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차례상의 주연 고기에 기생충이? 아니, 그거 혈관이에요

입력
2023.01.21 15:00
고기에 혈관 붙어 있다고 놀랄 필요 없어
혈관, 힘줄, 근막 등 섭취 가능

편집자주

즐겁게 먹고 건강한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요. 그만큼 음식과 약품은 삶과 뗄 수 없지만 모르고 지나치는 부분도 많습니다. 소소하지만 알아야 할 식약 정보, 여기서 확인하세요.

한민족의 주식은 더 이상 쌀이 아닙니다. 2021년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쌀 소비량(56.9㎏)에 육박했는데, 지난해에는 역전됐을 거라는 분석이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이제는 사실상 쌀보다 고기를 더 많이 먹는 겁니다.

외식 메뉴 1순위는 당연히 고기이고, 웬만한 가정에서는 식탁에 고기가 올라오지 않는 날이 많지 않습니다. TV와 유튜브 등 미디어에도 고기 '먹방'이 차고 넘칩니다. 우리 국민들이 전통적으로 많이 먹은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오리고기는 물론 요즘은 양고기도 인기입니다. 햄과 소시지 등 가공식품에다 양과 막창, 곱창 등 내장에 족발까지 남녀노소 모두 즐깁니다. 그야말로 고기 전성시대입니다.

특히 오랜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은 고기 소비가 급증하는 시기입니다. 설만 해도 떡국, 소고기 산적, 갈비찜 등 고기는 차례상의 주연입니다.

이렇듯 고기에 진심인 한민족이라도 비위가 약한 부류는 있기 마련이죠. 고기를 손질하거나 불판에서 굽다 식겁하는 이들도 종종 보곤 합니다. 특히 가늘고 길쭉한데 색깔까지 거무스름한 게 보일 때입니다. 생긴 것도 딱 커다란 기생충이나 벌레 모양입니다. 화들짝 놀라겠지만 사실 이건 고기의 혈관입니다. 혈관 자체는 흰색에 가깝지만 혈액이 남아 있다면 검은색을 띱니다.

우리가 먹는 소나 돼지고기는 도축 뒤 정형 과정을 거쳐 등심, 안심, 목살, 갈비, 삼겹살 등 부위별로 상품화됩니다. 고기는 살코기라 부르는 근육 이외에 지방과 힘줄, 혈관, 근막 등으로 이뤄졌습니다. 근막은 살코기를 감싸고 있는 흰색의 얇은 섬유조직입니다.

이런 걸 죄다 쳐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무리 정형을 정교하게 해도 간혹 남는 게 있기 마련입니다. 햄, 소시지, 베이컨 같은 식육가공품에도 살코기 이외에 혈관, 힘줄, 근막 등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특히 근육 사이에 긴 형태로 존재하는 혈관은 가열하면 수축되면서 끝 부분이 좁아지고 때로는 뾰족해집니다. 비위 약한 이들을 놀라게 하는 회충이나 벌레처럼 보이는 것이죠. 동맥 혈관은 속이 빈 원통형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접수되는 고기 이물질 관련 오인 신고 중에는 이 같은 혈관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물질로 판명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돼지고기 지방에 선형으로 박혀 있는 의심스러운 물질을 현미경으로 확대해 봤을 때 내부에 적혈구가 들어 있다면 이건 혈관입니다. 또는 근육에 붙은 지방과 기타 조직 등이 가열 시 수축하면서 원형 돌기 형태로 변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돈가스 등 분쇄가공육 제품에서는 주로 근막이 이물질로 오인됩니다. 튀기기 전 돈가스의 하얀 빵가루 옷 사이로 섬유질의 근막이 삐쭉 튀어나와 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식약처 관계자는 "혈관이 길쭉해서 간혹 회충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회충은 장내에 기생하기 때문에 근육에는 존재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돼지 근육에는 사람이 감염되는 선모충의 유충이 잠복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선모충 유충은 몸길이가 약 0.1㎜라 육안으로 찾아내기는 어렵습니다. 유충 감염 부위 주변은 면역세포 침윤 등의 염증반응이 관찰돼 눈에 보이는 혈관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이런 혈관이나 근막은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애초에 고기의 일부였고 햄이나 소시지도 맛나게 먹으니 당연한 얘기입니다. 그래도 보기에 징그러워서 꺼림직하다고요? 어려울 게 뭐 있습니까. 한국인이 고기를 먹을 때는 필수품인 가위가 항상 근처에 있습니다. 싹둑 잘라 버리면 그만입니다.

김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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