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억 주택, 팔면 세금 물지만 갖고 있으면 비과세인 까닭

입력
2023.02.12 07:00
15면
비싼 집 기준 '12억'의 비밀
거래세는 시장가, 보유세는 공시가가 잣대
혼동 줄이려 액수 맞췄지만, 시가>공시가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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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가 14억 원이면 비싼 집일까요. 그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은 부자일까요.’

국가는 부자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걷습니다. 조세에 부의 재분배 기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싼 집은 부자의 징표 중 하나죠. 그러면 얼마나 비싼 집이어야 집주인이 불이익을 감내할지 추측하고 기준을 마련하는 일은 과세당국인 정부의 과제일 터입니다. 이에 정부가 내놓은 답은 ‘12억 원’입니다. 집값이 이 기준액을 초과할 때 고가 주택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최근 결론입니다.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안타깝지만 정부 기준대로라면, 14억 원짜리 주택 보유자는 부자 당첨입니다. 집값이 고가 주택 기준을 넘으니까요. 과세를 피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부자가 아닌 사람보다 더 많은 세금을 물어야 하는 중과(重課) 대상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 ‘차별’ 가능성이 현실이 되는 것은 집을 팔 때입니다. 산 가격보다 조금이라도 비싼 가격에 비싼 집을 거래했다면 그때 남긴 시세 차익의 대가가 세금입니다. 양도소득세입니다. 저가 주택은 비과세가 기본이니 집값이 12억 원을 넘지만 않았으면 감당할 필요가 없었을 손해입니다. 그러나 직접 살든 월세를 주든 집을 팔지 않고 계속 보유하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때는 같은 값의 집이 정부가 규정한 비싼 집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고가 주택 기준이 경우에 따라 들쭉날쭉하며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것일까요.

실거래가 12억 원

“1세대가 양도일 현재 국내에 1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보유 기간이 2년 이상일 때는 양도세가 과세되지 않습니다. 다만 양도 당시 실지거래가액(실거래가)이 12억 원을 초과하는 고가 주택은 제외됩니다.”

국세청 안내입니다. 저가와 고가 주택을 가르는 금액 기준선이 ‘실거래가 12억 원’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기준 금액보다 비싸게 거래된 고가 주택이면 아무리 보유 기간이 길어도 양도세를 면제해 줄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저 정도 값나가는 집을 가진 부자는 비과세 혜택이 필요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을 겁니다.

고가 주택 기준액이 12억 원으로 조정된 것은 2021년 12월입니다. 2008년 이후 10년 넘게 9억 원이었는데, 꽤 긴 기간이다 보니 그 사이 물가와 더불어 집값도 많이 뛰어, 적정 수준을 다시 결정할 필요가 있겠다는 게 정부 판단이었습니다. 연혁을 보면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되 올릴 필요가 있을 때 3억, 6억, 9억, 12억 순으로 3의 배수에 맞추는 식이었습니다.

양도세 과세의 토대가 실거래가인 것은 기본적으로 실현된 소득에 세금을 물리는 세무 원칙과 관련이 깊습니다. 다만 유의할 게 있습니다. 양도세가 취득세와 함께 거래세로 분류되는 게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거래액이 아니라 양도자가 주택 거래로 남긴 시세 차익, 즉 소득이 과세표준(과표ㆍ과세 기준 금액)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만큼 거래 가격이 12억 원을 넘는 고가 주택이어도 양도 때 소득이 발생하지 않았거나 양도자가 손해를 봤다면 세금이 없습니다. 예컨대 15억 원에 산 주택을 손해 보며 13억 원에 팔았다면 양도세가 부과되지 않습니다.

공시가 12억 원

1세대 1주택자에게 적용되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공제액이 지난해 12월 세법 개정을 통해 11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상향됐습니다. 이로써 집이 한 채인 경우 가격 12억 원까지는 종부세가 면제됩니다. 사실상 이 세금의 고가 주택 기준이 ‘12억 원 초과’로 정해진 셈인데요. 액수만 보면 양도세 과세 기준과 일치하지만, 이때 12억 원은 종류가 다릅니다. 실거래가가 아니라 ‘공시가격’이라는 것입니다.

공시가는 종부세나 재산세 같은 보유세를 매길 때 사용하는 부동산 지표 가격인데, 한국부동산원이 조사ㆍ산정한 값을 국토교통부가 매년 공시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공식 집값’쯤 되는 셈입니다. 시세의 70~80% 수준으로 책정되는 게 통상적입니다.

