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동생 돌보고 재산까지 준 지인 살해... 미궁 막은 결정적 증거는

입력
2023.03.0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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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다툼 중 베란다 밖으로 밀고도 극단 선택으로 몰아
피해자가 돌보던 중증장애 피고인 동생 "형이 밀었다"
넘겨받은 토지 일부 다시 달라고 하자 불만 가진 듯

편집자주

끝난 것 같지만 끝나지 않은 사건이 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사건의 이면과 뒷얘기를 '사건 플러스'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인천지법. 최주연 기자

인천지법. 최주연 기자

2019년 10월 13일 오후 2시 10분쯤. 인천 미추홀구 한 아파트 담벼락과 주차된 차량 사이에서 A씨가 처참한 모습으로 숨진 채 경비원에게 발견됐다. 그는 81세 고령이었지만 매일 걷기 운동을 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는 "90세까지 살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건강 관리에 신경 썼다.

아파트 17층 주민으로 A씨의 옆집에 살던 B씨는 시신이 발견되기 전날 112 신고를 했다. 2019년 10월 12일 오후 4시 54분쯤 B씨가 전한 신고 내용은 이랬다. "치매가 있는 노인이 없어졌다. 오전에 통화했는데 옥상에서 극단적 선택을 할 것이란 얘기를 했었다." 요양보호센터를 운영하는 B씨는 112 신고 전에 A씨가 자주 찾던 친목회 사무실을 찾아 A씨가 들른 적이 없었는지 묻기도 했다.

B씨는 A씨의 시신이 발견된 당일 오후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B씨는 "A씨가 우울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피해자 목 '피하 출혈' 자국과 '엘베 CCTV'

그러나 경찰은 B씨 진술보다는 사망한 A씨의 목 부위에서 발견된 작은 피하 출혈 자국에 주목했다. 과학수사대는 피하 출혈이 추락이 아닌 다른 외력에 의해 생긴 것으로 추정했다. 극단적 선택이 아닐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경찰은 아파트 폐쇄회로(CC) TV 영상을 분석해 B씨가 112 신고 당일 오전 8시쯤 집에 들렀다가 10분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영상에는 B씨의 남편 C(67)씨가 옆집인 A씨의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찍혔다.

C씨는 경찰에서 "(12일 오전 8시 10분쯤) 아내를 배웅하고 A씨 집에 가보니 없었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전화해 혹시 떨어져 있는지 살펴보라고 했다. 오전 9시 넘어서 다시 갔더니 A씨는 없고 요양보호사가 와 있었다"고 진술했다. B씨도 "학교에 가기 전에 집에 들렀다. 그때 A씨 집에도 갔지만 없어서 그냥 나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A씨가 떨어져 있는지 가보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아파트 뒤편으로) 가봤으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 소재 대학에서 강좌를 듣고 있던 B씨는 이날 오전 시험을 치르고 일부 수업도 정상적으로 받았다.

피고인 장애인 동생의 결정적 진술

B씨 부부의 진술에 수상한 점은 있었지만, 목격자가 없는 상황에서 사건은 자칫 미궁에 빠질 수 있었다. 경찰은 A씨 집에 거주하며 A씨의 보살핌을 받던 C씨의 동생으로부터 결정적 진술을 확보했다. A씨의 집 거실에서 A씨와 C씨가 싸웠고, 그 자리에 B씨도 있었다는 것이다. 뇌성마비로 중증 장애를 앓던 C씨의 동생은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 C씨가 A씨의 멱살을 잡고 흔들거나 목 부위를 미는 행위를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실제 집 구조상 C씨 동생이 누워 생활하는 방에선 거실이 보였다. 경찰 관계자는 "C씨 동생은 말하거나 글씨를 쓰는 게 어려워, 고개를 끄덕이거나 목격한 장면을 손동작으로 보여주는 식으로 조사에 응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C씨 동생의 진술을 토대로 추궁하자 B씨도 "남편이 A씨 집에서 A씨와 다투다가 밀어 떨어뜨렸다"고 털어놨다. B씨는 법정에선 "목격한 적이 없다"고 진술을 번복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C씨 동생의 진술이 B씨 진술과 일치했던 데다, 직접 목격하지 않았으면 진술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결국 2019년 10월 12일 오전 8시쯤 C씨가 A씨를 거실 베란다 밖으로 밀어 살해한 것으로 보고, C씨를 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C씨 동생의 진술이 없었다면 자칫 미궁에 빠질 사건이었다"고 기억했다. C씨는 지난달 14일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 "불법성과 반사회성 크다"

살해된 A씨는 2014년 병원에서 아내를 간병하던 중 B씨 부부를 알게 됐다. A씨는 2016년 부인이 사망한 뒤 집을 오가며 식사를 챙겨주는 등 친분이 쌓인 B씨에게 충남 태안군 토지 소유권을 넘겨줬다. 그는 자신이 사망할 경우 집 소유권도 B씨에게 넘겨주겠다고 약속했다. B씨는 A씨의 신용카드로 골프의류와 가구 등을 구입하기도 했다.

2017년 11월 B씨 부부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한 A씨는 중증 장애로 거동이 어려운 C씨 동생까지 돌봤다. 하지만 재산을 B씨 부부에게 넘긴 뒤 세금과 병원비를 내는 것조차 어려워진 A씨는 "태안군 토지를 매도해 돈을 나눠 달라"고 요구했다. 이때부터 C씨는 A씨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고인 부부에게 재산을 증여했고 장애가 있는 피고인 동생을 지극정성으로 돌봤던 점을 고려하면 불법성과 반사회성이 크다"며 "피고인은 유족의 용서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환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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