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의 증명사진

입력
2023.01.09 04:30
26면




“사진은 거짓말 안 합니다.” 사진기자의 무뚝뚝한 대답에 인터뷰이는 적잖이 무안했다. “실물보다 예쁘게 찍어주세요”라고, 농담 반 부탁 반 건넨 말인데, ‘생긴 대로 나오는 법’이라며 철벽을 치다니. “아, 네… 그렇긴 하죠.”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그는 멋쩍게 웃으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렀어도 ‘생긴 것보다 더 나아 보이게 찍어달라’는 허황된 부탁은 변함없이 들려온다. ‘사진은 거짓말 안 한다’는 사진기자의 대답도 여전하지만 반응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무안해 하기는커녕 다들 피식 웃고 만다. 그런 거짓말을 누가 믿는다고.

지금은 사진이 자유자재로 거짓말을 하는 세상이다. 카메라 앞에 선 인터뷰이들의 요구도 예쁘게 찍어달라는 수준을 성큼 넘어선다. ‘뽀샵’으로 얼굴 잡티를 없애달라거나 인상이 부드럽게 보이도록 눈매를 수정해 달라고도 하고, 이러이러해서 들어주기 어렵다고 하면 자기가 알아서 수정할 테니 아예 사진 원본을 넘겨달라고도 한다.

사진 조작에 민감한 신문사니까 이런 요구들을 ‘무리’라고 여기지 일반 스튜디오에선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이다. 소위 ‘뽀샵 맛집’으로 통하는 스튜디오에선 불과 10~20분이면 ‘생긴 대로’가 아니라 ‘원하는 대로’ 증명사진을 만들어준다. 피부 잡티 제거나 턱선 깎기는 기본이고, 입꼬리를 올려 웃는 낯으로 바꾼 뒤 눈동자를 키우고 콧날을 얇고 오뚝하게 만져 ‘똘망똘망’ 일 잘할 것 같은 인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준다. 아무리 후보정을 최소화한다 해도 뽀얀 피부와 비대칭 개선 정도는 기본으로 들어간다.

사진 속 나와 실제의 내가 이렇듯 다르다 보니, 증명사진으로 나를 ‘식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업체 인사담당자들조차 입사원서에 붙은 증명사진을 실제라고 믿지 않고, 성형외과를 찾은 환자들은 연예인 사진 대신 자신의 증명사진을 놓고 “이대로 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최근 흉악범의 증명사진이 논란이다. 택시기사와 동거녀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이기영의 얼굴을 경찰이 운전면허증에 붙어 있던 증명사진으로 공개하면서 신상공개의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모습과 다른 증명사진보다 ‘머그샷’을 공개하는 것이 신상공개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머그샷은 범죄인 식별 사진을 말한다. 화장이나 옷매무새를 손볼 겨를 없이 구금 직전 상태 그대로 찍고 후보정도 없다. 범죄 혐의자의 가장 최근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았으니, 어쩌면 신문에 실리는 인터뷰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증명사진이라 할 수 있다.

머그샷 공개는 이기영이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라 당사자가 사진 공개를 거부하면 강제할 수 없다.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인권은 보호돼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다만, 신상공개 때마다 불거지는 불필요한 논란과 국민 불안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본인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머그샷을 공개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미국은 공익을 위해 당사자 동의 없이도 머그샷을 공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인권의식이 대한민국에 뒤져 있다고 볼 수는 없지 않나. 흉악범의 증명사진과 실제 모습의 괴리가 점점 커지는 상황을 우리 경찰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박서강 멀티미디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