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 세상을 보는 균형

이영태의 초점

"손 덥석 잡을 걸로 봤나? '탈정치'가 '친정부' 아냐"

지난해 2월 21일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한 노동자단체가 출범했다. 8개 노조, 6,000명가량 조합원이 참여했다. 시작치고는 적지 않은 몸집이었다.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란 이름도 예사롭지 않았다. 명분과 이념, 그리고 투쟁 중심이던 노동운동을 실리와 공정이라는 젊은 세대의 가치로 확 새로 고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일각에선 'MZ노조'라고 불렀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①젊은 세대의 노동운동에 대한 인식 변화 ②그에 따른 소수노조의 증가세 ③기득권노조를 개혁 대상으로 콕 찍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등 “3박자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봤다. "새로고침은 한국 사회의 환경 변화가 잉태한 결과물"이라는 해석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규모나 내용에서 적잖은 성장이 있었다. 가입 노조는 16곳, 조합원은 1만 명으로 늘었다.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이 여론의 뭇매를 맞자 정부의 ‘대화창구’로 선택되면서 존재감을 알렸다. 소속 회원사인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는 2자리밖에 없는 노동이사 자격을 따냈고, 주요 노동 현안에 대해 새로고침만의 공식 의견문을 냈다. 그래도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법정단체가 아닌 협의회 체제가 갖는 한계도 명확했다. 초반의 높은 여론 호응에 비하면 최근 들어 딱히 도드라진 행보를 보인 것도 많지는 않다. 반짝 관심 끝에 내리막을 걸을지, 아니면 본격적으로 새로운 노동운동의 지평을 열지 지금 새로고침은 중대 변곡점에 서 있다. 최근 2기 의장단에 선출된 김명호(42) 의장과 이정운(52) 부의장을 만났다. 두 사람은 각각 LG유플러스노조와 프로경륜선수노조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들은 큰 변화를 준비 중이었다. 처음부터 단체를 지향한 것은 아니었다. 양대 노총 같은 상급노조가 없는 소수노조, 그리고 갓 만들어진 신생노조들은 기댈 곳이 많지 않다. 그게 우리 노동운동의 현실이다. 믿고 의지하며 상의할 수 있는 상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조의 경험 부족을 그렇게라도 메우고 싶었다. 알음알음 만나며 스터디그룹처럼 운영하다 의기투합했다. - 출범의 취지가 뭐였는지, 다시 들어보자. 뭘 새로 고치겠다는 건가. 김 = “노조 조직률, 그러니까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 중 조합원수 비중은 13, 14%밖에 되지 않는다. 기존 노조가 품을 수 없는 노동자들이 80%가 훌쩍 넘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양대 노총이 마치 대한민국 모든 노동자를 대표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문제라는 게 가장 큰 공감대였다.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이 없다. 그들을 품어야 한다는 게 출범 취지였다.” - 집회나 투쟁 방식의 차이는. 이 = “우리는 폭력적이고 정치적인 파업을 지지하지 않는다. 노동 현안에 대해 합리적인 투쟁 방식을 찾으려 한다.” 김 = “국민들이 이 정도 집회면 수용할 수 있다고 할 만한 것들이 어떤 것일까 고민하고 있다.” - 1년이 됐다. 새로고침 활동에 스스로 점수를 매겨본다면. 김 = “100점 만점에 50점 정도다. 우리가 하고자 했던 사업이나 사회적으로 메시지를 내는 일들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협의회 체제이다 보니 의사결정이 굉장히 복잡하고, 누군가 책임지고 끌고 가는 동력도 부족했다.” 이 = “좀 더 박하게 40점 주겠다. 작년 8월 새로고침에 합류하며 노조 활동에 우산을 기대했는데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대외 활동도 미흡했다고 본다.” 양대 노총이 한국 노동의 역사에 큰 역할을 한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가 현재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때마다 상투적인 파업 투쟁을 하고, 노동 현안과 무관한 이슈에도 폭력적인 정치 투쟁을 일삼고, 무엇보다 양대 노총 소속이 아니면 철저히 배척되는 귀족노조의 모습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들이 늘어났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그랬다. 그렇다고 MZ세대가 노조를 싫어한다는 건 ‘가짜 뉴스’다. 실리를 중요시하는 그들은 기성세대보다 더 많이 노조를 원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서 노조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20대가 88.6%로 가장 높았고, 30대가 86.9%로 뒤를 이었다. 단지 기득권노조가 싫을 뿐이다. - 양대 노총이 비판받는 지점이 기득권노조, 귀족노조, 정치 투쟁 이런 것들이다. 얼마 전 타임오프제(노조전임자 근로시간 면제) 위반도 대거 적발됐다. 이 = “노동단체는 노동자를 대변해야 한다. 사유화는 용납할 수 없다.” 김 =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다. 집회든, 노조활동이든 당연히 법률에 근거해서 이뤄지는 게 마땅하다. 법을 위반하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노조가 위법행위에 대해 면책이 되는 특권층이 아니지 않나.” - 새로고침이 그들과는 다른 색깔을 보여준 행보가 있나. 김 = “양대 노총은 법안을 통째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는 법 조항 하나하나가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부합하는지, 현실적인지, 다른 부작용은 없는지 등을 따진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양대 노총과 새로고침 모두 찬성 입장을 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결이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작년 7월 새로고침이 낸 ‘노란봉투법에 관한 의견문’을 보면 법 조항별 입장이 촘촘히 담겨있다. △노란봉투법 중 사용자 및 노동쟁의 범위 확대는 ILO 협약 등에 부합하고 △배상의무자별 손해배상책임 범위 산정은 민법 ‘자기 책임 원리’를 좇는 것이므로 합당하다는 식이다. 심지어 반(反)노동적일 수도 있는 소수 반대의견까지 상세히 담고 있다. 정치적 언어, 선동의 언어는 없다. - 현재 준비 중인 정책 사안이 있나. 이 =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을 두고 여전히 논란이 많지 않나. 무조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식으로 그렇게 단선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새로고침이 사회적 해법을 찾는 데 역할을 하고 싶다. 당정과 소상공인 노동계가 모두 참석해서 현실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방향을 찾는 것이다. 중처법이 단지 처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자는 법 아닌가.” 김 = “양대 노총처럼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거리로 뛰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어떤 것이 가장 합리적인지 답을 찾아나가길 원한다. 