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손흥민·이강인도 '전국대회 8강' 못 들면 대학 못 가

제2의 손흥민·이강인도 '전국대회 8강' 못 들면 대학 못 간다?

입력
2023.11.15 13:30
수정
2023.11.25 16:4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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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3> 입시 지옥에 잠겨 있는 체육관
주요 10개 대학 체육특기자 전형 분석
전국대회 상위권·대표팀 경력 요구
개인 역량 발전 뒷전… 출전 경쟁만
팀 운영비 부담 학부모 입김도 세

편집자주

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경기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10월 17일 열린 하나은행 초청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과 베트남의 경기, 이강인과 손흥민이 프리킥을 준비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

학업과 운동을 병행해 학생들에게 진로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선 입시 제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회 성적에 따라 대학 간판이 결정되는 현행 제도에선 경기결과만 중요할 뿐, 개인 역량을 발전시킬 기회가 봉쇄되고 학업을 등한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기자 지원하려면 8강 이상 가야 해요"


지난해 2월 강원 고성군에서 열린 문화체육부장관배 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에서 선수들이 경기 시작 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한국일보가 전국 주요 10개 대학의 체육특기자 전형 입시요강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대학은 국가대표 경력이나 전국 대회 8강 또는 16강 이상의 성적을 지원 기준으로 제시했다. 수학능력시험을 비롯한 학습성취 지표는 최소기준치만 넘으면 됐고, 아예 면제되는 대학도 있었다.

이처럼 대회 성적이 대학 입학과 직결되기 때문에, 중고교 운동부는 스포츠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철저히 이기기 위한 팀으로 굴러간다. 축구를 예로 들면, 선수 개인 역량에 맞춘 근력 강화, 슈팅 연습, 전술 학습은 뒷전으로 밀린다. 신문선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초 실력을 키우기 전에 강도 높은 체력훈련과 팀 훈련을 시키고 있다"면서 "팀 전술도 슈팅 능력이 좋은 선수를 골대 앞에 세워놓고 공을 몰아주는 단순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팀 성적이 좋아도 선수 개인의 역량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또, 세계 축구의 트랜드인 '빌드업'(수비 진영에서부터 공개 전개를 위해 차분히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것) 축구도 하기 어렵다.

반면 손흥민은 패스, 드리블, 킥 등 기본기만 7년을 닦았고, 실전 경기는 기본 역량을 갖춘 뒤 중학교 2학년 때 할 수 있었다. 이강인은 초등학생 때 스페인으로 건너가 창의적 패스가 강조되는 전술 훈련을 받았다. 신 교수는 "손흥민, 이강인은 어릴 때부터 즐기는 축구를 하며 기본기를 익혔다"면서 "한국 학교의 운동부에 있었다면 세계적 선수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출전시간 확보' 물밑 경쟁

서울 목동구장에서 10월 9일 열린 제51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 모습. 고영권 기자

학생 선수들이 공부할 필요가 없다 보니 출전시간을 얻기 위한 물밑 경쟁만 치열하다. 팀 성적이 좋아도 개인출전 시간이 적으면 체육특기자에 지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려대 축구 특기자는 전국대회 8강 이상 입상한 팀에서 50% 이상 출전해야 한다.

학부모들이 감독이나 코치에게 자녀가 경기에 더 많이 뛸 수 있도록 압력을 넣는 경우도 있다. 특히 지도자 월급을 암묵적으로 학부모들이 지원하고 있어, 학부모 입김이 팀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이유로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출전을 못하기도 한다.

대학별 체육특기자 전형 주요 내용. 그래픽=김대훈 기자


갈 곳 잃은 '공부하는 학생 선수'

대회 성적이 절대적 기준이 되다 보니, 일본과 같은 '공부하는 학생선수' 모델은 겉돌고 있다. 선수들에게 최소한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엔 동의하지만 "당장 입시 기회라도 얻으려면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데, 어떻게 수업을 듣고 있냐"는 학부모들 목소리에 묻혀버리기 일쑤다.

특히 최저학력제를 두고는 말이 많다. 초등생은 학년 평균의 50%, 중학생은 40%, 고교생은 30%를 얻어야 대회 출전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중학교 1학년 평균 점수가 80점인 학교의 학생 선수는 4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이 기준을 넘지 못하면 원칙적으로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 교육부는 해당 규정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지만, 현장에선 볼멘소리도 나온다.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한 감독은 "대회 성적으로 선수들의 미래가 결정되는데 학업을 병행하라는 건 무책임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공부하는 학생선수'를 위해 도입된 초중고교 최저학력제. 최저학력을 달성하지 못하면 기초학력 보장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전국대회 등에 출전할 수 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결국 입시제도를 뜯어고쳐야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나올 수 있고, 운동을 그만두더라도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단순히 대회 성적만 따지는 게 아니라, 학습 역량도 중요 지표로 반영하자는 것. 김양례 한국체육정책학회 부회장은 "학생 선수들이 국가대표나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도 학업 성적이 대입에 반영된다면 중고교에서 공부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며 "퇴로 없이 운동에 '올인'하는 방식과 결별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제보받습니다> 학교 체육이나 성인 엘리트 체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부조리(지도자의 뒷돈 요구, 대학·성인팀 진학·진출 시 부당한 요구 및 압력 행사, 운동부 내 구타 등 가혹행위, 학업을 가로막는 관행이나 분위기, 스포츠 예산의 방만한 집행, 체육시설의 미개방 등)를 찾아 집중 보도할 예정입니다.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목격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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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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