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왜곡 더 심해져...초등교과서 조선인 '징병' 강제성 흐렸다

입력
2023.03.2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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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징병에 '지원' 표현... 자발성 시사
'일본의 영토'→'일본 고유의 영토' 수정 
임진왜란 조선인 피해, 간토대학살 삭제도


내년부터 일본 초등학교 6학년생이 사용할 교과서에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병에 관한 기술이 강제성을 흐리는 방향으로 변경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일본 정부의 지시로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토”로 수정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한일 관계 개선을 추진하며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 사과했다"고 했지만, 일본 정부의 진정성이 확인되지 않은 것이다. 아베 신조 내각부터 이어진 역사수정주의적 교육관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도 거듭 확인됐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8일 교과서 검정심의회를 열고 일본 초등학생이 내년부터 쓸 149종의 교과서가 검정 심사를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시민단체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구소는 이 중 3~6학년 사회교과서 총 16종의 변경 사항에 대해 검토한 내용을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했다.

분석 결과 점유율 1위인 도쿄서적 6학년 사회교과서는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인 징병에 대한 기술 중 “일본군의 병사로서 징병됐다”란 표현을 “일본군의 병사로서 참가하게 되고, 후에 징병제가 취해졌다”로 바꾸었다. 특히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이란 사진설명 앞에 “지원해서”란 문구를 추가해 조선인들이 자발적으로 전쟁에 나간 것처럼 표현했다. 점유율 2위인 교육출판 교과서는 “일본군 병사로 징병해 전쟁터에 내보냈다”는 기술에서 “징병해”를 아예 삭제했다. 문교출판 교과서만 “조선과 대만에서는 징병을 실시해 일본 군인으로서 전장에 보냈다”는 표현을 그대로 유지했다.


조선인 징병 사진에 '지원' 표현... '끌려와서'는 '동원되어'로

도쿄서적은 조선인 강제노역 동원에 대한 기술에서 ‘연행’을 연상시키는 표현도 삭제했다. “강제적으로 끌려와서”라는 표현을 “강제적으로 동원되어”로 바꾸었는데, 이는 ‘끌려오다’란 표현이 일본 정부가 부정하는 ‘연행’을 연상시키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2021년 4월 ‘강제연행’ 또는 ‘연행’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검정 대상이었던 고등학교 사회·역사교과서에서 ‘연행’이 들어간 표현이 대부분 ‘동원’ 등 다른 표현으로 대체됐다.

한국의 일부 언론이 27일 “일본 정부가 새 검정교과서에서 ‘강제동원’ 중 ‘강제’란 표현을 삭제했다”고 보도했지만 오보로 드러났다. 도쿄서적이 ‘강제’라는 표현까지 없앤 것은 아니며, 도쿄서적 외 2종은 2019년 판부터 이미 ‘강제’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독도 영유권 기술 매년 강화... 모든 교과서가 "일본 고유의 영토"

독도 영유권 기술은 올해도 강화됐다. 독도 관련 기술은 4~6학년 사회교과서와 지도에 들어 있는데, 특히 문교출판 4학년 사회교과서와 제국서원 지도에서 독도에 대한 기술이나 지도, 사진 등이 늘어났다. 문교출판은 독도에 대해 “일본의 영토”라고 서술하려 했으나 “일본 ‘고유의’ 영토”로 고치라는 일본 정부의 지적을 받고 수정했다. 이에 따라 초등학교 모든 사회 교과서가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표기하게 됐다. '원래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2017, 2018년 잇따라 ‘학습지도요령’을 개정해 영토교육을 강화하기로 했고, 이후 교과서에서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점을 강조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가해자로서의 일본을 지우려는 역사수정주의 관점은 식민 지배뿐 아니라 임진왜란과 간토대학살 등에 대한 기술에서도 드러났다. 문교출판 사회교과서의 2019년 판에는 "(임진왜란으로) 조선의 국토가 황폐해지고 많은 조선인이 희생됐다”는 내용이 있었으나 이번 판에서는 삭제됐다. 오히려 “히데요시는 중국을 따르고 있던 조선에 대군을 보냈다. 그러나 조선에서 전쟁이 잘 진행되지 않아 큰 피해가 나왔다”며 일본이 큰 피해를 입은 것처럼 기술했다.

올해 9월 1일 100년을 맞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 민간인 학살에 대한 기술도 약화됐다. 문교출판 2019년 판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푼다는 잘못된 소문이 퍼져 많은 조선인이 살해됐다”는 기술이 있었으나 이번엔 삭제됐다. 도쿄서적과 교육출판은 해당 기술을 유지했다.


시민단체 "일본 정부가 주도하는 역사 부정정책, 일본 어린이들에게 악영향"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구소는 이날 분석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번 교과서에는 2017, 2018년 학습지도요령 개정과 2021년 정부 견해가 강력하게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징병에 대해서는 자발성을 강조하는 ‘지원’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는데, 이는 일본 정부가 주도하는 역사 부정 정책이 소학교 교과서에까지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대부분 교과서가 반전, 평화, 인권을 지향하는 서술을 담고 있으나 유독 한국과 관련된 과거사를 서술할 때는 그런 교육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며 “이 같은 서술 기조와 정부의 개입이 일본의 어린 학생에게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다”고 비판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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