그게 현대 사회에서 노동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좀 더 많은 노동계 목소리를 담을 수 있도록 구성될 필요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현 정부와 새로고침 간에는 깊은 밀월관계가 있을 거라 추측한다. 일각에서 정부와의 사전 교감을 하는 ‘어용노조’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상은 어떨까. - 정부는 새로고침에 매우 우호적인 듯하다. 김 = “오해다, 대단히 큰 오해다.” - 양대 노총을 적대시하며 새로고침을 대화 파트너로 삼겠다는 메시지를 많이 발신한 것은 사실 아닌가. 김 =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새로운 노동정책이 나오면 간담회 제안도 하고 의견도 물었지만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근로시간 개편이나 노란봉투법 등 정부 노동정책에 반대 입장을 내니까 지금은 우리를 불편하게 여기는 것 같다. 우리가 작은 협의회다 보니 정부가 손을 내밀기만 하면 덥석 잡아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가 슬로건으로 내세운 탈정치를 친정부로 잘못 해석한 것 아닌가 싶다.” - 정부가 노동단체 지원사업 대상을 ‘노동조합’에서 ‘근로자로 구성된 협의체 등’으로 확대했는데 지원금 수령도 거부했다. 김 = “내부에서 지원금을 받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받은 돈으로 뭘 할 거냐는 문제 제기가 더 많았다. 목적사업 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돈만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 앞으로도 계속 받지 않을 생각인가. 이 = “그렇지는 않다. 부적절한 자금 지원을 받지 않겠다는 것뿐이다. 현재 법률 구조 활동이나 플랫폼노동자들의 근로계약서 작성 등 노동 연구 사업을 준비 중이다.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 나오면 내년 이후에는 정부 지원금을 정당하게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현 정부의 노동개혁 의제 중에 공감하는 대목은 없나. 김 = “노조의 회계 투명성 확보 정책은 굉장히 건전하다고 생각한다. 새로고침은 매우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공익을 추구하는 단체가 거둬들인 돈은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 양대 노총에서는 노조 운영의 독립성 침해를 주장했다. 김 = “궤변에 가깝다. 회계장부 공개와 독립성이 무슨 연관이 있나. 불투명한 회계를 감추려는 것으로밖에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많은 비판을 받고 있음에도 여전히 양대 노총은 각각 100만 명 넘는 조합원을 보유하는 등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새로고침이 넘어야 할 높은 산이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결국 세력화와 의제 설정 역량이 새로고침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젊은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의제와 이슈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지속적인 조직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고침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 이번에 2기 의장 선거에서 내건 핵심 공약이 법정 노조 단체인 총연합단체로의 전환이었다고 들었다. 김 = “맞다. 3월 중 준비위원회를 만들고 늦어도 8월까지는 법정단체인 총연합단체로 전환할 계획이다. 형식적 요건을 갖추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덜컥 총연합단체만 만들어 놓고 모이라고 한다면 누가 들어오겠나. 시대정신이 반영된 가치를 잘 담아내고 운영을 투명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법정단체가 되면 최저임금위원회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정부위원회에 참석해 새로고침의 목소리를 공식적으로 낼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총 6개의 총연합단체가 있지만, 압도적 다수 단체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정부위원회 참석을 독식하고 있다. - 정부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인가. 김 = “표면적으로만 보면 그렇지만 대단히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미조직된 중소기업 노동자나 특수고용직들을 우리가 직접 만나서 조직하고 처우 개선 활동을 전개해나갈 역량을 갖추게 된다는 점이다. 양대 노총이 못하고, 또 안 하는 것을 우리가 제대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유명세만으로 살아남을 순 없다.” - 법정단체가 돼도 단시일 내에 수적 열세를 극복하긴 어렵다. 복수노조 설립을 허용하면서도 회사와의 교섭창구를 단일화하고 있는 제도는 큰 벽일 수밖에 없을 텐데. 이 = “교섭창구 단일화는 노조의 자주성이나 단결권을 침해한다. 다수노조와 소수노조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교섭단을 허용하는 쪽으로 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 힘이 생기면 또 다른 기득권노조가 될 위험은 없을까. 김 = “그래서 곧 꾸리게 될 준비위원회가 중요하다고 본다. 상급노조이고 법정단체이면서도 권력이 중앙에 집중되지 않는 그런 조직을 만들고자 한다. 적절한 견제와 권한 행사, 그리고 적재적소에 발휘되는 행정력 이 3박자가 맞아야 그게 가능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어떤 가치와 이념을 담을지 준비위에서 치열하게 논의하겠다. 소속 노조원들의 입장과 요구사항 등을 잘 버무려서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고 싶다.” - 올해 조합원수를 20만 명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1년이 지난 지금 1만 명에 불과한데 너무 높여 잡은 것 아닌가. 김 = “불가능하지 않다. 빠른 시일 내에 제대로 된 가치와 제도를 입힌 총연합단체가 출범하고, 대한민국 많은 노동자들에게 어떤 울림을 준다면 정말 많은 노조들이 문을 두드릴 거라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에게 어떤 울림을 주느냐가 가장 큰 고민이고 관건일 것이다.” 이 = “지금까지 노조 문화는 무겁고 딱딱했다. 노조가 우리 사회 노동자들이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편하게 가입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다. 그런 새로운 노조 문화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면, 양대 노총을 능가하는 파괴력을 갖는 단체가 될 거라는 확신이 있다.” 두 사람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은 “정말 노동운동을 새로 고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한목소리로 “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답했다. 허언은 아니지 싶었다. 실제 이들이 그리는 그림은 상당히 정교하고 탄탄해 보였다. 다만, 김 의장은 조금 걱정되는 점이 있다며 말을 얹었다. “대한민국 사회가, 정치가, 또 정부가 ‘새로 고침’ 된 노동계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 과연 새로 고칠 수 있게 우리를 가만히 놔둘 것일까라는 생각도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일 것이다.

