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고용부 장관이 ‘중간착취’ 문제를 말했다, 그러나···

입력
2023.01.21 12:00
[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46>이정식 장관의 해법은
파견직 중간착취 문제 언급
파견업종 확대 연계 말아야
대통령 '이중구조'문제 지적
중간착취방지법이 큰 해법

편집자주

간접고용 노동자는 346만 명(2019년). 계속 늘어나고 있죠. 원청이 정한 직접노무비를 용역업체나 파견업체가 노동자에게 다 주지 않고 착복해도 제재할 수 없어서,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습니다. 국회에 발의된 '중간착취 방지 법안들'은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단 한번도 논의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는 상황. 한국일보는 중간착취 문제를 꾸준히 고발합니다.


고용노동부는 과연 ‘중간착취’ 방지에 관심이 있을까요? 한국일보가 간접고용 노동자 100명을 인터뷰해서 중간착취 실체를 폭로한 게 2년 전입니다.

청소원, IT개발자, 경비원, 철강·자동차 하청노동자, 콜센터 상담사, 하수처리장 노동자, 환경미화원, 발전소 하청노동자,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사회 곳곳 수많은 직종의 용역·파견·위탁(간접고용) 노동자가 원청이 책정한 직접노무비를 다 받지 못하고 월 수십만 원, 많게는 수백만 원의 임금을 중간에서 떼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떼도 최저임금만 주면 불법이 아니니까요.

힘들게 일하는 사람은 저임금에 시달리고, ‘사람장사’를 하는 사람은 쉽게 불로소득을 챙기는 구조지요.

고용부는 이런 문제제기를 줄곧 무시해왔는데, 최근 고용부 장관 입에서 마침내 ‘중간착취’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과연 이 정부에서 ‘중간착취 방지법’은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이정식 장관의 ‘중간착취’ 발언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지난 10일 연합뉴스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현재 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과 임금 중간착취, 고용불안 등을 해소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중간착취라는 우려를 불식하고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이 구현될 수 있도록 해 파견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자는 것”이라며 파견법 개정 추진을 언급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없네요. 고용부가 2021년 4월부터 12월까지 한국노동법학회를 통해 실시한 ‘파견근로계약에 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파견업체는 근로자에게 고스란히 가야 하는 인건비에서만 매달 12만 원가량을 착복하고 있었습니다. 이윤이나 관리비 명목을 따로 지급받고도 또 중간착취를 하는 것이죠.

이미 국회에는 노동자와의 근로계약서에 원청이 정한 임금을 명시하고, 파견 수수료(파견 근로자 임금 대비 파견업체 영업이익 등이 차지하는 비율)의 상한선을 정하도록 하는 내용 등의 파견법 개정안이 여럿 발의되어 있습니다.

한국일보가 중간착취 문제를 보도한 후 2021년 발의됐으나, 국회의원도 고용부도 아무런 관심이 없어서 방치된 상태이죠.

그래서 고용부 장관의 ‘중간착취’ 언급에서 희망을 본 것도 사실이지만, 과연 의미 있는 법 개정이 이뤄질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정부는 현재 파견 대상 업종을 더 늘리겠다는 입장이죠. 만약, 파견 중간착취 방지법을 파견직 확대와 연계시킨다면, 일을 더 꼬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중간착취 방지법은 그 자체로 반드시 관철돼야 하는 법안입니다.



파견보다 용역의 중간착취가 더 심한데

이정식 장관은 ‘파견 중간착취’만을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비율은 용역 형태에서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파견은 기한이 정해져 있어서 널리 확대되지 못하기 때문이죠.

또 용역 분야에서 중간착취 금액도 훨씬 높습니다. 하나의 사례를 들어볼까요. 한국서부발전과 용역계약을 맺은 하청업체에서 일했던 고(故) 김용균씨는 원청이 직접노무비로 월 522만 원을 지급했습니다. 그런데 하청업체는 용균씨에게 211만 원만 줬죠. 월급보다 많은 311만 원을 착복한 것입니다. 물론 불법이 아닙니다. 이런 현실이 불법이 아니라는 게 큰 비극이죠.

현재 국회에는 이런 노동자의 임금은 원청이 따로 전용계좌를 통해 지급하도록 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받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간단하고 중요한 법안조차 국회의원들도 고용부도 논의를 하지 않고 방치 중이지요.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착취’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역대 위원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노동개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노노(勞勞) 간 비대칭 구조라며 흔히 이를 이중구조라고 쓰지만 정확하게는 착취 구조”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똑같은 일을 하면서 월급에 큰 차이가 나고 차별을 받는다면 이는 현대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지요.

노동자 간 월급 차이를 월급을 주는 사용자의 책임이 아닌, 노동자들 간의 문제로만 언급한 것이 이상하지만 이중구조 문제는 정확한 지적입니다. 사내하청의 용역 노동자가 원청 직원들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원청 노동자에 비해 말도 안 되게 낮은 임금을 받는 게 현실이죠. 원청의 퇴임 간부가 낙하산으로 사내하청 사장으로 와서는 임금 중간착취로 한몫 챙기는 게 비일비재합니다.

윤 대통령이 말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착취’는 중간착취 방지법을 도입하지 않으면 해소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현재까지 중간착취 방지법은 외면한 채로, 마치 노조 때리기만 하면 이중구조가 해소될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의식과 해법이 동떨어진 것이죠.

윤 대통령과 이정식 장관이 지금이라도 중간착취 방지법을 면밀히 검토한다면 거기에 큰 답이 있을 것입니다.

▶'중간착취의 지옥도' 바로가기: 수많은 중간착취 사례와 법 개정 필요성을 보도한 기사들을 볼 수 있습니다. 클릭이 되지 않으면 이 주소 www.hankookilbo.com/Collect/2244 로 검색해 주세요.

이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