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일 근무' 실험 세브란스병원..."만족도 100점 만점에 120점"

입력
2023.03.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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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주 4.5일제 도입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주 4.5일제 도입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에 대한 부정 여론이 높아지자 노동계와 야당이 '주 4.5일 근무' 논의를 본격화했다. 연장근로를 유연화하는 정부의 개편안이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한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이참에 노동시간 단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민주연구원이 29일 국회에서 개최한 '주 4.5일제 도입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근로시간을 실질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여러 방안과 사례가 언급됐다.

'법정 노동시간 단축, 연장근로 제한 축소, 유급휴가 증가' 제안

발제를 맡은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정부 통계에 따르면 장시간 노동을 하는 근로자는 무노조, 파견용역, 특수고용, 여성, 고령, 소규모사업장에 많았는데, 장시간 노동을 줄이겠다는 정부가 실제 최근 만나 의견 수렴하는 집단에는 정작 이들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이 제안하는 '근로시간 단축 패키지' 방안은 세 가지다. ①근로기준법상 40시간으로 고정돼 있는 법정 노동시간을 단축하거나 ②주당 연장근로 제한을 현행 12시간(총 52시간)에서 8시간(총 48시간)으로 줄이거나 ③기본 유급휴가 일수를 15일에서 20일로 늘리는 것이다. 김 소장은 "과로와 산재 위험을 줄이고, 유럽연합(EU)과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시하는 기준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몇몇 국가는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주 4일제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주 4일제 실험을 하고 있는 아이슬란드나 스페인, 벨기에뿐 아니라 영국과 미국에서도 관련 실험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김 소장은 "지난해 미국과 아일랜드 33개 기업을 대상으로 주 4일제를 시행한 결과 근로자들의 스트레스가 줄고 직업 만족도가 높아졌으며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기업 매출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결과도 있다"고 했다.

'주 4일제' 실험 시작한 세브란스병원... "100점 만점에 120점"

지난해 8월 연세의료원과 세브란스병원노조가 체결한 임금협약에는 주 4일제 시범사업 내용이 포함돼 있다. 세브란스노조 제공

지난해 8월 연세의료원과 세브란스병원노조가 체결한 임금협약에는 주 4일제 시범사업 내용이 포함돼 있다. 세브란스노조 제공

국내 사례도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지난해 노사 합의를 통해 올해 1월 1일부터 주 4일제 시범사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병동당 5명씩 총 30명을 대상으로 6개월마다 주 4일 32시간 근무 체제를 순환하기로 했으며, 참여자 급여는 총액의 8~9%(기본급의 20%)를 삭감해 비참여자와의 형평성을 맞추기로 했다. 주요 참여 대상은 모성보호 대상과 환자 중증도가 높아 사직률이 높은 병동 직원들이다. 모자란 인력에 대해서는 사측에서 병동마다 1.5명을 충원하기로 했다.

권미경 세브란스병원노조 위원장은 "24시간 돌아가는 병원에선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환자 의료사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며 "세브란스는 국내 '빅 5' 중 하나인데도 과도한 업무 부담으로 1년에 들어오는 신규 직원 400~500명 중 50%가 퇴사할 정도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가 2019년부터 주 4일제 합의를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브란스병원의 '주 4일제' 실험 약 3개월간 직원 만족도는 눈에 띄게 높아졌다. 권 위원장은 "현장에서 '100점 만점에 120점'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입사 10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건강을 돌아봤다는 참가자도 있었다"며 "간호대 학생들 사이에서도 주 4일제라는 점이 메리트로 작용하면서 세브란스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재량·선택·교대근무 등 근무 형태가 다양한 방송사인 MBC도 올해 6월부터 '임금 삭감 없는 격주 4.5일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밀리의서재나 카카오게임즈, 카페24, SK텔레콤, 우아한형제들 등 IT기업 중에도 주 4일 근무 실험에 나선 곳이 많다.

다만 아직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희 고려대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은 "현행법상 주 4일제를 강행규정으로 도입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4일제가 보편화되려면 '주 32시간제' 법제화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는 너무 먼 일"이라며 "이미 노동시간 유연화 제도가 도입된 상태에서 주 40시간을 그대로 둔 채 자발적 확산 효과를 기대해야 한다면, 보편적 적용 가능성이 낮아 지속성과 파급력에 한계가 뚜렷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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