세계·사람·생각

미국인의 행복은 '재산·결혼순'?

수입에 여유가 있을수록, 기혼자일수록, 종교활동을 할수록 ”인생이 매우 행복하다”고 느낄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인을 대상으로 이뤄진 조사 결과지만, 유럽이나 한국에서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일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에 따르면, 미국 시민을 대상으로 ‘현재 자기 삶에 대한 만족도’(Satisfaction with Personal Life)를 묻는 질문에 ‘매우 만족’(Very)이란 답변은 47%에 그쳤다. 또 ‘어느 정도 만족’(Somewhat)은 31%, 다소 불만 11%, 매우 불만 9%였다. 이번 조사는 지난 1월 2일~22일까지 성인 남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갤럽은 경제 상황과 개인 만족도의 상관관계에 주목했다. 경제가 흔들리거나 불확실할 때 개인 만족도가 낮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경제위기(2007~2009) 및 회복기를 전후해 실시한 조사에서 ‘나의 삶이 매우 만족스럽다’는 답변은 2007년 59%에서 2008년 47%로 급락한 뒤, 2011년 46%로 최저점을 찍었다. 또 ‘매우 만족’과 ‘어느 정도 만족’을 합한 긍정적인 답변은 2024년 78%(47%+31%)에 그쳤다. 이는 이 조사를 실시한 1979년 이후 전체 평균(84%)보다 상당히 낮으며 201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갤럽은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국가 경기에 대한 견해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라며 경제 상황과의 상관관계를 언급했다. 2024년 조사에서는 ‘매우 만족’이라고 답변한 응답자들을 분석한 자료가 눈길을 끌었다. 경제적 여유가 많을수록, 동반자와 함께 삶을 영위하는 경우일수록 행복감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 수입(가족 전체)이 10만 달러(약 1억3,500만 원) 이상인 설문 응답자는 58%가 ‘매우 만족’이라고 답변, 평균치(47%)보다 훨씬 높았다. 반면, 연 수입 4만 달러(5,400만 원) 이하 저소득층은 같은 질문에서 39%에 그쳤다. 또 기혼자(57%)도 미혼자(38%)보다 ‘매우 행복하다’고 답할 확률이 훨씬 높았고, 종교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56%)이 그렇지 않은 사람(41%)보다 높았다. 연령별로도 대체로 노령자의 만족도가 높았다. 지지 정당별로는 큰 차이를 보이진 않았지만, 진보 성향의 미국 민주당 지지자(52%)들이 보수적인 공화당 지지자(46%)보다 ‘매우 만족’이라고 답할 확률이 조금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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