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장에 버려진 수녀... 성직자의 잔혹한 비밀은 버려지지 않았다

입력
2023.02.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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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캐서린 세스닉 수녀 살인 사건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1969년 늦가을, 한 가톨릭 수녀가 사라졌다. 여동생의 약혼 선물을 사러 쇼핑몰을 찾은 날이었다. 동료 수녀와 신부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대대적 수색에 나섰다. 하지만 찾아낸 것은 수녀가 타고 나간 차량뿐이었다.

두 달 뒤 수녀는 인적 드문 쓰레기장에서 발견됐다.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온 수녀의 이름은 캐서린 앤 세스닉. '죽는 날까지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다짐했던 그의 나이, 고작 스물여섯이었다.

범인은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예닐곱 명의 용의자가 있었으나, 결정적 증거가 없었다. 그렇게 50년이 흘렀고, 숱한 의혹만 남았다. 하지만 철저한 가톨릭 도시인 미국 볼티모어 사람들은 확신하고 있다. 당시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한 일부 성직자의 '성적(性的) 학대'가 수녀의 끔찍한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메릴랜드주 가장 잔인한 살인 사건"

세스닉 수녀는 미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있는 키어 대주교 고등학교에서 일했다. 노트르담 학교 수녀회(SSND) 소속 수녀들이 운영하는 키어는 지역사회에서 명문 여학교로 통했다. 2년 차 젊은 영어 교사였던 세스닉은 평소에도 퇴근 후 자동차를 직접 몰고 인근 쇼핑몰을 찾아 빵을 사 가곤 했다. 1969년 11월 7일도 그런 날이었다. 게다가 오후 8시,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었다.

자정이 다가오는데도 세스닉 수녀가 돌아오지 않자, 동료 수녀와 신부들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그러나 경찰은 세스닉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수녀는 실종된 지 두 달이 지난 1970년 1월 3일, 볼티모어 남쪽 랜스돈에 있는 외진 쓰레기 소각장에서 한 사냥꾼에 의해 발견됐다. 둔기로 머리를 가격당한 흔적을 비롯, 평소 학교에서 활기가 넘쳤다는 수녀의 마지막 모습은 참혹하기만 했다. 당시 이 사건을 보도한 현지 언론은 "메릴랜드주에서 벌어진 가장 잔인한 살인 사건"이라고 전했다.

그런데 당시 희생된 건 세스닉 수녀만이 아니었다. 20세 회사원 조이스 말레츠키 역시 수녀가 실종된 날로부터 며칠 뒤 같은 지역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리곤 이틀 후 주검으로 발견됐다. 저항한 흔적이 온몸에 역력했다. 세스닉 수녀 살인 사건에 집중된 지역사회의 관심을 돌리려는 계획범죄 가능성도 제기됐다. 당시 미 연방수사국(FBI)도 세스닉 사망과 이 사건의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접점을 찾지 못했다.


20년 만의 충격적 폭로... "성직자의 성폭력"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간의 관심도 시들해져 갔다. 이대로 '영구 미제사건'이 되는가 싶었다. 상황이 달라진 건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도 넘게 지난 1992년이었다.

반전의 기폭제는 졸업생들의 폭로였다. 키어 대주교 고등학교의 교목 신부였던 조셉 매스컬과 또 다른 신부 닐 매그너스로부터 과거 학창 시절 수차례에 걸쳐 성폭력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세스닉 수녀가 학교에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었다.

이들이 털어놓은 신부들의 범죄 수법은 교묘했다. 피해자들 증언에 따르면 두 신부가 타깃으로 겨눈 학생은 과거에도 가족 등으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당했던 경우가 많았다. 성직자의 탈을 쓴 악마들은 이미 수치심과 이유 모를 죄책감 등으로 상처가 곪을 대로 곪아 있던 어린 영혼을 짓밟고 또 짓밟았다.

