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직접 일일 점장, 책이 사람을 연결합니다"

"손님이 직접 일일 점장, 책이 사람을 연결합니다"

입력
2023.12.05 13:52

[소상한 토크 #68] 우연한 인연에서 본인의 이야기를 찾은 소상공인

편집자주

600만 소상공인 시대, 소상공인의 삶과 창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인생은 인연과 우연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여러 사람과 인연을 맺으며 풀리지 않는 문제를 운 좋게 해결하기도 하고, 사업의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 인연이 또 다른 인연을 가져다주는 경우도 많다. 책방 '그래서'의 오주현 대표는 책방이란 공간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 중구 방산시장에 위치한 책방 그래서를 방문했다.

이현행 사장(좌)과 오주현 대표(우). 그래서책방 제공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청계천과 을지로 사이 방산시장에서 작은 책방 '그래서'를 운영하는 오주현입니다."

어떻게 책방을 하실 생각을 하셨나요?

"나이가 들며 '죽을 때까지 뭘 하고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이 커져만 갔어요. 예전에 아동발달센터를 운영했습니다. 아이들이 말하고 그리고 만든 모든 것을 모아 제본해 책으로 엮어 냈죠. 그걸 모아보니 너무 예쁘고 재밌었습니다. 그 후 남편과 동업을 하게 됐고 출판사를 시작했어요. 책방은 친구의 제안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남편과 둘이 하루종일 일하고 퇴근하고, 그렇게 1년이 지나니 다른 사람들도 만날 창구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던 차였어요. 친구가 합류해 남편과 나까지 세 명이 뭉치며 책방을 열게 됐습니다."

책방 이름 그래서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궁금한 게 있을 때 되묻는 말, '그래서?'에서 땄어요. 한 개인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거듭 되물으며 지평을 확장하는 말이 '그래서'인 거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들을 준비가 돼 있다'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라는 의미를 담았어요."

방산시장에 자리를 잡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 소심하게 숨은 거죠.(웃음)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사람이 찾기에 어렵지 않은 중심가라 (방산시장을 선택했어요). 재료 구입부터 인쇄까지 출판과 관련한 모든 작업이 을지로에서 가능하니 을지로를 눈여겨봤지만, 흔히 말하는 '힙'한 곳이라 오히려 거부감이 생겼어요. 찾다 보니 방산시장이 딱이었고요."

서울 방산시장에 자리잡은 책방 '그래서'. 그래서책방 제공

유동인구가 적어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초반엔 현실의 벽과 마주했죠.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더라고요.(웃음) 수입은 거의 없는 데 비해 노동강도는 제법 셌고요. 새로운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살피고, 소개하는 과정이 은근히 힘들어요. 그러다 보니 같이 책방을 시작했던 친구가 그만두며 한동안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방산시장의 사랑방이라고 들었습니다.

"처음엔 (우리 책방이) 이웃 상인들의 걱정 대상이었어요. 근처에 책방이 생겨서 좋았는데 망하게 둘 순 없다고, 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이웃 상인이 생각납니다. 한 분은 한 달에 한 번 방산시장에 수금하러 오시며 꼭 책을 사가시기도 해요. 우리 책방에서 산 책으로 서가를 꾸려 그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무척 감동이었어요. 시장 노동자도 많이 오세요. 노동 중 짬을 내 책을 읽고 가시는 분도 있고, 일부러 화장실 갈 때 우리 책방 앞으로 돌아서 가는 분도 계세요. 앞에 놓인 책을 보는 게 힘든 하루 중 하나의 행복이라면서요. 어떤 손님은 남자친구랑 헤어졌다며 한참을 울다 가시기도 하고요. 그런 분들이 다 친구가 되고 또 인연이 된 거죠."

단순한 책방이라고 보기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신데요. 대표적인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세요.

