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직원이 버린 장갑 빨아서 써요” 아직도 이런 회사가 있다

입력
2023.04.08 12:00
[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49>토론회에서 나온 간접고용 현장 목소리

지난달 28일, 국회에 전남 여수의 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까만 분진이 묻은 ‘방진복’과 ‘방진 마스크’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와 양대 노총이 공동 주최한 ‘간접고용노동 중간착취 제도개선 토론회’에서였죠.

민주당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중간착취를 방지하기 위해, 파견·용역 노동자들에게 원청이 책정한 노무비를 전용계좌로 지급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여러 대책 논의와 함께,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고발도 이어졌는데요. 노동자들의 현장 사례발표 내용을 요약해 봤습니다.

현재 윤석열 정부도 원하청의 ‘상생임금’을 주요 정책과제로 내건 만큼,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네요.


방진복·방진 마스크까지 차별···건강 악화

김성호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광주전남지부장은 여수 산단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하청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비를라카본코리아는 타이어 등에 들어가는 카본 미세분말을 만드는 회사로, 생산직 노동자들은 매일 유독한 까만 분진가루를 뒤집어 써가며 일하는데, 사내 하청 비정규직에겐 필수 물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것이죠.

“일회용 방진복을 입고 근로를 합니다. 원청 노동자들은 제한 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하청은 월에 5개를 줍니다. 1주일에 한 개씩 사용하게 돼 있는데, 한나절만 되면 오염이 돼요. 그걸 빨아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방진 마스크도 하루에 한 개씩 지급하는데, 30분이나 1시간이 되면 까매집니다. 그런데도 마스크 하루 하나, 방진복은 주에 하나입니다.

일회용 개인용 장갑은 포장 업무 담당자에게 한 달에 15개 지급됩니다. 그래서 원청 노동자들이 장갑을 사용하고 버린 걸 빨아서 쓰죠. 전문용어로 ‘득템’이라고 합니다. 피부질환이나 호흡기 질환 등이 굉장히 자주 발생합니다. 더 뼈아픈 것은 화장지도 다르게 줘요. 원청과 하청 노동자를 구분해서요. 원청 사용 화장지랑 하청 사용 화장지가 달라요. 본관 건물은 출입도 못 하죠. 카본이 화장실 변기에 오염되는 게 싫어서 원청 직원들이 (하청이) 화장실 오는 것도 싫어해요. 임금을 비교하면 비를라카본코리아 10년 차 사내 하청 노동자 연봉이 2,600만 원 정도이고, 원청 노동자 평균 임금의 30%에 불과합니다. 원청은 하청 업체에 임금 인상 등을 이유로 15% (대금을) 올려줬다고 하는데, 그 돈은 누구에게 간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사실 대다수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임금뿐만 아니라 물품대금을 원청이 원래 적게 준 것인지, 하청이 떼어먹은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전용계좌로 임금을 주게 하는 중간착취 방지법이 마련되면 임금에 대해선, 그 책임소재라도 명확해질 것입니다. 비를라카본코리아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3월 3일부터 파업에 돌입해 긴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부당함 항의하면 일자리 잃어

콜센터 상담사는 대표적인 간접고용 직종입니다. 민간기업, 공공기관 할 것 없이 이 힘든 감정노동자들을 직고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즉 쉽게 해고되는 용역 노동자들이죠.

이날 토론회에서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해고자인 이하나씨(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더불어사는지부 소속)가 그 고충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부당한 대우를 항의하는 과정에서 용역업체가 변경돼 해고됐다고 합니다. 원청은 용역업체와 계약해지를 하면 간단하게 간접고용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지요.

“민원 발생 시 시말서 작성, 시말서 작성 시 성과급 전액 삭감, 시말서 3장 누적 시 퇴사. 처음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가 생기고 1년 동안 유지되었던 성과급 지급기준 조항 중 하나입니다. 저축은행중앙회의 민원은 금융감독원을 통해 원청에 접수되지만 통화 녹취나 상담이력과 같은 데이터베이스(DB)는 하청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원청은 민원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민원이 발생되었다는 사실만으로 하청을 닦달합니다.

일하는 3년 중 2년 반 동안 휴게실이 없었습니다. 관리자는 상담사의 휴게시간을 줄이고 휴게시간에 누워서 쉬지 못하게 했습니다. 휴게시간에 의자에 앉아 있으랍니다. 원청인 저축은행중앙회가 싫어한답니다. 원청과 재계약을 하려면 상담사들의 권익보다는 원청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더 먼저였을 것입니다.

2022년 6월 트집을 잡는 고객에게 점심시간이니 다시 전화드리겠다는 상담사에게 민원을 건 고객에게 사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축은행중앙회는 관리자의 출입증을 빼앗고 하청업체에 연락해 “당장 치워버리라”며 절차에 맞지 않는 직위해제를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저희 콜센터 상담사들은 관리자의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대자보 게시를 하였고 관리자는 원직복직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달 후 저축은행중앙회 직원이 콜센터에 무단침입해 1시간가량 술주정을 하며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해당 관리자가 저축은행중앙회에 사과요청을 하였고 한 달 후 해고되었습니다. 그리고 세 달 후 대자보를 게시한 구심점이 된 인력들이 업체 변경을 이후로 해고되었습니다. 사실 투쟁하고 있는 우리도 하루에 수십 번도 더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유서를 써놓고 죽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내 하청이 떼어먹는 노무비 액수는?

