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좌파에 분노해 극우 무정부주의자를 대통령으로...아르헨티나 '위험한 모험'

입력
2023.11.21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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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트럼프' 밀레이 당선
고물가, 40% 빈곤율 경제 파탄
"위기 초래" 페론주의 심판론
페소 폐지 등 가능성은 미지수

19일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승리한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지지자들에게 당선 소감을 전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이터연합뉴스

19일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승리한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지지자들에게 당선 소감을 전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이터연합뉴스

최악의 경제난에 분노한 민심은 모험을 택했다. 방만한 국가 재정을 손보겠다며 전기톱까지 든 극우 성향의 하비에르 밀레이(53) 자유전진당 후보가 좌파 집권당 후보를 누르고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당선됐다. 자국 통화(페소)와 중앙은행을 없애겠다는 과격한 공약을 앞세우고, 총기 허용과 장기 매매 합법화까지 약속해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인물이다.

민심은 파탄 난 경제의 책임을 물어 좌파 포퓰리즘(페론주의) 정권을 심판했다. 하지만 '괴짜' 극우 정치인을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아르헨티나 경제를 더 깊은 수렁으로 빠트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56% 당선 밀레이 "아르헨 재건 시작"

19일(현지시간)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선 결선투표에서 밀레이는 약 56%의 득표율로 44%를 얻은 여권 통합 후보이자 경제장관인 세르히오 마사를 여유 있게 제쳤다. 밀레이는 지난달 투표에선 마사 후보에 밀렸지만, 역전 드라마를 썼다. 밀레이는 "오늘 아르헨티나의 재건이 시작된다"며 "아르헨티나의 잃어버린 번영을 되찾겠다"고 말했다. 밀레이는 내달 10일 4년의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다.

극심한 경제난과 이를 초래한 정치권의 무능에 대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절망이 밀레이라는 문제적 인물을 밀어 올렸다.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까지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6위를 기록하는 등 '남미의 부국'으로 통했다. 현재는 경제가 몰락 중이다. 지난달 아르헨티나의 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143%에 달한다. 올 2월 세 자릿수 상승률을 찍더니 9개월 내리 오름세다.

살인 물가에 4,500만 아르헨티나 인구의 약 40%는 빈곤 상태다. 외화가 바닥나 국제통화기금(IMF)에 440억 달러(약 57조 원) 규모의 빚까지 갚아야 할 처지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파 하비에르 밀레이가 당선을 확정 지은 가운데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그의 지지자들이 트럭 위에 올라가 환호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이터 연합뉴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파 하비에르 밀레이가 당선을 확정 지은 가운데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그의 지지자들이 트럭 위에 올라가 환호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이터 연합뉴스


反페론주의 앞세워 "달러화 도입" 파격 공약

비주류 극우 정치인인 밀레이는 이 틈을 파고들었다. 그는 경제난의 원인을 오랜 기간 아르헨티나를 지배한 좌파 포퓰리즘 탓으로 돌렸다. '반(反)페론주의'를 내세운 그는 정부의 재정 지출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극단적인 공약을 발표했고 파격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 정부 재정을 감당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과도하게 발행해 온 페소화를 "쓰레기"라고 부르며 "달러화로 대체해야 한다"고 했다. 인플레이션 '주범'인 중앙은행을 아예 폐쇄하고 정부 부처도 18개에서 8개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불필요한 정부 보조금을 잘라내겠다"며 선거 유세 현장에 전기톱을 들고 다녔다.

체제를 부정하고 극단적 변화를 앞세운 선거 전략은 제대로 먹혔다. 로이터통신은 "밀레이의 충격 요법은 경제 불안에 분노한 유권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며 "지지자들은 경제 불안의 뿌리를 뽑을 사람은 오직 밀레이뿐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밀레이의 기행과 호전적인 기질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변화를 절실히 원했다"고 전했다.

밀레이는 "(아르헨티나를 ) 쇠퇴하게 만든 모델은 이제 끝났다. 점진적인 변화는 없고 급진적인 변화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해 공약 이행 의지를 드러냈다.

공약 성공은 미지수 "불확실성의 시대 열려"

지난달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우파 후보인 하비에르 밀레이의 한 지지자가 미화 100달러 지폐를 들어 보이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AFP 연합뉴스

지난달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우파 후보인 하비에르 밀레이의 한 지지자가 미화 100달러 지폐를 들어 보이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AFP 연합뉴스

밀레이가 공언한 '변화'의 가능성과 효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외환보유액이 바닥 난 상황에서 자국 통화 폐기 등 극단적인 정책의 실현 가능성부터 회의적이다. 아르헨티나는 내년 IMF 등에 220억 달러 규모의 채무 상환이란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 대선 공약이 오히려 사회적 혼란만 일으킬 거란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밀레이의 달러화 채택 제안으로 아르헨티나인들이 페소화 처분에 나서면서 통화 가치가 급락했다"며 "(밀레이의) 급격한 우회전은 앞으로 아르헨티나 경제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정치적 이단아여서 정권을 뒷받침할 세력이 미미하고 정치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도 밀레이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신생 정당인 자유전진당 의석은 상원 72석 중 7석, 하원 257석 중 38석에 불과하다. 아르헨티나 정치 분석가인 루카스 로메로는 WP에 "아르헨티나가 민주주의로 복귀한 이후 40년 만에 밀레이는 가장 약한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 지출을 대폭 삭감하면 복지 정책에 길들여진 국민적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도 크다. 미국 정치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 그룹의 다니엘 커너 이사는 "장기적인 불확실성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조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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