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국부’ 진보의 ‘독재자’… 보훈처는 왜 이승만을 소환했나[문지방]

입력
2023.04.02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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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2월 상해 임시정부를 방문한 이승만(화환을 목에 건)을 환영하는 이동휘(왼쪽 네번째) 안창호(맨 오른쪽) 선생. 한국일보 자료사진

1920년 12월 상해 임시정부를 방문한 이승만(화환을 목에 건)을 환영하는 이동휘(왼쪽 네번째) 안창호(맨 오른쪽) 선생. 한국일보 자료사진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여기 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진영에 따라 보는 시각이 극명하게 갈립니다. 보수 진영에서는 “신생 대한민국을 공산주의로부터 지켜 낸 ‘국부’”로 칭송합니다. 반면 진보 진영에서는 “학생들의 항거에 못 이겨 하야한 ‘독재자’”라고 깎아내립니다.

호칭도 갈립니다. 보수 성향 인사들은 ‘대통령’으로 부르지만 진보 성향 인사들은 대통령이라 부르는 경우가 드뭅니다. ‘박사’로 부를 뿐이죠.

그는 바로 이승만입니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설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 1948년 신생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하지만 1960년 4·19 혁명으로 하야해 미국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 끝내 그곳에서 생을 다한 인물.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이 크지만, 헌법까지 개정해 가며 임기를 연장한 독재자라는 평가가 공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시각이 갈리다 보니 긍정이든 부정이든 그를 언급할 때면 반대 진영이 공세에 나서면서 크고 작은 논란이 일곤 했습니다.

지난 2011년 6월 부산 서구 부민동 임시정부 기념관 앞에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이 붉은색 페인트로 훼손돼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2011년 6월 부산 서구 부민동 임시정부 기념관 앞에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이 붉은색 페인트로 훼손돼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보훈처장 "이승만, 대한민국 초석 다져"... 재평가 예고

보훈처가 총대를 메고 나섰습니다. 올해 들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의욕적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소환하며 전면에 등장시켰습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서 열린 이 전 대통령 탄생 148주년 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조국 독립운동의 지도자는 물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국가 방향을 제시하며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지신 분”이라면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등을 통해 이뤄진 굳건한 한미동맹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이룬 토대임이 분명한 만큼, 정부는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하여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의 행보와 업적을 바로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박 처장은 ‘이승만 재평가’를 분명히 못 박았습니다. “자유대한민국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공칠과삼'(攻七過三)이 아니라 '공팔과이'(功八過二)로도 부족하다”며 건국 대통령이 역사의 패륜아로 낙인찍혀 오랜 시간 음지에서 신음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업적을 재조명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이며 의무일 것”이라면서 “비록 과가 있지만 너무나 크고 큰 공적을 생각한다면, 오늘의 북한과 대한민국을 비교해 본다면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선택했던 그 길이 올바른 길이었다”고 한껏 치켜세웠습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서 열린 이승만 대통령 탄신 제148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서 열린 이승만 대통령 탄신 제148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백선엽 동상 건립 이어... '이승만 기념관' 건립 나서

박 처장은 지난해 5월 취임할 때부터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자유대한민국이라는 국가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네요. 그래서 공과를 객관적으로 국민들께 보여주고 그 평가를 받게 하는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자연히 보훈처의 역점사업이 됐죠.

대표적으로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꼽을 수 있습니다. 보훈처는 내년 예산 반영을 목표로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데요. 보훈처는 앞서 올해 연두 업무보고에서 '6·25 전쟁 영웅'이라는 평가와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오명을 동시에 받고 있는 백선엽 장군 동상을 경북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 건립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승만 기념관은 그 후속작업인 셈이죠.

1953년 10월 1일 미국 워싱턴에서 변영태 외무부장관과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캡처

1953년 10월 1일 미국 워싱턴에서 변영태 외무부장관과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캡처


한미동맹·정전협정 70년... 시점도 절묘

보훈처는 왜 지금 이승만 재평가에 목소리를 높이며 앞장서는 것일까요. 올해라는 ‘시점’이 중요합니다. 2023년은 6·25 전쟁 종전 70주년이자 한미상호방위조약(한미동맹)이 체결된 지 70년 되는 해입니다. 동족상잔의 전쟁에서 신생 대한민국을 구해 낸 ‘국부’로서의 이승만 대통령과 세계 최강국과의 동맹을 이끌어낸 ‘전략가’ 이승만 정치학 박사의 면모를 부각하기에 최적의 시기라는 것입니다.

정치적 상황도 유리합니다. 윤석열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이른바 ‘MB계’ 출신이기 때문이죠. MB(이명박 전 대통령)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입장을 보여 왔습니다. 지난 2015년 이승만 전 대통령 서거 50주기를 맞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누구에게나 공(功)과 과(過)는 있을 것”이라며 “우리 국민도 이제는 우리 현대사에 대해 적극적·긍정적으로 바라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 공식 초상화.

이승만 전 대통령 공식 초상화.


빠졌던 '이달의 독립운동가'에도 실릴까

박 처장이 이승만 재평가에 불을 댕긴 만큼, 곧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전망입니다. 보훈처는 기념관 건립 후보지에 대한 검토에 이미 착수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 사저인 서울 종로구 이화장을 비롯해 어릴 적 다녔던 서울 중구 배재학당, 수감 생활을 했던 옛 한성감옥 등 역사적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기념관 후보지 6, 7곳을 리스트에 올려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중이죠. 오세훈 서울시장도 적극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부지는 서울시가 제공하고, 기념관 건립은 보훈처가 맡는 형식입니다.

보훈처가 매달 선정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이 전 대통령이 포함될 가능성도 어느 때보다 높아 보입니다. 대한민국 건국훈장 중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에 독립유공자로 수훈한 우리 국적자 26명 중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포함되지 않은 인물은 2명뿐입니다. 이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외교 독립운동을 할 당시 측근으로 보좌하던 임병직 지사입니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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