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오버히트가 보수 승리 도왔다

입력
2022.11.26 04:30
14면
국가보안법 폐지 사건으로 톺아본 정치

편집자주

자기 주장만 펼치는 시대 ‘내부를 들여다보는 관찰력’(인사이트)이 아닌 ‘기존 틀을 깨는 새로운 관점’(아웃사이트)이 필요합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이 격주로 여러 현안에 대해 보수와 진보의 고정관념을 넘은 새로운 관점의 글쓰기에 나섭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다수 지배'다. 다르게 표현하면, 51%가 중요하다. 선거에서 중도를 강조하는 이유다. 선거는 상대 평가가 작동한다. 내가 못해도 상대방이 더 못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진보성향 정당은 ‘진보적 열정’을 조심해야 한다. 보수성향 정당은 ‘보수적 열정’을 조심해야 한다.

최근 민주당의 몇 가지 행태 역시 상대방을 도와주는 일들이었다. 얼마 전 진보성향 언론에 의해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의 명단이 공개됐다. 오히려 여론의 역풍이 불었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해 ‘청담동 룸살롱 의혹’을 제기한 것도 상대방을 도와준 경우다. 유튜브 방송은 자극적인 음모론을 제기할수록 현금수익과 직결된다. 유튜버의 ‘카더라 의혹’을 국회 상임위 회의장에서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제기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행위다. 본인의 품위도 떨어뜨리고, 민주당 국회의원 전체의 신뢰를 같이 떨어뜨리는 행위다. 결과적으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띄워준 경우다.


오버가 쌓이면 상대방을 도와준다

윤석열 정부 역시 만만치 않다. 아세안(ASEAN) 정상회의, 주요 20개국(G20) 회담에 참여하면서 MBC 출입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했다. 윤 대통령 본인이 ‘바이든 날리면~' 보도에 대한 보복 조치임을 밝혔다.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행위다.

2024년 4월에 총선이 있다. 아직은 기간이 많이 남았다. 민주당과 윤석열 정부의 오버 액션들이 2024년 4월 총선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차곡차곡 포인트가 쌓이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 정치사에서 가슴이 너무 뜨거워 결과적으로 상대방을 도와 선거의 향방을 갈랐던 사건들이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사례다. 본격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역사상 존재했던 민주당 계열 정당(열린우리당 등)은 통칭해서 ‘민주당’으로 표현한다. 역사상 존재했던 국민의힘 계열 정당(한나라당과 새누리당 등)은 통칭해서 ‘국민의힘’으로 표현한다. 정당 이름이 하도 자주 바뀌어서, 요즘 세대일수록 헷갈리기 때문이다.


고작 24% 폐지 찬성에도, 민주당 국보법 폐지 밀어붙여

2004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당시 열린우리당)은 ‘원내 과반’을 얻었다. 한국 정치사에서 민주화 운동 계열 정당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민주당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하자, 지지층은 화끈한 개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더 센 개혁, 개혁다운 개혁, 참된 개혁을 요구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당은 지지층의 요구에 화답하기 위해 4대 개혁 입법을 추진한다. 4대 개혁 입법은 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과거사법, 언론개혁법을 의미한다. 이 중에서도 가장 시끄러웠던 것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입장은 3가지가 가능하다. ①폐지 ②개정 ③유지다. 당시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폐지’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개정은 요즘 말로 ‘수박 같은’(겉은 진보, 속은 보수라는 비판) 개혁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도, 지지층도, 진보 언론도, 진보 지식인들도, 진보 시민단체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진보성향 법학자들은 별도의 성명서를 발표하며 ‘개정’이 아니라 ‘폐지’를 추진해야 한다고 민주당을 압박했다.

①폐지 ②개정 ③유지의 3가지 선택지가 있을 경우, 무엇이 가장 진보적인 입장일까? 당연하게도 ①폐지가 ‘가장 진보적인’ 입장 ②개정은 ‘약간 진보적인’ 입장 ③유지는 ‘매우 보수적인’ 입장에 해당한다.