"'그래서목요일'이란 프로그램이 있어요. 우리 책방은 목요일이 휴무예요. 하지만 사전에 신청한다면 그날 하루 동안 책방 그래서의 일일 점장을 할 수 있어요. 어떤 참가자는 와서 꽃을 팔기도 하고, 어떤 분은 본인 독립출판물에 대한 강연과 더불어 독자와의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영화를 찍는 사람도 있었어요. 본인의 졸업작품을 우리 책방에서 상영하기도 했고요. 대안학교에서 진로체험을 온 적도 있네요. 목요일 하루, 책방 운영시간과 콘셉트 모두 참가자 본인이 정할 수 있으니 교실도 영화관도 될 수 있습니다. 벌써 백여 명 남짓 참여했는데, 직접 뵌 사람은 손에 꼽아요. 일일점장이 있는 날은 우리 부부가 가게에 나오지 않는 게 원칙이라서요.(웃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책을 도둑맞은 적이 있어요. 그 책 제목이 '문학하는 마음'인데, 어렵게 문학의 꿈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책을 가져간 사람이 혹시 글을 쓰는 사람일까? 아니면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을까?' 싶었어요. 이내 범인 찾기를 포기했습니다. 언젠가 책을 가져간 그 사람의 글에 우리 책방 이야기가 나오길 기대해 보기로 하면서요. 이 사연을 SNS에 올렸더니 '문학하는 마음'을 쓴 작가님이 책방에 직접 방문하셨어요. 자신의 책을 훔쳐가줘서 고맙다고, 책값을 대신 지불해 주시기 위해서요. 요즘은 그 누구도 책을 귀하게 여기지 않잖아요. '누군가에게는 훔칠 만큼 탐나는 게 '책'이란 물건이구나', '책을 통해 이와 같은 놀라운 만남을 이뤄낼 수 있구나' '그래서, 힘들어도 책방 운영은 할 만한 일이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연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네요. 또 기억에 남는 인연이 있다면요?

"한 손님이 책 추천을 부탁했습니다. 논문을 쓰다 보니 딱딱한 전공서적에만 갇혀있다면서요. 나는 그 고객에게 '아무튼 시리즈'를 소개했어요. 소위 말하는 '덕후'들의 이야기인데, '아무튼 술' '아무튼 순정만화' 등 필자의 관심사를 편한 어조로 깊게 파고 들어가는 게 매력인 책 시리즈예요. 그런데 그 고객이 대뜸 '나도 장국영에 대해선 쓸 수 있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꼭 쓰라고, 내가 읽을 테니 꼭 써달라고 권했어요. 저도 장국영을 좋아하니까요. 그리고 1년 뒤에 진짜 '아무튼 장국영'이란 책이 나왔어요. 우리 책방 이야기도 그 내용에 들어있고요. 정말 신기했어요. 더 재미있는 건, '아무튼 장국영'에 나온 우리 책방 이야기를 읽은 한 독자가 본인이 사는 강원도 인제에서 우리 책방까지 찾아왔어요. 지금 그 독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 친한 사이가 됐고, 목요일 일일점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책이 사람을 연결하는 게 우리가 책방을 하며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일입니다. 그렇게 5년이 금세 지나갔어요."

다른 공간도 운영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책방'을 중심으로 '그래서쇼룸', '그래서워크룸'이란 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읽는 것을 넘어 우리가 가진 모든 감각을 활용해 경험을 넓힐 수 있는 쇼룸, 간단한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는 워크룸이 책방 근처에 있어요. 그래서쇼룸엔 주로 작은 출판사나 예술가들의 전시가 진행되고, 그래서워크룸은 책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한 다양한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래서쇼룸이나 그래서워크룸에서 했던 작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방산시장은 포장재 유통으로 가장 유명한 곳이에요. 하지만 버려지는 재료 역시 참 많습니다. 시장이 낳은, 시장에 남는 부산물로 '그래서 쓸모를 찾아'라는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상인들이 안 쓰거나 버린 재료를 전달하면, 우리는 예술가들과 함께 그 재료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또 워크숍을 통해 수첩이나 파우치같은 간단한 생활용품을 만들어보기도 하고요. 최근 진행한 그림작가 '구슬'님의 '종이 수집가의 독서법'이라는 전시도 기억에 남아요. 책의 주인공을 종이 인형으로 만들어 전시하는데, 방산시장에서 버려진 종이 재료로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쇼룸 내 전시 종이수집가의 독서법. 그래서책방 제공


그래서워크룸 전경(좌)과 방산시장 이웃 상인들이 가져다준 부산물들(우). 그래서책방 제공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언젠가부터 독서가 특별한 사람들만 향유하는 취미 혹은 문화가 된 것 같아요. 우리 그래서는 독서를 평범한 사람들의 문화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전시공간인 쇼룸, 체험공간인 워크룸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책방과 쇼룸, 워크룸 이 세 공간을 통해 좋은 사람들과 다양하게 연결되는 것 역시 목표 중 하나입니다. 궁극적으론 그 연결을 통해 세상이 각박하지 않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다른 리듬과 가치를 지닌 채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옆에 있다면, '그렇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장은진 창업 컨설턴트 ari.maroon.c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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