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날'…자리 비운 벤투와 포르투갈의 기구한 인연

입력
2022.12.02 04:30

조국과 숙명의 대결을 앞둔 파울루 벤투(53) 감독의 심정은 어떨까. 포르투갈의 국가대표를 거쳐 대표팀 지휘봉까지 잡았던 벤투 감독이 한국 축구대표팀을 맡은 건 운명이었다. 지난 4년 동안 준비한 모든 과정이 현재 포르투갈에 오롯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벤투 감독은 3일 오전 0시(한국시간)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최종전 포르투갈의 경기에 나설 수 없다. 가나전 당시 레드카드를 받았기 때문에 벤치가 아닌 관중석이 그의 자리다. 원칙상 '원격 지휘'도 금지된다.

하지만 준비한 잘하면 된다. 벤투 감독이 포르투갈 선수들을 훤히 꿰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7)는 벤투 감독의 동료이자 제자였다. 호날두는 벤투 감독이 2004년까지 선수로 마지막을 보냈던 포르투갈의 스포르팅에서 처음 만났다. 2002-2003시즌 팀에 합류한 호날두의 나이는 겨우 17세였다. 벤투에게 호날두는 그야말로 까마득한 후배였다.

두 사람이 소속팀에서 함께한 시간은 짧았다. 호날두가 1년여 만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부름을 받아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로 활동 영역을 넓힌 호날두는 2010년 벤투 감독과 재회했다. 벤투 감독이 포르투갈 대표팀의 수장으로 부임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벤투 감독은 호날두를 어르고 달래 가며 활용했다. 현재 손흥민(30·토트넘)에게 판을 깔아주듯 호날두를 중심으로 전술을 구성했고, 불협화음 없이 팀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개성이 강한 호날두도 팀의 대선배이자 대표팀 스승인 벤투 감독의 카리스마를 존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방한한 포르투갈 레전드 루이스 피구(50)는 "벤투는 선수 시절부터 우리 중에서 최고의 지략가였다"라며 벤투 감독의 리더십을 치켜세웠다.

벤투 감독은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포르투갈이 16강 진출에 실패하자 경질됐다. 주장 완장을 찬 호날두 역시 조별리그 가나전에서 간신히 한 골을 만회하며 체면치레를 했을 뿐이었다.

당시 벤투 감독과 인연을 맺었던 제자들이 현재 포르투갈 대표팀에 포진해 있다. 미드필더 윌리암 카르발류(30·레알베티스)와 수비수 페프(39·포르투), 공격수 히카르두 오르타(28·브라가) 등이 벤투 감독이 발탁해 기용한 선수들이다.

페르난두 산투스(68)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과 벤투 감독의 인연도 남다르다. 두 사람도 스포르팅 시절 사제 관계였다. 산투스 감독은 벤투의 현역 마지막을 함께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해임됐다. 그러나 그는 벤투 감독이 포르투갈 대표팀에서 하차한 뒤 후임으로 부임한 인물이다. 현재까지 8년째 포르투갈을 지휘하고 있다.


강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