그러나 당시 국가보안법 여론조사까지를 고려하면 문제가 간단치 않다. 2004년 9월 14일 국민일보에 보도된 '보안법 유지여론 왜 높나' 기사에 의하면, 7개 여론조사 평균은 폐지 21.7%, 개정 61.8%, 유지 14.8%였다.

(표1 자리)

당시 국민 여론은 ‘국가보안법 폐지’에 아주 비판적이었다. 폐지 여론은 22%였다. 반면, ‘수박 같은’ 국가보안법 개정에는 아주 적극적이었다. 개정 여론은 62%였다. 그런데 민주당의 ‘당론’은 폐지였다. 폐지는 국민들 75%가 반대했다. 국민들 22%만 지지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원내 과반이라는 의석수를 믿고 힘으로 밀어붙였다.

당시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때 비서실장을 했던 강경 보수 성향의 김기춘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김기춘 법사위원장은 국가보안법 심의를 막기 위해 법사위 회의장을 안에서 봉쇄해 버렸다.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망치, 끌, 정 등 건설현장에서 사용될 각종 공구들을 이용해 물리적으로 뚫으려 했다. 국회는 난장판과 아수라장으로 변해 그야말로 ‘동물 국회’가 됐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박근혜 대표는 국가보안법 남용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제7조’에 대해서는 전면 개정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가보안법 제7조는 이적표현물 조항이다.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측면이 강했다. 국민 여론도 ‘제7조 개정’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민주당 강경파들은 개정은 ‘불의(不義)와의 타협’이라고 주장했다. 그때 표현으로는 ‘사쿠라 개혁’(이도저도 아니라는 은어)이고, 요즘 표현으로는 ‘수박 같은’ 개혁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박근혜의 제안을 수용하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직 폐지만이 참된 개혁이었다.

2004년 그해 겨울, 한국 정치는 밤이 되면 울부짖는 늑대들처럼 건설현장의 장비들로 무장한 채 동물국회의 장면을 반복했다. 수개월의 몸싸움 끝에 결국 국가보안법 폐지는 좌절됐다. 심지어 개정도 못했다. 국가보안법은 ‘단 한 줄’도 바꾸지 못했다. 아마도 당시에 ‘제7조’만 개정했다면, 국가보안법은 그 이후에 사문화(死文化)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민주당 지지층도, 진보 언론도, 진보적 시민사회도 ‘그러지 말라고’ 민주당을 압박했다. 익숙한 장면이다.

국보법 폐지 결말, 민주당이 보수 선거운동을 해줬다?

놀라운 것은 2006년 5월에 있었던 지방선거 결과였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는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었다. 국민의힘 후보는 오세훈 전 의원이었다. 최종 득표율이 흥미롭다. 강금실의 최종 득표율은 28%였다. 오세훈의 최종 득표율은 62%였다. 둘의 격차는 34%포인트였다. 마침 국가보안법 폐지와 개정의 여론조사와 유사하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22%였다. 국가보안법 개정은 62%였다. 둘의 격차는 40%포인트였다.

(표2 자리)

2007년 12월에는 대선이 있었다. 12월 대선의 결과도 비슷하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49%, 이회창 후보는 15%를 받았다. 범보수 후보의 합계는 65%였다. 정동영 후보 26%, 문국현 후보 6%, 권영길 후보는 3%를 받았다. 범진보 후보의 합계는 34%였다. 격차는 31%p였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도, 2007년 대선도 ‘더블 스코어’에 가까운 범진보 진영의 완패였다.

중요한 것은 국가보안법 폐지론의 실천적 귀결이다. 결과는 자명하다. 민주당의 ‘가슴이 너무 뜨거워서’ 국민의힘 선거 운동을 도와준 경우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가슴도 뜨거웠고,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가슴도 뜨거웠다. 진보언론의 가슴도 뜨거웠고, 진보적 지식인들과 진보 시민단체들의 가슴도 뜨거웠다. 그 결과, 오세훈 서울시장과 이명박 대통령의 ‘압승’을 도왔다. 2022년 지금 현재도, 정당들이 되새겨야 할 교훈이다.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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