 따른 조치다.

하지만 일각에선 고양이 개체 수 조절이 불가피하다 해도 준비 없이 무조건적 포획만 해선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고양이 개체 수 등 기초 조사를 포함해 포획 기준, 포획 후 방안 등을 지역사회와 협의해 마련하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20일 정부와 동물단체 등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로 뿔쇠오리를 포함한 야생조류의 피해가 크다는 민원이 제기돼 뿔쇠오리가 마라도를 찾기 시작하는 2월 전 고양이를 대거 포획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뿔쇠오리는 주로 우리나라와 일본 무인도에서 번식하는 소형 바닷새로, 학계에서는 국내에 최대 300~400쌍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마라도 인근 해상에서 포착된 국제적 멸종위기종 뿔쇠오리. 한국조류보호협회 제주도지회 제공

마라도 인근 해상에서 포착된 국제적 멸종위기종 뿔쇠오리. 한국조류보호협회 제주도지회 제공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 관계자는 "지난주 문화재청,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제주도, 서귀포시 관계자들과 현장 조사를 했다"며 "고양이뿐 아니라 뿔쇠오리 알에 피해를 주는 쥐도 포획대상에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고양이를 포획한 뒤 일부는 입양 보내고 나머지는 제주도, 전남 완도 등 다른 지역 지자체 보호소에 보낸다는 게 문화재청의 당초 계획이었다.

그런데 동물단체와 전문가들은 문화재청의 포획 계획에 회의적인 반응을 내놨다. 고양이 개체 수를 파악해 어떤 고양이를 몇 마리나 포획할지, 이후 어떻게 처리할지 방안 등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잡고 보는 식의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고양이가 뿔쇠오리에 피해를 준다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는 게 먼저"라며 "더욱이 국립공원 등에서도 고양이로 인한 민원이 발생하는데, 이럴 때마다 고양이를 다 없앨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지난해 5월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가 마라도 내 고양이 중성화수술(TNR)을 준비하는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지난해 5월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가 마라도 내 고양이 중성화수술(TNR)을 준비하는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포획을 준비하면서 마라도에서 고양이를 돌보는 케어테이커 등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수의인문학자인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이 문제는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 만큼 고양이를 돌보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추진해야 한다"며 "일방적 포획이 아니라 포획 후 치료, 안락사∙입양∙케어테이커의 돌봄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양이의 포획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다만 이 역시 지역주민들과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뿔쇠오리를 연구해온 최창용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뿔쇠오리 보호를 위해 고양이를 모두 데리고 나오는 게 최선"이라며 "포획을 시작하면서 개체 수 조사 등을 병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최 교수는 "(모두 포획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사람의 관리를 벗어나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고양이들부터 포획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케어테이커 등 지역 주민들과의 협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라도 내 서식하고 있는 고양이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도에 사는 고양이가 천연기념물 뿔쇠오리에 피해를 준다는 민원이 제기되면서 문화재청은 고양이 포획 계획을 세웠다. 고양이 관리를 위해 설치됐던 급식소는 사유지 내를 제외하곤 모두 철거된 상태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마라도 내 서식하고 있는 고양이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도에 사는 고양이가 천연기념물 뿔쇠오리에 피해를 준다는 민원이 제기되면서 문화재청은 고양이 포획 계획을 세웠다. 고양이 관리를 위해 설치됐던 급식소는 사유지 내를 제외하곤 모두 철거된 상태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본보 취재가 시작되자 문화재청은 이달 중 시행 예정이던 고양이 포획을 일단 중단하고 전문가, 동물단체 등 관계자들과 뿔쇠오리 보호 방안을 논의한 뒤 포획 시행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또 천연보호구역의 생태계 보전관리 방안 관련 연구용역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마라도에서 고양이를 돌봐온 김정희씨는 "지난해 4월부터 3차례에 걸쳐 100마리에 달하는 고양이의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며 "현재 서식하는 고양이 수는 70~80마리 정도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김씨는 고양이 급식소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자 지난해 11월부터 사유지 밖의 급식소를 모두 철거한 상태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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