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운동' 된 청년들의 기후소송… "기성세대 때문에 죽을 순 없다"

입력
2023.04.01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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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웨덴 청소년·청년 환경단체 '오로라'

지난해 11월 25일 스웨덴 청소년과 청년들로 구성된 환경단체 '오로라'가 수도 스톡홀름에서 정부의 기후위기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오로라의 법률 코디네이터 겸 대변인인 이다 에들링(23·앞줄 왼쪽 네 번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로라 제공

지난해 11월 25일 스웨덴 청소년과 청년들로 구성된 환경단체 '오로라'가 수도 스톡홀름에서 정부의 기후위기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오로라의 법률 코디네이터 겸 대변인인 이다 에들링(23·앞줄 왼쪽 네 번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로라 제공

"스웨덴 정부여, 법정에서 봅시다!"

지난해 11월 스웨덴 환경단체 '오로라'는 스웨덴 정부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이같이 외쳤다. 약 40명인 오로라 회원들의 평균 나이는 22세. 심지어 설립 당시(2020년)엔 평균 19세였다. 이처럼 '젊은 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전을 결심한 이유는 명확하다.

"조상들과 어른들이 파괴한 지구에서 '죽을 걱정'을 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정부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과감한 대책을 마련하라!"

스웨덴에서 정부와 맞붙는 '기후 소송'을 낸 건 오로라가 처음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후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20)도 원고에 이름을 올렸다. 정부의 '잘못'이 명백한 데다, 네덜란드 등에서 유사 소송과 관련해 정부 패소 판결이 잇따르고 있어 "(승소할) 희망이 있다"는 게 오로라의 분위기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수도 스톡홀름에서 이 단체의 이다 에들링(23) 법률 코디네이터 겸 대변인을 만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정부, 인간 죽이는 기후위기 '모르쇠'... '법의 심판' 필요"

오로라가 기존 환경단체들이 주로 동원하는 집회나 시위 같은 방식에 더해 '소송'까지 불사한 이유는 "정부가 법적 의무를 저버리고 있음을 공인받기 위해서"다. 법 체계 안에서 정부의 불법·위법이 확인된다면, 정부도 기후위기를 더 이상 방관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과감한 조치'를 취하도록 강제하겠다는 의미다.

지난해 11월 25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환경단체 오로라 주도로 열린 기후위기 관련 시위에 스웨덴 출신 유명 기후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맨 앞)가 참석해 피켓을 들고 있다. 스톡홀름=AP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5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환경단체 오로라 주도로 열린 기후위기 관련 시위에 스웨덴 출신 유명 기후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맨 앞)가 참석해 피켓을 들고 있다. 스톡홀름=AP 연합뉴스

에들링은 인터뷰에서 정부 잘못을 조목조목 짚었다. 그는 "스웨덴은 '2045년까지 탄소 중립(이산화탄소의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이루겠다'는 법을 만들었지만, 그에 걸맞은 실천을 하지 않고 있다"며 "헌법이 보장하는 건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해 10월 집권한 우파 연립정부가 기후·환경 의제를 중시하지 않는 기조를 보이면서, 청년들의 '실존적 두려움'은 더 커졌다. 에들링은 "대법원 최종 판결까지는 3~5년이 걸릴 텐데, 그사이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할까 무섭다"고 말했다.

오로라는 스웨덴 정부를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이라며 직격하고 있다. 에들링은 "기후위기가 동식물을 멸종시키고 인간의 목숨까지 앗아가고 있다는 건 과학적으로 증명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고 했다. 기후위기 피해가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가, 사회적 약자 등에 집중되고 있는 현실을 거론하면서 "스웨덴이 '선진국'이라면 이를 간과해선 안 된다"고도 꼬집었다.

오로라가 이번 소송에서 바라는 건 '스웨덴 정부는 2019년부터 2030년 사이에 매년 650만~940만 톤의 탄소를 감축하라'는 법원 판결을 받아내는 것이다. 최소한의 목표다. 그다음으로는 △해외에 설립된 스웨덴 회사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스웨덴 몫'으로 계산하고, △숲 조성과 같은 탄소 저감 계획을 제대로 마련하는 등의 조치도 취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웨덴 환경단체 오로라의 법률 코디네이터 겸 대변인인 이다 에들링(왼쪽)이 지난달 21일 나카지방법원으로부터 '소송 개시 판단'을 받았다고 알려주는 서류를 동료와 함께 들고 있다. 오로라 제공

스웨덴 환경단체 오로라의 법률 코디네이터 겸 대변인인 이다 에들링(왼쪽)이 지난달 21일 나카지방법원으로부터 '소송 개시 판단'을 받았다고 알려주는 서류를 동료와 함께 들고 있다. 오로라 제공


"기후 소송은 이미 '세계적 운동'… 이길 수 있다"

일단 첫 관문은 통과했다. 스웨덴 나카지방법원은 지난달 21일 '오로라가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을 진행해도 된다'고 판단했다.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그간 '무반응'으로 일관했던 정부도 이제 3개월 내에 공식 입장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에들링은 "법원이 소송을 기각하지 않았다는 건 '기후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의무와 책임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처음 인정한 것으로, 우리로선 '작은 승리'를 거둔 셈"이라며 "흥분되지만, 책임감과 부담감도 커졌다"고 말했다.

오로라는 지구촌의 수많은 청년이 먼저 그 길을 걷고 있다는 데 든든함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 9월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청년 7명은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노력이 미흡하다"며 주정부를 고소했고, 오스트리아에서도 16세 미만 청소년 12명이 정부를 상대로 비슷한 소송을 낸 바 있다. 원고를 전 연령대로 넓히면 이런 사례는 더 많다. 에들링은 한국에서 제기된 헌법소원 4건도 언급하며 "정부를 피고로 한 기후 소송은 이제 '전 세계인이 함께하는 기후운동'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승리에의 자신감'도 있다. 에들링은 "비슷한 법적·사회적·문화적 기반을 가진 유럽 국가들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고 있다는 건 호재지만, 정부를 상대로 한 싸움은 여전히 쉽지 않다"면서도 "기후위기 때문에 죽을 수는 없으니 더 탄탄하게 소송 준비를 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스톡홀름=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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