학생들은 당시 자신들을 가장 잘 이해해 줄 것 같았던 세스닉 수녀에게 이런 사실을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성폭력 피해자였음에도 죄책감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하던 학생들을 위로했다는 세스닉. 졸업생들은 "당시 세스닉 수녀가 '내가 해결할게'란 말을 했다"며 "이 문제와 관련해 자신이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가톨릭 학교의 '권력 그 자체'였던 성직자의 '끔찍한 비밀'을 알고 이를 파헤치려 한 탓에, 누군가로부터 살해당했다고 말이다.


결정적 증언 불구, 아무도 처벌받지 않아

이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언도 나왔다. 한 졸업생은 세스닉 수녀가 실종됐던 기간, 매스컬 신부가 자신을 차에 태우고 수녀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고 경찰에 밝혔다. 돌이켜 보니 황량한 숲 같았던 그곳에서 매스컬이 세스닉 시신을 가리키며 "다른 사람을 험담한 결과는 이렇다"며 협박을 가했다고 했다.

물론 이 일화만으로 매스컬을 진짜 범인으로 단정하긴 힘들다. 그러나 그 졸업생은 매스컬이 세스닉 수녀의 죽음과 깊이 관련돼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게 됐다. 하지만 10대 여학생에 불과했기에 '악마에 맞설 용기'까진 없었다. 그는 너무 어렸고, 매스컬이 몸담았던 볼티모어 대교구는 거대한 벽이었다.

매스컬이 범행을 강하게 부인한 건 당연했다. 졸업생들의 폭로로 20여 년 만에 세스닉 사망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떠오른 그는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기소를 피했다. 제보 등을 통해 경찰이 지목한 다른 용의자들도 수사선상에서 제외돼 갔다.

심지어 매스컬은 성폭력 혐의에서도 빠져나갔다. 아동 성범죄 공소시효가 만료돼 버린 탓이다. 뒤늦게나마 볼티모어 대교구가 성직자의 성범죄를 인정하고 매스컬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10여 명에게 보상금을 지급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고통은 세월이 흐른다고 희미해지지 않았다. 2001년 64세였던 매스컬이 뇌졸중으로 사망하면서 더 이상 그에게 어떤 죄도 물을 수조차 없게 되자, 피해자들은 망연자실했다. 이로써 볼티모어를 피로 물들인 살인 사건과 학생 성폭력 범죄로 처벌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게 됐다.

당시 피해자들을 향해 "왜 그렇게 끔찍한 피해를 당하고도 바로 폭로하지 않았냐"고 다그치는 목소리도 있었다. 또 다른 가해였다. 피해자들은 학교를 벗어난 이후 삶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의 끔찍한 기억이 매 순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몸부림치면서도, 단지 살아남는 데에만 온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50년 만에 열린 무덤... 여전히 살아있는 진실

그러나 진실을 파헤치려는 목소리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법. 20대 수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그날의 진상을 밝혀내기 위한 졸업생들과 시민사회의 노력은 50년간 계속됐다. 그 결과, 2016년 볼티모어 카운티 경찰은 '세스닉 수녀 살인 사건' 재수사를 결정했다. 당초 이 사건 수사를 맡았던 경찰관들은 퇴직한 지 오래였고, 수집된 증거들도 세월의 흔적에 빛이 바랜 시점이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기억은 여전히 또렷했다. 이들의 증언들을 토대로 경찰은 헝클어진 퍼즐을 다시 맞춰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세스닉 수녀 살인 사건과 성직자의 성적 학대 사건 간 연관성을 집중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The Keepers: 천사들의 증언'까지 넷플릭스에 공개되면서 이 미제사건을 둘러싼 관심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2017년 2월 경찰은 16년 전 고인이 된 매스컬의 시신을 발굴, 그의 유전자(DNA) 정보를 채취했다. 과거 세스닉 수녀가 주검으로 발견된 현장에서 수집한 DNA와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피해자들도 5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발전된 미국의 DNA 감식 기술에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결과는 '불일치'였다. 다시 막다른 골목이었다. 그럼에도 볼티모어 경찰은 "영구 미제사건 담당 형사들이 이 사건을 계속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결정적 증거가 될 만한 정보를 기꺼이 제공하는 사람들, 여전히 살아있는 생존자들이 현재로선 사건 해결을 위한 가장 큰 희망입니다."

조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