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떠있는 50분 동안 가슴 벅차 눈물이"… 이스타항공, 3년 만에 날았다

이스타항공 제주행 'ZE 205'에 탄 사람들

이스타항공이 3년 만에 비행기를 띄운 26일 승객들이 제주국제공항에 내리고 있다. 제주=김형준 기자

"눈물이 났죠. 마음 같아선 펑펑 울고 싶은데 딸이 있어서 꾹 참았어요."

송형기(44) 이스타항공 부기장은 26일 오전 6시 50분 서울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으로 향한 'ZE205'에 가족과 함께 손님으로 탑승했다. 3년 만의 첫 이스타항공 운항편이다. 2020년 3월 경영난으로 운항을 중단했을 때만 해도 그는 금세 회사가 정상화돼 다시 콕핏(cockpit·조종석)에 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창업주의 횡령과 배임, 부정채용 등 여러 논란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속에 운항 재개는 미뤄졌다.

이스타항공이 3년 만에 비행기를 띄운 26일 송형기(오른쪽) 부기장과 그의 가족이 제주국제공항 출구를 향하고 있다. 제주=김형준 기자

조종간(비행기의 운전대)을 내려놓을 때 초등학교 3학년생이던 딸은 6학년이 됐다. 송 부기장은 "아빠, 그래도 비행기 운전 연습은 계속해야 한다"던 딸의 채근에 힘을 냈다고 한다. 직원임에도 항공권을 사서 딸과 아내를 초대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송 부기장은 "50분 남짓의 비행 동안 막막했던 지난 3년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며 "이제 회사가 정상화됐음이 실감났다"고 했다.

손님으로 동행한 옛 직원들, 손님에게 기념품 나눠 준 사장

이스타항공이 3년 만에 비행기를 띄운 26일 조중석 이스타항공 대표가 김포국제공항에서 탑승객들에게 기념품을 전달하고 있다. 제주=김형준 기자

이정 이스타항공 정비본부장이 26일 3년 만의 첫 운항인 ZE205의 출발을 앞두고 긴장한 모습으로 안전을 살피고 있다. 김형준 기자

이날 ZE205편에는 송 부기장 가족을 포함한 187명이 다양한 사연을 품고 함께 제주를 향했다. 2020년 무려 600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구조조정 대상이 돼 이스타항공을 떠났던 옛 직원도 이날 회사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비행기 맨 앞자리에 탑승해 이륙 후 결국 눈물을 터뜨렸고, 생계를 위해 퇴사 후 다른 직업을 택한 직원들도 여럿 동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타항공이 항공운항증명(AOC)을 다시 취득한 뒤 앞으로 사람을 뽑을 때 해고된 직원들이 돌아올 수 있게 힘쓰겠다고 밝히면서 이들 또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날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진 이현정 승무원은 "오랜만에 유니폼을 입고 비행기를 탔지만 예전 느낌 그대로"라며 "3년 동안 쉬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꾸준히 안전 교육을 받으며 승객을 맞기 위해 준비했다"고 했다. 이민혁 승무원은 "손님이 그동안 고생하셨다며 인사를 해주시는데 울컥했다"며 "오늘을 기억하며 안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꼭두새벽부터 김포공항을 찾아 탑승객에게 일일이 기념품을 나눠준 조중석 이스타항공 대표 역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며 "말 못 할 정도로 기쁘고 첫날 모든 항공편이 만석에 가까워 책임감 또한 크다"고 했다.

가격 높아진 제주행 티켓, 부담 줄어들까

이스타항공이 3년 만에 비행기를 띄운 26일 이민혁 승무원이 기내에서 승객들의 안전을 살피고 있다. 제주=김형준 기자

이스타항공 정비사들이 26일 3년 만의 첫 운항인 ZE205 승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김형준 기자

운항 재개 과정에서 모든 것이 매끄럽지만은 않았다. 이스타항공 첫 비행편 탑승객 일부는 김포공항 수속 시 바이오 등록 정보가 인식되지 않아 불편을 겪었고 서류 문제로 출발이 20분 정도 늦어지는 등 혼선도 있었다.

그럼에도 승객들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제주행 항공권을 저렴한 가격에 살 기회를 연 이스타항공의 재운항을 반기는 분위기다. 승객 이찬희(27)씨는 "9,900원짜리 특가 항공(편도)을 포함해 왕복 7만 원에 예매를 할 수 있었다"고 했고, 강경민(25)씨도 "저렴한 항공권이 판매되면서 다소 갑작스럽게 여행을 결정하게 됐는데 매우 만족스럽다"고 했다.

이스타항공 부활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1A(1열 좌측 첫자리)' 좌석을 예매했다는 운송업계 종사자 유현석(29)씨는 "이스타항공의 부활 과정을 지켜보며 나 또한 힘이 났다"며 "다시는 멈추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전했다.

제주=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