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유해하고 나는 무력하다"...미국 의원 37명 무더기 불출마 선언

"정치는 유해하고 나는 무력하다"...미국 의원 37명 무더기 불출마 선언

입력
2023.11.27 19: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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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선거 1년 전 상원 7명·하원 30명 불출마
13선 민주·14선 공화 등 정통파 의원 다수
"워싱턴 망가졌다… 어떤 시도도 할 수 없어"

지난달 25일 미국 워싱턴 의회의사당에서 마이크 존슨 미국 하원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요즘 미국의 정치 환경은 매우 유해합니다. 의원직을 수행하느라 내 삶을 희생할 가치가 더 이상 없습니다."

얼 블루머나워(민주당·오리건주) 미국 연방 하원의원의 말이다. 25년간 하원을 지킨 그는 지난달 이 같은 이유를 들어 내년 11월 의회 선거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정치를 잠식한 극단주의와 분열의 정치가 그의 정계 은퇴를 재촉했다.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다음 의회 선거를 약 1년 앞두고 불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의회 탈출 물결은 미국 민주주의가 붕괴하고 있다는 또 다른 경고음이다.

37명이 불출마… 22명은 "더 이상 정치 안 해"

이달까지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은 37명(상원 7명·하원 30명)이다. 내년 선거 대상 지역 의원 469명(상원 34명·하원 435명) 중 약 7.8%에 달하는 인원이다. 미국 의회는 2년마다 선거를 치르는데, 임기 6년인 상원 의원은 전체 100명 중 3분의 1을 2년마다 교체하고 하원 의원은 임기가 2년이어서 435명을 2년마다 다시 선출한다.

37명은 기록적 숫자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4년 임기의 미국 대통령 집권 2년 차에 실시되는 의회 선거 )를 1년 앞둔 시점엔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이 30명(하원 6명·상원 24명)이었다. 더구나 37명 중 22명(상원 6명·하원 16명)은 다른 공직에 도전하지 않고 정계를 영영 떠나겠다고 못박았다.

NYT는 "혼란스러운 정치 환경 탓에 의정 활동이 매력을 잃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공화당 강경파가 정치를 혼탁하게 한 주범으로 꼽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패배한 2020년 대선 결과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바이든 행정부 흔들기에 몰두하느라 미국 정치의 전통인 대화와 협치를 실종시켰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정치의 폭력성이 최근 50년 사이에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2021년 1월 6일 미국 워싱턴 의사당 앞에 몰려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2020년 대선 결과에 항의하며 의사당 난입을 시도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워싱턴 망가졌다" 공화당 의원들도 은퇴

강경파가 주도한 정치의 쇠락에 무력감을 느낀 공화당 의원들도 스스로 워싱턴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미국 하원 권력의 핵심인 세출위원장인 케이 그레인저(공화당·텍사스주) 의원도 불출마를 선언했다. 데비 레스코(공화·애리조나) 하원의원은 지난달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워싱턴은 망가졌다. (정치 복원을 위해) 무엇을 하려고 시도해도 어렵다”며 절망감을 표출했다.

NYT는 "의회 밖에서 일하는 것이 미국의 변화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는 의원들이 많다"면서 "의회에서 발생하는 내분, 기능 마비에 맞서 싸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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