포스코 전남 광양제철소에서 구내 운송 업무를 하는 사내 하청 업체의 박옥경 노조위원장(한국노총 금속노련 광양지역기계금속운수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기회만 되면 노무비를 빼돌리려고 하는 하청업체들의 상황을 증언했습니다. 원청이 임금을 높여서 내려보내도, 하청업체에 노조가 없으면 제대로 지급을 안 한다는 것이죠.

“2017년 8월 포스코에서 협력사(광양 45개) 근로자 대표자와 사용자 대표자들이 구성된 협력사 상생협의회를 만들어서 원하청 소득 불균형 해소(원청사 대비 80%)를 위해 협의했습니다.

저는 3년간 근로자 측 공동의장으로 활동했지요. 그 당시 원청사에서 갱신계약 안에 노무비를 가령 10%라고 보내준다면 노동조합이 있는 회사는 임금 인상에 10% 전액을 인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45개사 중 노동조합 결성률이 15% 이하였고, 노조가 없는 회사는 ‘퇴직충당금 적립도 해야 해서 다 못 올려준다’는 등 여러 핑계로 원청에서 받은 10% 인상분 중 5%, 7% 정도만 올려주는 식이었습니다.

3년 시간이 지나서 하청사 평균임금을 살펴보면 노동조합이 결성된 회사(원청사 대비 65% 수준)와 결성되지 않은 회사(원청사 대비 55%)의 임금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이 발생되었습니다. 기본임금을 인상하지 않고 성과급 등 형식의 일회성으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노조가 있는 하청사는 매년 지급 편차가 작은 기준급여 인상을 요구하며 회사와 노사분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원청사는 갱신계약 요율을 적게 주겠다고 하청 노조를 협박합니다. 이건 포스코 직계약사(1차 하청)의 임금 결정과정입니다. 동일한 작업장인데도 2, 3차 하청 계약을 해서 수수료를 떼이기 때문에 2, 3차 하청 노동자들은 임금이 더 적습니다. 매출 대비 15% 정도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갑니다.

하청사 임금에 차이가 나자 원청사는 갱신계약을 하향평준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하청사에서 생산성을 향상하면 갱신계약 시 원가 절감으로 삭감돼 매출이 동일하게 되고 있어 하청사노동자들의 생산성 향상은 하청사 노동자의 노동강도만 높이는 정책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포스코와 계약한 대기업과 자회사는 수수료를 15% 가져가면서 안전이나 작업환경 노무관리의 제반사항은 하청사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원청사의 임금 인상 시, 하청도 동일한 수준의 임금 인상 요율을 정해 임금이 보장돼야 하며 허울뿐인 회사를 만들어 수수료를 편취하는 이러한 계약방식은 보완돼야 합니다.”

중간착취방지법은 시작일 뿐

민주당은 중간착취방지법의 상반기 입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2021년부터 중간착취 문제를 줄곧 제기해 왔고 이날 토론회에 취재팀을 대표해서 전혼잎 기자가 참석해 △파견·용역 노동자 임금을 원청이 전용계좌로 지급 △앱을 통해 일감을 받는 플랫폼 노동자의 중간착취 방안 추가 마련 등의 방안을 주문했습니다.

또한 “현재 발의된 법안을 보면 일정 규모 이상의 용역 거래에 임금전용 계좌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경우 정작 열악한 근로자는 빠지는 게 아닌지 좀 우려가 된다”며 “소형 사업자의 경우 임금전용 계좌와 확인시스템을 구축하기 어렵다면 원청이 간접고용 근로자의 개인계좌로 직접 지급하는 방안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인건비인데 이게 노동자에게 다 가지 않는다면 여기에 왜 인건비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다”고 중간업체의 임금 착복을 방치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죠.

우선은 용역·파견업체가 원청이 관리비·이윤 몫으로 보내준 금액뿐 아니라 노동자 직접 노무비까지 착복해도 제재할 수 없는 상황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하지만 이는 시작일 뿐입니다. 용역·파견업체가 바뀌면 고용승계가 되지 않고, 심지어 3개월 쪼개기 계약에까지 내몰린 문제들도 해결을 해야 합니다. 박옥경 위원장이 제시한 원청 직원 임금 인상률과 하청 직원의 임금 인상률을 연동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노동자를 쥐어짜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 중간착취의 구조를 한국일보가 주목하고 보도한 것은 약육강식의 사회를 고발하고 민주주의가 무력화되는 현실은 가감 없이 드러낸 특종입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의 우직한 노력으로 오늘 중간착취 근절을 위한 토론회가 마련된 것에 대해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표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라고 했는데요. 하지만 입법 성과가 없다면, 한국일보의 노력도 무위로 돌아갈 것입니다.

얼마 전 지난해 평균연봉 1억 클럽 대기업(35곳)이 2019년(9곳)과 비교하면 3.9배로 증가했다는 보도가 있었죠.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 100대 비금융업 상장사만 분석한 것이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 격차는 2배 이상이라고 하죠. 임금격차가 사회 문제로 확산된 한국,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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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 논설위원
최나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