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에 '대규모 정전' 걱정이라니···넘치는 태양광 탓에 첫 전력공급 통제

입력
2023.03.24 18:40
수정
2023.03.2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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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첫 '봄철 전력수급 특별대책' 발표
호남·경남 등 지역에 태양광 발전설비 집중
전력 과잉생산 영향 '블랙아웃' 선제 조치

올 1월 경기 수원시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전력수급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 1월 경기 수원시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전력수급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사상 처음 봄철 전력수급 특별 대책을 내놨다. 그동안 여름이나 겨울에 냉난방 등에 필요한 전력이 모자라는 비상 상황을 대비한 경우는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전력 수요가 낮은 따뜻한 봄에 전력 공급을 통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더구나 태양광 발전 설비가 늘어나면서 필요한 양보다 전력이 너무 많이 생산돼 자칫 '대규모 정전(블랙아웃)'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꼽은 것도 이채롭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다음 달 1일부터 호남·경남 지역을 대상으로 태양광 설비 용량 기준 최대 1.05기가와트(GW)까지 출력을 제어하는 내용의 봄철 전력수급 특별대책을 24일 발표했다. 정부가 계획하는 출력제어 용량인 1.05GW는 원자력 발전소 1기가 생산하는 전력량과 맞먹는 규모다. 먼저 공공기관이 가진 설비부터 차단한 뒤 민간 보유 설비로 그 대상을 늘린다. 날씨가 맑은 주말이나 어린이날 등 연휴에는 공장 가동이 중단돼 전력 수요가 더욱 줄어드는 만큼 필요하면 24시간 돌아가는 원전에 대해서도 제한적으로 출력 조정에 들어갈 예정이다.



태양광 설비 급증… 발전량 관리 어려움 커져

경남 함양군에 설치돼 있는 태양광 발전 설비.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남 함양군에 설치돼 있는 태양광 발전 설비. 한국일보 자료사진


산업부 측은 특별 대책을 마련한 이유로 ①태양광 발전 설비가 특정 지역에 몰려 있고 ②그렇지 않아도 출력 조절을 유연하게 하기 어려운 태양광 에너지 관리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 보급이 늘어나면서 태양광 설비로 생산된 전력 용량은 2018년 7.5GW에서 21일 기준 26.4GW까지 약 5년 동안 네 배 가까이 증가했다. 문제는 태양광 발전이 호남·경남 등 일부 지역에 집중 보급됐다는 점이다. 태양광 설비 설치는 오래 걸리지 않지만 여기서 만들어진 전력을 보내기 위한 송·배전망을 짓는 데는 각종 주민 민원과 보상 문제 등이 얽혀 있어 최소 4, 5년이 걸린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최근 1, 2년 만에 태양광 설비가 갑자기 늘어나 발전량이 많아졌다"면서 "문제는 정작 전력 수요가 많은 수도권 등으로 보낼 때 필요한 기반 시설은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과부하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태양광 발전은 날씨와 계절에 따라 발전량의 변동 폭이 매우 크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상대적으로 태양광 발전량은 증가하지만 전력 수요는 낮아지다 보니 전기가 남는다. 전기는 수요보다 공급이 모자라도 문제지만 공급이 너무 많아질 경우 송·배전망이 감당하지 못해 블랙아웃(대정전)을 일으킬 수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은 수요 수준에 따라 감소하거나 늘리는 신속한 출력 조정이 어려운 만큼 전력 수급 균형을 맞추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규모 정전에 대비해 선제 조치에 나섰지만 원전 발전량을 제어하는 상황까지 이어질 경우 손실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원전의 경우 1기가 가동을 멈추면 하루 평균 약 15억 원의 손해가 발생한다는 것이 에너지업계의 관측이다.

환경단체에서는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늘어나면서 전력 과잉생산에 따른 블랙아웃 가능성이 일찍이 점쳐졌으나 미리 대처하지 않았던 정부의 책임 방기를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2017년부터 태양광 설비 확충에만 치중한 채 신재생에너지 보급에 필요한 각종 인프라 설치는 미뤄와 태양광사업자들의 피해만 커졌다는 것이다. 임재민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단순히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뿐 아니라 여러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왔으나 뒷전이었다"며 "최근 대규모 정전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자 애꿎은 태양광 출력을 제어하는 대책을 내놓은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산업부는 태양광 발전량이 많은 시간대에 ①양수발전소의 저수지 아랫물을 위로 끌어올려 초과 발전된 전력을 저장하고 ②수력발전과 출력 제어가 가능한 바이오 발전 등 운전을 최소화하는 등 추가 조치도 취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태양광 발전에 과부하가 걸려 가동이 중단되지 않게 전압·주파수가 낮아져도 발전 설비가 멈추지 않고 계속 운전할 수 있게 해주는 고성능 인버터 같은 안정 설비를 늘려갈 예정이다.

이호현 산업부 전력정책관은 "관계 기관은 이번에 마련한 수급 대책을 차질 없이 이행해 국민들의 전기 사용에 한 치의 불편함도 없도록 노력해주길 당부한다"고 밝혔다.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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