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뉴욕 담보로 서울 지킬까… 대북 '확장억제' 실효성과 한계[문지방]

입력
2022.12.05 13:00
윤 대통령, 석 달간 '확장억제' 11번 언급 
美, 동맹국이 핵공격당하면 핵으로 응징 
北 핵·미사일 고도화에 억제력 의구심 
전문가 "원론적 약속 말고 구체 계획을"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북한의 고도화된 핵 능력에 맞게 한미 간 확장억제를 실효적이고 획기적으로 강화해나갈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 11월 13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반드시 후회할 도박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 11월 17일 한미일 확장억제 강화 입장을 비난하며

‘확장억제’라는 용어를 둘러싼 한미 양국과 북한의 신경전이 치열합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훈풍이 불었던 한반도 정세는 2019년 2월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하노이 노딜’ 이후 급격히 얼어붙었죠. 급기야 북한은 올해 63발의 미사일을 쏘아 올리며 한국과 미국을 향한 위협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미국 서부는 물론 동부의 뉴욕과 수도 워싱턴까지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도 포함됐습니다.

기승을 부리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맞서 한미일 3국이 안보협력을 강화하며 꺼낸 카드가 바로 확장억제입니다. 윤 대통령도 틈날 때마다 이 용어를 사용했는데요. 최근 석 달간(9~11월) 11차례나 확장억제를 언급하며 튼튼한 안보태세를 강조했습니다.

핵보유국 간 '공포의 균형'…서로 공격 못하는 효과

확장억제란 무엇일까요. 억제란 '무언가를 눌러 못하게 한다'는 뜻이죠.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핵이나 재래식 무기 등 군사자산을 동원해 상대 도발에 대응한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특히 중요한 건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점입니다. 즉, 미국 본토가 핵공격을 당하면 핵을 포함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보복하겠다는 것이죠.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핵억제 전략을 통해 미국이 적대국에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오판해서 우리를 공격하면 너희는 초토화될 거야'라는 것이죠.

억제의 핵심은 '공포의 균형'입니다. 보복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서로 섣불리 공격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죠. 특히 핵무기의 경우 가공할 위력 때문에 그 공포는 극대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틈이 발생합니다. 유엔과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공식 핵무기 보유국은 5개국(미국·러시아·중국·프랑스·영국)에 불과합니다. 이외에 비공식 핵보유국은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이 있죠. 북한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보는 시각이 있으니 모두 더하면 9개국이 되겠네요. 핵은 전 세계 197개국 가운데 고작 4%만 가진 '안보 특권'인 셈입니다.

자연히 핵이 없는 나라는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북핵 위협에 시달리는 우리는 더 그렇죠. 그래서 나온 개념이 확장억제인데요. 미국이 자국 방어를 위한 억제전략을 한국, 일본 등 동맹국까지 '확장해' 적용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북한이 남한을 핵으로 공격하면 미국이 핵으로 보복한다는 것이죠.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위험수위를 넘을 때마다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미 공군 B-2, B-1B 폭격기 등 전략자산이 한반도 상공에 전개하는 것도 확장억제의 일환입니다.

미국은 확장억제를 통해 동맹국을 보호해주는 효과에 더해 비(非)핵보유국이 핵을 갖지 못하도록 유도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핵우산’이라는 표현을 들어보셨지요. 이 핵우산이 확장억제를 쉽게 부르는 별칭입니다. 미국의 핵우산 아래 들어가면 우리도 핵공격 위협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이죠.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미국이 우리나라에 핵우산 제공을 처음 약속한 건 1978년 제11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미국이 닉슨 독트린(미군을 아시아에서 단계적 철군시키려는 계획)을 선언하자 은밀히 자체 핵개발에 착수했었는데요. 양 교수는 "미국은 '핵개발 도미노' 현상을 우려해 핵우산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확장억제 강화 추진이 '안보의 딜레마' 불러"

이처럼 확장억제는 44년이나 된 오랜 전략입니다. 하지만 근래들어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습니다. 우선 G2(미국·중국)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계기로 '반미' 기치 아래 북한, 중국, 러시아가 뭉친 탓입니다. 그동안 북한의 미사일·핵개발을 제재해 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기능이 유명무실해졌어요.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안을 비토(거부권)하고 있어서죠.

이에 미국은 "확장억제를 더 강화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사일을 쏘아대니 '확장억제가 정녕 북한을 움츠러들게 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죠. 또 한미 확장억제로 인해 '안보 딜레마' 상황이 조성됐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 도발을 막으려고 확장억제를 강화하면 오히려 북한을 자극해 도발 수위를 높이는 모양새"라고 진단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의 미사일 능력이 미 본토를 위협할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점입니다. 북한이 먼저 서울을 핵미사일로 타격했을 때 미국이 보복 차원에서 평양을 핵공격한다고 가정해 보죠. 북한도 ICBM에 핵탄두를 실어 미국 대도시를 공격할 수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과연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한국을 위해 적극 나서줄까요. 미국으로서도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앞서 1961년 샤를 드골 당시 프랑스 대통령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모양입니다.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던 그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파리를 지켜내기 위해 뉴욕을 포기할 수 있느냐”고 물은 뒤 자체 핵무기를 개발했죠.

국내에서도 최근 보수 정치인 등을 중심으로 미국의 전술핵(폭발 위력이 상대적으로 작은 핵무기)을 한국에 재배치하자거나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자는 주장이 부쩍 목소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다만 미국이 동의할 리 만무한 데다, 그로 인해 가혹한 경제제재 등을 감수해야 하기에 실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한 실정입니다.

더 불안한 건 조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우선순위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 대만 이슈에 밀려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미국 입장에서 북한보다는 러시아와 중국에 맞서는 것이 훨씬 시급하다는 것이죠. 자연히 미국이 확장억제를 실제로 강화하는데 얼마나 사력을 다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6~2017년 '발사의 왼편(Left of Launch)'이라는 전략을 가동한 적이 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기에 앞서 전자전 장비나 사이버 작전 등을 벌여 교란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북한은 유독 미사일 발사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에서 같은 전략을 시행하는지 아직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사이 북한은 줄기차게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죠.

"확장억제의 구체적 절차 명문화한 별도 협정 필요"

어떻게 하면 확장억제가 다시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원론적 약속만 거듭할 게 아니라 구체적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미국은 지금껏 "핵우산 제공 약속은 꼭 지킬 테니 우리를 믿으라"는 입장만 고수해왔기 때문입니다.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확장억제력은 핵은 물론 재래식 무기로도 가동할 수 있기에 상황별 대응 절차를 구체화해야 한다"면서 "명확히 규정해놓지 않으면 한반도 내 미군 철수를 주장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처럼 정권에 따라 확장억제 공약이 의심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성출 전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은 “한미상호방위조약처럼 별도의 협정을 맺어 확장억제력이 제도적으로 담보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미는 연합 작전계획(작계)에 따라 유사시 전시증원군 전개 계획을 마련해 놓았는데 여기에 확장억제 관련 내용이 명확히 규정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미 양국은 한동안 중단됐던 '확장억제전략협의체'를 지난 5월 재가동했습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온갖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핵위협을 지속적으로 고조시키는 만큼 실질적 억제력을 확보하기 위한 좀더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유대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