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잃어버린 30년: 대체 무슨 일이?

입력
2022.12.14 00:00
26면
1인당 소득 세계 1위에서 33위로 추락
저출산과 현실안주, 역동성 잃은 일본
30년 허송세월의 흥망성쇠 반면교사

1980년대 말 일본은 세계경제를 호령하는 역동적인 국가였다. 한때 1인당 국민소득이 4만5,000달러로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엔화의 기세는 뉴욕의 록펠러 빌딩, 콜롬비아 영화사를 사들일 정도로 대단했다. 해외 투자는 넘쳐나고 도요타,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제품은 세계를 휩쓸었다. 당시 일본형 정치경제 시스템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의 성공모델로 여겨졌고, 우리에겐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었다. 한마디로 '재팬 이즈 넘버원'의 시대였다.

30년이 경과한 지금, 일본의 모습은 대조적이다. 이 기간 동안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0.7%,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달러 남짓으로 세계 33위로 내려앉았다. 취업자 평균 임금은 한국에도 뒤지는 수준이고, 가처분 소득도 과거 수치를 밑도는 수준으로 하락했다. 30년간 일본경제는 장기침체에 들어가 좀처럼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과거 영광을 되찾기 위해 아베노믹스 등 특단의 처방을 써 보았지만 속수무책이다. 그 결과, 사회 활력도 문화 창의력도 예전에 비해 현저히 쇠락하고 있다.

일본이 30년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초고령화-저출산의 인구구조이다. 생산력을 지탱하는 맨 파워가 약화하고 있다. 생산연령 인구가 감소하고 피부양 인구수는 급속히 늘어남으로써 경제 활력이 저하되고 있다. 인구 중 65세 인구의 비율이 29%로 세계 1위이고 출산율도 1.3에 그치고 있다. 이 점은 세계 최저 출산율 0.79를 보이는 한국에도 남의 일만은 아니다.

둘째, 1990년대까지의 제조업 성공신화에 젖어 대세가 된 디지털 혁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도 무시 못할 요인이다. 세계 경제는 정보기술(IT), 인터넷, 정보 지식 혁명으로 급속하게 진화하고 있는데 일본은 여전히 제조업 중심, 아날로그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행정의 디지털화로 전자정부가 구현되고 있는 세계 추세 속에서도 일본은 서류 수작업과 도장과 팩스가 여전히 통용되는 사회에 머물러 있다.

셋째, 이른바 갈라파고스 현상이다. 국경을 넘어 글로벌라이제이션 흐름 속에서도 일본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기득권자들의 담합 체질, 카르텔 구조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규제와 장벽 및 내부거래 관행을 온존시키며 과감한 혁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담합-카르텔 구조 속에서 개혁적인 정치, 혁신적 스타트업, 새로운 사회문화의 창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넷째, 돈이 일하지 않고 잠자는 사회가 되었다. 경제성장으로 일본은 어마어마한 자본을 축적했다. 정부가 1,000조 엔이 넘는 부채를 안고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일본 금융기관에는 저축액이 넘쳐난다. 외환 보유고도 1조2,000억 달러 이상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엄청난 해외 직접투자의 결과 해외 순자산도 411조 엔으로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에 따른 충격과 트라우마가 컸던 탓인지, 일본에서는 적극적인 투자를 꺼리는 풍조가 정착되었다. 개인도 기업도 과감한 신규 투자를 좀처럼 하지 않다 보니 투자→생산→임금→소비의 선순환적 성장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디플레 경제의 체질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이유다.

현재 일본 사회는 메이지 유신과 전후개혁에 이은 대대적인 제3의 개혁과 혁신을 요구하지만, 정치 리더십이 이에 응답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하고 있다. 이것이 30년간 일본이 '정지 화면'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최대 원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30년의 세월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기업도 국가도 흥망성쇠가 좌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본의 사례가 잘 보여 주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