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벤트에 올인, 1년 8개월간 밀린 '민생법안'

입력
2022.11.15 17:00
[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43> 선거하느라 법안 심리 안 한다?
지난해 중간착취 방지법안 발의하고도
대선, 지방선거 등의 과정서 심의 뒷전
후반기 상임위 구성 바뀌어 논의 원점

"아주 중요한 민생법안이라 생각하고 저도 통과시키고 싶습니다. 여론 잘 만들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법안 소위에서 논의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의원실에 '중간착취 방지법안'의 심의 의사를 묻자, 한 보좌진은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이처럼 말했다. 그는 "기자님, 김용균씨와 유사한 사례들이 모이면 저희한테 제공 좀 해주세요. 아무래도 의원님들 설득이 먼저라 눈에 보이는 수치를 보여줘야 해서요. 그래야 법안 심사라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도 했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지난해 초 국회 환노위에 관련 입법 제안을 했고, 여러 건의 법안 발의로 이어졌지만, 심의가 전혀 안 된 채 21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이 바뀌면서 환노위원 16명 중 4명만 잔류했다. 즉, 보좌진 말대로 의원들을 다시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보좌진이 말한 고(故) 김용균씨 사례는, 하청업체가 김씨의 임금 절반 이상을 착취한 사안이었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로 일하다 숨진 그는 월급 220만 원 안팎을 받았는데,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이 하청업체에 지급한 직접노무비(인건비)는 월 522만 원이었다.

비슷한 중간착취 사례들은 수없이 보도됐고 관련 법안은 지난해 3월부터 잇따라 발의됐지만, 전반기 환노위 소위에서는 단 한 번도 심의하지 않은 채 의원들이 흩어졌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뒤이은 거대 야당의 당 대표 선출 등의 정치 이벤트에 밀린 것이다. 대선 이후, 올해 3월 법안 검토 현황을 묻는 질문에 당시 환노위 관계자는 “4월에 임시국회가 열리지만 여당 간사(임이자 국민의힘 의원)는 대통령직 인수위 간사로 갔고, 야당 간사(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지방선거에 (전북도지사로) 출마하다 보니 법안 논의 전망은 불투명하다”고 했다.

선거를 포함한 각종 정치 이벤트는 결국 민생을 잘 돌보기 위한 것인데, 현실에서는 반대로 정치 이벤트에 매달리느라 민생 법안을 심의조차 하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간착취의 지옥도' 바로가기: 수많은 중간착취 사례들을 보도한 기사들을 볼 수 있습니다. 클릭이 되지 않으면 이 주소 www.hankookilbo.com/Collect/2244 로 검색해 주세요.

최나실 기자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