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에 숨져 다시는 사진 함께 못 찍는 딸... "그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입력
2023.02.27 08:38
수정
2023.02.2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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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 잔해 속 딸 손 잡은 한제르 인터뷰
"딸을 묻는 고통... 말로 표현할 수 없어"

7일 튀르키예 남동부 카라만마라슈에서 메수트 한제르가 전날 강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깔려 숨진 15세 딸의 손을 붙잡고 있다. AFP 연합뉴스

7일 튀르키예 남동부 카라만마라슈에서 메수트 한제르가 전날 강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깔려 숨진 15세 딸의 손을 붙잡고 있다. AFP 연합뉴스

처참하게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 세상을 떠난 딸의 손을 꼭 붙잡고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한 채 말없이 앉아 있던 아버지. 지난 6일(현지시간) 발생한 튀르키예 대지진이 빚어낸 참상을 전 세계에 보여준 한 장의 사진이다. 형언하기 어려운 표정을 짓고 있던 사진 속 남성, 메수트 한제르(49)는 그로부터 20일 후, "내 딸은 침대에서 천사처럼 자고 있었다. 그 애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고 당시 심경을 밝혔다.

26일 AFP통신은 지진 피해가 컸던 카라만마라슈에서 수도 앙카라로 이사한 한제르를 전날 만났다며 그와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제빵사로 일하던 그는 규모 7.8의 지진이 덮쳤을 때인 6일 새벽, 이미 일터인 빵집에 나가 있었다고 했다. 1층인 집에 머물러 있던 아내, 성인이 된 세 자녀는 무사했다. 하지만 인근 할머니 댁에 간 막내딸 이르마크(15)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급히 모친의 집으로 달려간 한제르는 무너진 8층 건물 잔해 사이에서 이르마크를 찾아냈다. 그러나 침대에 누운 채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구조대가 오기까지 꼬박 하루 이상을 기다리며 딸의 시신이라도 꺼내고자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 옆에 앉아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제르는 그날의 비극을 되새기며 "딸의 손을 잡고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두 뺨에 입을 맞췄다"고 했다.

7일 튀르키예 남동부 카라만마라슈에서 메수트 한제르가 전날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사망한 15세 딸 이르마크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왼쪽이 부친 한제르의 손이다. AFP 연합뉴스

7일 튀르키예 남동부 카라만마라슈에서 메수트 한제르가 전날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사망한 15세 딸 이르마크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왼쪽이 부친 한제르의 손이다. AFP 연합뉴스

바로 그 순간, AFP통신 기자가 지진 피해 현장을 찾았다. 이제 다시는 딸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된 한제르는 "내 아이의 사진을 찍어 주세요"라며 사진 촬영을 허락했다. 통신은 이 사진을 보도하며 "고요하면서도 '부서진' 목소리였다"고 전했다. 영국 가디언 등 다른 외신도 "사진 속 안타까운 부녀의 모습만큼, 카라만마라슈의 고통을 잘 드러내는 건 없을 것"이라고 평했다.

전 세계에 이 같은 사연이 알려지며 한제르를 향한 도움의 손길도 이어졌다. 한 사업가는 앙카라의 아파트 한 채를 내주고, 현지 방송 채널에서 행정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 줬다. 한제르는 지진으로 폐허가 된 카라만마라슈를 떠나 현재 앙카라에 거주하고 있다.

메수트 한제르(오른쪽)가 25일 튀르키예 앙카라의 한 아파트에서 자신과 지진 희생자인 딸 이르마크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들어보이고 있다. 앙카라=AFP 연합뉴스

메수트 한제르(오른쪽)가 25일 튀르키예 앙카라의 한 아파트에서 자신과 지진 희생자인 딸 이르마크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들어보이고 있다. 앙카라=AFP 연합뉴스

한 예술가는 한제르와 딸을 그린 그림을 선물로 보냈다. 이 그림은 그의 아파트 거실에 걸려 있다. 한제르는 "이번 지진으로 어머니와 형제들, 조카들을 잃었으나, 그 무엇도 내 아이를 묻는 것과는 비교되지 않는다"며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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