정부는 번거롭게 왜 이런 별도 가격을 정하는 걸까요. 거래세와 달리 실현되지 않은 이익에 세금을 매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세 기준이 될 수 있는 보유 가치를 추정할 필요가 생기는 거죠. 공시가가 시세보다 싼 것은, 실제 손에 쥔 소득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납세자에게 부담을 줘야 해서인데요. 이것은 보유세가 거래세보다 상대적으로 관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시 고민거리는 얼마나 너그러워야 하는지입니다. 12억 원으로 고가 주택 기준 금액을 맞추자는 정부 의견에 국회도 동의한 것은 딱 부러지는 이상적 기준을 만들지 못할 바에야 숫자라도 일치시켜 혼동 여지를 줄여 보자는 취지였다고 합니다. 액수를 기억하고 있다면 계산이야 나중에 하면 되니까요.

시세 대비 비율을 현실화율이라 하는데, 이게 80%라 가정할 경우 공시가 12억 원 상당의 주택은 시가로 15억 원입니다. 75%를 적용하면 16억 원이 돼 여유가 더 커지죠. 지난해 기준으로 9억 원 이상 15억 원 미만 공동주택의 공시가 현실화율은 75.1%입니다. 15억 원이 넘으면 81.2%고요. 한 채 가진 집의 값이 시가로 14억 원가량이면 넉넉하게 종부세 비과세 대상이 됩니다. 이익을 남기고 팔 때는 양도세를 물어야 하지만요.

14억 원짜리 집을 보유한 1주택자 대상 면제 세금은 종부세뿐이 아닙니다. 1주택 ‘기준시가’가 12억 원을 밑돌면 임대소득세도 부과되지 않습니다. 기준시가는 공시가가 없는 건물에 국세청이 매기는 가격인데, 대부분 아파트에서 공시가와 동일합니다. 공시가가 12억 원 이하인 아파트로 얻는 월세 소득은 전부 과세 대상에서 빠진다는 뜻입니다.

아파트 보유자는 올 종부세 부담이 크게 줄어들 전망입니다. 지난해 거래가가 워낙 많이 빠진 데다 정부가 공시가 현실화율을 시가 낙폭보다 더 크게 낮출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린다는 목표입니다. 지난해와 올해를 비교할 때 공시가 △9억 원 미만은 69.4%에서 68.1% △9억 원 이상 15억 원 미만은 75.1%에서 69.2% △15억 원 이상은 81.2%에서 75.3%로 각각 낮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과표 12억 원

12억 원은 작년 말 개정된 종부세법에 한 번 더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과세 기준 금액인 과표입니다. 다주택 보유에 따른 기존 중과세율 적용 대상이 대부분 일반세율을 적용받게 됐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는데요. 남은 기준이 바로 ‘3주택 이상 합산 과표 12억 원 초과’입니다.

집값이 고스란히 과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종부세는 시가보다 싼 공시가가 기준이고요. 여기서 1주택자인 경우 12억 원을, 다주택자이면 9억 원을 각각 빼 줍니다. 끝이 아닙니다. 여기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다시 곱해 할인하는 식으로 세 부담을 더 줄여 줍니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정부가 60~100% 범위에서 시행령으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올해 비율은 정부가 80%를 유력한 방안으로 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들립니다.

보유 주택 합산 가격이 얼마나 될 때 종부세 중과 대상이 되는지 공식을 적용해 산출해 볼까요. 일단 가진 집이 3채 이상이어야 하고요. 과표가 12억 원을 초과하려면 공시가 현실화율 80%, 공정시장가액비율 80%를 적용했을 때 집값의 실거래가가 30억 원이 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기본 공제액 9억 원을 빼야 하니까 공시가로는 24억 원이 되죠.

문재인 정부가 강화한 다주택자 중과 규제는 윤석열 정부 들어 폐지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재산 규모가 얼마나 되느냐가 중요하지, 집이 몇 채인지가 대체 ‘뭐가 중하냐’는 게 현 정부 생각입니다. 양도세ㆍ종부세는 물론 지방세인 취득세까지 해당합니다.

집이 한 채인 경우를 가정한 게 아니니 사실 과표 12억 원은 고가 주택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일부러 맞춘 것이 아니라 우연히 숫자가 같아진 경우라는 게 기획재정부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요약해 볼까요. 모두 비싼 집을 가진 부자가 대상이고 액수가 전부 12억 원으로 같아 하나의 개념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양도세 기준이 되는 12억 원은 실거래가 △종부세 기준 12억 원은 공시가 △종부세 중과 대상 기준 12억 원은 과표입니다. 과세 목적별로 기준 가격 산정 방식이 다른 만큼 잘 살펴야 한다는 게 전문가 조언입니다.

세종= 권경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