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보험금 노리고… 남편에 니코틴 3차례 먹여 살해

입력
2023.01.11 13:00
1차 미숫가루에, 2차는 흰죽에 니코틴
남편 고통 호소하자 119 불러 응급실
상태 호전 퇴원하자 "찬물 한잔 마셔"
3번째 니코틴 원액 치명적… 결국 사망
1심 징역 30년 선고에 혐의 부인 항소

편집자주

끝난 것 같지만 끝나지 않은 사건이 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사건의 이면과 뒷얘기를 '사건 플러스'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A(37)씨는 두 차례에 걸친 남편 살해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자 과감해졌다. 그는 코로나19로 자신이 운영하던 공방 매출이 감소하고 채무가 늘어나자 남편 몰래 대출까지 받았다. 시아버지의 퇴직금 1억 원도 빼돌렸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궁핍했다.

그는 봉사활동을 통해 만난 남성과 내연관계를 유지하며 세 차례나 일본 여행을 다녀오고 함께 살 집까지 봐 뒀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내연남과 자유롭게 살아보겠다는 생각에 그는 남편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남편이 죽으면 보험금이 나오고, 남편 소유의 부동산과 예금을 상속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A씨가 범행을 실행한 날은 2021년 5월 26일이다. 범행 도구는 평소 자신이 전자담배를 피우는 과정에서 소지하던 니코틴 원액이었다. 그의 치밀한 범행은 1심 판결문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빈속에 약 먹으면 안 돼. 이거 먹어”

A씨는 5월 26일 오전 6시 40분 출근하는 남편 B씨에게 우유와 꿀을 넣은 미숫가루와 햄버거를 건넸다. 미숫가루에는 니코틴 원액이 첨가됐지만 남편은 이를 알 리 없었다.

B씨는 오전 7시 29분 아내에게 전화해 “체한 것 같아 명치끝이 답답하고 가슴이 쿡쿡 쑤시고 타는 것 같아”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A씨는 15분 뒤 남편에게 전화해 “꿀이 상한 거 같아. 유통기한이 2016년도였네. 미안해 확인을 못했다”며 상한 꿀을 먹어 복통이 일어난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꿀은 당도가 워낙 높아 살균력이 강하고 삼투압 현상으로 부패를 방지하는 효소가 생겨 세균이나 곰팡이가 번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장기간 보관해도 무방하다.

A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남편에게 “점심 못 먹었으니 죽 사 가지고 갈게. 일찍 와서 쉬어”라고 말했다. B씨는 오후 3시쯤 퇴근했고, A씨는 위장약과 소화제 등을 구매해 집으로 갔다.

A씨는 일찍 퇴근해 집에 머물던 남편에게 흰죽을 건넸다. 흰죽에는 A씨가 1차 범행에 사용한 것과 같은 니코틴 원액이 섞여 있었다. B씨는 아내가 건넨 흰죽을 먹고 약을 먹었다.

B씨의 복통은 2시간여 만에 다시 시작됐다. A씨는 남편이 고통을 호소하자 오후 10시 38분 119에 “남편이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고 신고했다. 119 구조대는 “가슴이 타는 것 같이 아프다”는 B씨를 화성의 한 병원 응급진료센터로 이송했다.

A씨가 “유통기한이 2016년까지인 꿀을 미숫가루에 타 먹은 뒤 오전 8시부터 복통이 발생했다”고 말하자, 의료진은 ‘상세불명 기원의 위장염 및 결장염’으로 진단했다. B씨는 자정까지 수액과 진통제를 맞은 뒤 퇴원했다.

“물 한잔 마시고 얼른 자”

A씨는 B씨가 응급실에 실려 가자 남편 직장 상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OO오빠 와이프인데, 오빠가 지금 구급차 타고 응급실에 가서 내일 출근 못 할 것 같다”고 했다. 직장 상사로부터 “신경 쓰지 말고 몸이나 잘 챙기라”는 답을 받은 A씨는 다음 날 오전 1시 30분쯤 퇴원한 남편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남편에게 “물 한잔 마셔”라며 찬물을 건넸고, B씨는 아무런 의심 없이 아내가 건네준 물을 마셨다. 시원한 물 한잔에는 니코틴 원액이 들어 있었다.

물을 마시고 누운 남편을 뒤로하고 A씨는 내연남 C씨와 응급실을 다녀왔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내연남에게도 철저하게 거짓말했다. A씨는 “병원이 이상하다. 가슴이 아프다는데 장염이라고 한다. 내일 다른 병원에 가보든가 해야지. 여기 완전 돌팔이”라며 병원을 탓했다.

오전 7시 21분 A씨는 현관문에 쓰러진 남편을 보고 119에 신고했다. 119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 40분. 남편 B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로 누워 있었다.

경찰은 B씨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부검 결과 B씨의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이었다. 예상 밖의 결과를 받아든 경찰은 A씨를 의심했다. A씨는 최초 경찰 진술에서 “전날 남편이 배가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다녀왔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그러나 B씨 가족과 직장 동료 등으로부터 “B씨는 평소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아들이 태어난 뒤 끊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A씨가 평소 피우던 니코틴 원액에 더해 추가 구매한 사실을 파악해 살인사건으로 전환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남편 B씨에게 세 차례에 걸쳐 치사량 이상의 니코틴 원액을 미숫가루 등이 든 음료와 죽, 그리고 찬물에 녹여 먹이는 방법으로 사망하게 했다. A씨는 결국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1심 재판부 “징역 30년”... 피고인은 항소

그의 범행은 치밀하고 철저했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국과수는 미숫가루와 흰죽보다는 마지막에 마신 찬물이 B씨 죽음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B씨가 흰죽을 먹고 급격히 상태가 나빠졌지만 퇴원 당시 메스꺼움이 약간 남아 있을 정도로 증상이 많이 호전됐기 때문에, 2차 니코틴 음용도 사망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B씨가 찬물 한 컵을 마시고 오전 2시 30분~3시 30분 사이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부검 결과 B씨의 혈액에선 치사 농도의 니코틴이 검출됐다. 재판부는 어떤 상황이든 2차 니코틴 음용 후 재차 입을 통해 니코틴 투여가 있어야 피해자 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1심 재판부는 올해 5월 18일 A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밝혀졌는데, 피해자가 흰죽을 먹은 뒤 보인 오심과 가슴 통증은 전형적인 니코틴 중독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며 “피고인은 액상 니코틴을 구매하면서 원액을 추가해달라고 했고, 이를 과다 복용할 경우 생명에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등 피해자 사망 전후 사정을 볼 때 제3자에 의한 살해 가능성은 작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배우자가 있음에도 내연관계를 유지하며 남편의 재산과 보험금을 취득하기 위해 니코틴 원액을 넣은 음식을 세 차례 먹도록 해 피해자를 살해했다”며 “범행 후 피해자 명의로 대출을 받아 죄질이 불량하고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는 피고인의 대출금을 대신 변제하는 등 경제적으로 많이 도왔으며, 가족 부양을 위해 다니던 직장 이외에 추가 알바를 하며 성실하게 생활했는데 피고인의 계획 범행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남겨두고 생을 마감하게 됐다”며 “피고인은 장기간 사회와 격리돼 진심으로 참회하며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A씨는 그러나 “남편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면서 1심 형량이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에선 의학 전문가 등의 증인신문이 진행될 예정이다. A씨가 액상 니코틴을 구매하는 등 계획범죄 정황은 있지만, 직접 증거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임명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