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숨진 외국인 현지 유족에 퇴직금 지급 거부 "위헌"

입력
2023.03.26 14:45

베트남 노동자 유족 퇴직공제금 청구했으나 거절
재판관 전원일치 "건설근로자법 평등원칙 위반"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연합뉴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연합뉴스

국내에서 일하다 숨진 외국인 건설노동자 유족이 외국에 거주할 경우 퇴직공제금을 받지 못한다고 규정한 옛 건설근로자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베트남 국적 A씨가 옛 건설근로자법 제14조 2항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해당 건설근로자법 조항은 산재보험법 규정을 준용해 '외국에 살고 있는 외국 국적 유족은 건설근로자회 퇴직공제금을 받을 수 없다'고 규정했다.

A씨 남편은 한국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하다 2019년 9월 터널 공사현장에서 무개화차(덮개나 지붕이 없는 화물차량) 사이에 머리가 끼어 사망했다. 베트남에 거주하던 A씨는 건설근로자공제회에 퇴직공제금을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공제회가 옛 건설근로자법 조항을 근거로 지급을 거절하자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A씨가 청구한 심판 대상 조항이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합리적 이유 없이 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유족을 '대한민국 국적 유족' '국내 거주 외국인 유족'과 차별해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 "건설근로자 퇴직공제금 제도는 사업주가 납부한 공제부금을 재원으로 한 퇴직공제금을 건설근로자공제회가 건설근로자나 그 유족에게 지급하는 것"이라며 "외국 거주 외국인 유족에게 퇴직공제금을 지급하더라도 국가 재정에 영향을 미칠 일이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해당 국가에서 발행하는 공신력 있는 문서로 수급 자격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만큼, 일시금인 퇴직공제금에 연금 지급 방식인 산재보험법 규정을 건설근로자법에 가져다 쓰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덧붙였다.

현행 건설근로자법은 2019년 11월 법 개정으로 '외국 거주 외국인 유족 제외' 규정이 사라졌다. 법 개정 이후 퇴직공제금 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엔 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유족도 퇴직공제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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