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만에 맞잡은 '화해의 손'… "전두환 손자, 광주의 횃불 돼 달라"

입력
2023.04.01 04:30
4면
구독

전우원씨, 유족·피해자들 만나 무릎꿇어
"역사의 죄인… 죽을 때까지 뉘우치겠다"
전일빌딩도 찾아 "조부, 헬기 사격 발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우원씨가 31일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복원지킴이실을 찾아 오월어머니회 회원들에게 사죄의 의미로 큰절을 올리고 있다. 광주=김진영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우원씨가 31일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복원지킴이실을 찾아 오월어머니회 회원들에게 사죄의 의미로 큰절을 올리고 있다. 광주=김진영 기자

“광주의 한(恨)을 풀어주는 횃불이 돼 주세요.”

43년 만에 피해자와 가해자의 후손이 ‘화해의 손’을 맞잡았다. 무릎을 꿇고 큰절로써 용서를 구하는 진심 어린 사죄에 피해자 측은 박수를 치며 “용기를 잃지 말라”고 덕담을 건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우원(27)씨가 31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복원지킴이실을 찾아 5ㆍ18 민주화운동 유족단체 오월어머니회 회원들에게 할아버지를 대신해 사과했다. 회원들은 그런 그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눈물을 훔쳤다. 이명자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남편 묘를 직접 옷으로 닦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찡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이씨는 ‘내란수괴’로 지목돼 사형 선고를 받았던 고 정동년 5ㆍ18기념재단 이사장의 아내다. 전씨는 앞서 오전 5ㆍ18민주묘지를 참배하면서 겉옷을 벗어 정씨의 묘비를 닦았다.

전씨는 이날 첫 행사로 5ㆍ16 유족 및 피해자들을 만나 조부의 과오를 반성했다. 그는 5ㆍ18 기념문화센터 리셉션 홀에서 연 기자회견을 통해 “제 할아버지 전두환씨는 5ㆍ18 앞에 너무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며 “민주주의의 발전을 도모하지는 못할망정 군부 독재에 맞선 영웅들을 군홧발로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참회도 했다. 전씨는 “저와 제 일가족은 추악한 죄를 짓고도 피해가 올 것이 두려워 외면해 왔다”면서 “죽어 마땅한 죄인인 저를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고 사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또 “죽을 때까지 회개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발언 도중 목이 멘 듯 자주 숨을 골랐다.

성장 과정에서 민주화운동에 대해 왜곡된 집안 교육을 받은 사실도 털어놨다. 전씨는 “어렸을 때 (5ㆍ18에 대해) 물어본 기억이 난다”며 “민주화운동은 폭동이고, 우리는(전씨 일가) 피해자이며 할아버지는 영웅인데, 오히려 안 좋게 얘기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우원씨가 31일 광주광역시 망월동 5‧18민주묘지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광주=김진영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우원씨가 31일 광주광역시 망월동 5‧18민주묘지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광주=김진영 기자

5ㆍ18 유족들은 “43년 만에 사과를 들었다”며 일제히 오열했다. 당시 학생시민군으로 활동한 고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씨는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두렵고 고통이 컸을지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광주를 제2의 고향처럼 여기고 화해의 길로 나아가자”고 전씨를 응원했다.

그는 행사 후 광주 망월동 5ㆍ18민주묘지를 찾아 첫 희생자 김경철 열사 등의 묘역을 참배했다. 방명록에는 “저라는 어둠을 빛으로 밝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에 묻혀 계신 모든 분들입니다”라는 글귀를 남겼다.

마지막 행사로 5ㆍ18 학살의 현장 전일빌딩도 방문했다. 이 빌딩은 총탄 흔적이 남아 있어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입증하는 역사적 장소다. 숨질 때까지 헬기 사격을 부인한 조부와 달리, 전씨는 “너무 당연한 증거인데 할아버지는 발뺌했다”고 말했다. 전씨는 공식 일정을 마무리하고 4월 1일까지 광주에서 개인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경찰, 전씨 출국금지... 마약 투약 조사 계속

한편 경찰은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전씨를 이날 출국금지 조치했다. 그가 투약 사실을 인정하고 자진 귀국해 불구속 수사하기로 했으나, 모발 감정 등에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리는 만큼 출국을 막기 위한 목적이다.

광주= 김진영 기자
김도형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