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라도 푸틴에 저항"… '조용한 시위' 확산하는 러시아

입력
2023.01.24 20:1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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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인 동상, 시위∙추모 공간 자리매김
꽃 놓으면 체포∙사진 촬영 제한… 러 단속↑


러시아 모스크바에 설치된 우크라이나 작가 레샤 우크라인카의 기념비 주변에 꽃들이 수북이 놓여 있다. 모스크바=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에 설치된 유명 우크라이나인 동상을 중심으로 '조용한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기념비 주변에 꽃을 놓아두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만행을 규탄하고, 전쟁으로 희생된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추모하는 식이다.

소리 내지 않는다고 안전한 건 아니다. 러시아 당국은 꽃을 놓는 행위만으로도 사람들을 잡아 가둔다. 그래도 침묵 시위는 꿋꿋하게 이어지고 있다. 동상 주변으로 쌓인 꽃들은 1년 가까이 전쟁을 끌어온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에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크라 희생자 추모"… 슬픔 속 기념비 찾는 러 국민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있는 우크라이나 작가 레샤 우크라인카(1871~1913)의 동상. 여기엔 꽃, 인형, 편지 등이 소복하게 쌓였다고 로이터,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전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설치된 우크라이나 시인 타라스 셰우첸코(1814~1861) 동상 주변도 같은 풍경이었다. 우크라이나 희생자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러시아 국민들이 가져온 꽃이다.

러시아 공습에 스러진 희생자 소식이 전해질 때 기념비를 찾는 발걸음은 특히 바빠진다. 지난 14일 우크라이나 동부 드니프로 아파트 건물로 날아든 러시아 미사일로 40여 명이 사망했을 때 동상들 주변엔 여느 때보다 꽃이 많았다. 중년 여성 리타씨는 우크라인카 기념비 앞에서 "꽃은 우리가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며 울었다.

어떤 이들은 꽃을 놓아두는 행위로 푸틴 정권을 대신해 용서를 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젊은 여성은 셰우첸코 동상 발 밑에 꽃을 놓은 뒤 "여기에 온 사람들은 연민, 슬픔과 같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표현하고자 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곳엔 '용서'라고 쓰인 쪽지도 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월 18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나치 독일군의 레닌그라드 포위선 돌파 8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EPA·러시아


"이렇게라도 저항을..." 모스크바서 시작해 전역 확산

꽃을 놓아두는 건, 그 자체로 푸틴 대통령에 대한 저항이다. 러시아에서는 전쟁을 반대하는 발언을 할 수 없다. 전쟁을 '전쟁'이라고 불러서도 안 된다. 여럿이 모여 반전 시위라도 벌였다간 큰 위험에 처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꽃은 정권을 규탄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러한 침묵 시위는 지난해 9월 푸틴 대통령이 예비군 30만 명 동원령을 내렸을 때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번졌다. 장기화한 전쟁으로 희생자가 누적되며 이러한 시위도 많아지는 모습이다. 셰우첸코 동상을 찾은 한 중년 부부는 "대체 왜 이런 일(전쟁)이 일어나고 있는지 푸틴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꽃만 놔도 잡아간다"… '꽃 단속' 바쁜 러 당국

러시아 당국은 꽃 단속에 정신이 없다. 러시아 내 시위를 모니터링하는 단체 '오브이디인포'는 "최근 우크라인카 동상에 꽃을 놓아둔 6명이 체포됐다"며 "그들 중 한 명은 '반사회적인 행위라는 경고를 받았다'고 했다"고 보고했다. 기념비 주변엔 침묵 시위를 신고하려는 러시아 민족주의자들도 자주 나타난다.

당국은 기념비 주변 꽃을 주기적으로 청소한다. 꽃 사진 촬영 행위도 막는다. 친(親)푸틴 인사들은 꽃을 놓는 행위를 '별것 아닌 행위'로 치부한다. '조용한 시위'지만 정권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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