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 시장주의로 위기 대응... "올해 재정 풀어 경제 살려야"

입력
2023.05.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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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 출범 1년, 경제]
건전 재정 원칙 삼아 감세·규제 완화
"비전 제시 못해" 실행력 평가 박해
"반도체 편중 산업구조 개선을" 제언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월 이례적 ‘복합 위기’ 와중에 출범했다. 특히 미국이 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하는 바람에 글로벌 경기가 가라앉고 있었다. 쪼그라든 수출과 비싸진 수입, 빠져나가는 외화에 한국 경제가 휘청거렸다.

1년이 지난 지금, 이만하면 잘 막아 냈다는 게 정부 자평이다. 작년 여름 6%대까지 치솟았던 물가 상승률을 3%대로 떨어뜨렸고, 고용도 무난히 방어했다. 순간 신뢰가 망가지며 갑자기 경색됐던 자금시장은 빨리 손을 써 되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전반적 동의는 여기까지다. 전형적 ‘우파 친기업 시장주의’를 표방하며 경제 성장과 혁신 주역 자리를 민간 부문과 기업에 물려주고 한발 물러선 정부의 정책 기조 전환에 대해 전문가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보혁 평가가 엇갈리지만 미지근한 두둔과 달리 질책은 차갑다.

대체로 감세는 수긍할 만하다는 보수 쪽도 재정 긴축 고집에는 변호에 인색하다. 경제 침체가 일촉즉발인 상황에서 돈을 아끼기만 하는 게 정부의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방향과 별도로 태도가 너무 소극적이라는 고언은 이념 상관없이 공통적이다.

“자유 보장으로 역동성 복원”

윤 정부 경제팀이 1년간 한 일은 크게 두 가지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 경제 분야 주요 성과 및 과제’ 보도자료에서 “정부 출범 직후부터 당면한 복합 경제위기 극복에 총력을 다하며 민간 중심 경제 운용 기조 전환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기재부 회고에 따르면, 작년 윤 정부 출범 당시 전 세계적 과잉 유동성 및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유례없는 인플레이션(고물가)과 이를 타개하려는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었고, 한국의 주력 수출 산업인 반도체 가격은 이미 그해 초 급락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위기 요인은 외부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장기간 누적돼 온 구조적 문제도 작용했다는 게 기재부 진단이다. 정부ㆍ재정 주도 경제 운용과 과도한 규제 등 탓에 민간 활력이 크게 둔화하고, 국가ㆍ가계부채 급증 때문에 정부의 위기 대응 여력도 크게 위축된 형편이었다고 기재부는 당시를 돌아봤다.

정부 대처는 대략 네 갈래였다. 일단 글로벌 복합위기부터 넘겨야 했다. 비상 체제로 전환하고 긴밀한 거시경제ㆍ금융 정책당국 간 공조 체계를 구축했다. 50조 원 넘는 유동성을 자금시장에 공급한다는 과감한 시장 안정 조치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배경에서라는 게 기재부 설명이다.

정부가 작심한 지향은 민간ㆍ시장 중심 경제 운용 기조였다. 민간의 자유와 창의가 최대한 보장돼야 민간 스스로 혁신을 추구하는 ‘역동적 시장경제’가 구현될 수 있다는 신념을 토대로 기업의 역동성을 복원해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유도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법인세 인하를 비롯한 감세와 각종 규제 완화책을 도입했다. ‘건전 재정’을 제1 원칙으로 삼은 것은 성장 견인보다 위기 대비가 재정의 효용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지출 증가를 최대한 억제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빚과 적자를 통제하는 재정 준칙 법제화를 진행했다.

더불어 1년간 물가ㆍ고용 안정, 취약계층 복지 지출 확대 등으로 서민ㆍ약자의 민생을 살피는 한편,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동ㆍ교육개혁이나 반도체 등 첨단산업 및 전략기술 육성 등 미래 대비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기재부는 소개했다.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사이

자유를 강조하는 현 정부 시각에는 정부의 선도와 통제 시도가 자칫 직권 남용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깔려 있다. 하지만 정부가 불평등 해소를 적극 주도해야 마땅하다고 보는 관점에서는 현 정부의 자유 보장이 방임에 가깝다. 대기업ㆍ고소득자의 수혜가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는 감세와 복지 감소를 초래하는 재정긴축은 정부의 직무 유기나 마찬가지라는 게 진보 진영의 불만이다.

시각차는 윤 정부를 규정하는 전문가들의 열쇳말에서도 드러난다. 우호적인 쪽에서는 “규제 철폐로 인한 시장경제 활성화”(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나 “자유로운 경제 활동”(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으로, 못마땅한 축은 “자유방임주의”(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로 현 정부의 경제 정책 특성을 요약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덜 걷고 덜 쓰는 작은 정부”라며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로 소극성을 꼬집기도 했다.

작년 말 큰 위기가 별 탈 없이 지나간 게 정부 공로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레고랜드 사태 같은 위기 상황에 신속히 대응해 시장을 안정시킨 것은 인상적 대응이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통적 위기가 아닌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었던 데다 요인이 외부에 있었는데도 이 정도면 선방한 셈”이라고 했다.

각이 첨예한 대립 지점은 정책 기조 평가다. 한국이 경제 규모에 비해 세금 부담이 적고 복지 예산 비중도 작은 나라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증세를 추진해도 모자랄 판에 감세가 웬 말이냐는 게 진보 학계의 대표적 비판이다. 강병구 교수는 “경기가 하강 조짐을 보이는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세제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세수를 확충해야 물가 상승 억제와 재정의 지속 가능성 유지를 함께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물가를 끌어내리려 중앙은행이 통화긴축 정책을 펴고 있는 마당에 경기가 꺼지지 않게 막으려면 그나마 감세가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였으리라는 게 정부를 옹호하는 의견의 요지다. 성태윤 교수는 “지금 세금을 더 걷으면 침체 국면에 빠지고 있는 경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 강삼모 교수는 “삼성이나 현대차한테서 세금을 많이 걷으면 다른 나라 기업과의 경쟁에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감세의 투자 유인 효과는 여전한 논쟁거리다. “당장 투자가 늘지 않아도 향후 투자 확대를 위한 예방주사를 놓은 셈이라 법인세 인하는 적절했다”(주원 실장)는 호평과 “실증적 근거가 없는 투자 확대 주장과 달리 세수 감소는 명확한 사실”(하준경 교수)이라는 혹평이 맞선다. 다만 올해 세수 부족의 경우 경기나 고금리 탓이지 감세가 핵심 요인은 아니라는 게 정부 주변 얘기다.

“적어도 올해만큼은 재정을 풀어 경기를 살려야 할 때”라는 대답은 보혁 이구동성이었다. 주원 실장은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일은 그나마 경기가 나아질 가능성이 있는 내년으로 미뤄야 한다”, 성태윤 교수는 “지출을 줄여도 쓸 돈이 모자라면 국채를 발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하준경 교수는 “저출산 해결이나 공급망 재편, 에너지 전환 등 격변기 산업 정책 역시 당장 적극 투자가 필요한 곳”이라고 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명목만 민생 위기 타개였지 실제 정부가 수출 대기업 민원 해결 말고 한 게 뭐냐”고 반문했다.

정부 실행력에 대한 평가도 진영을 막론하고 박했다. 하지 않겠다는 것만 수두룩했지 나서서 무엇을 해 보겠다는 적극적 구상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책 색깔이 뚜렷하지 않다”(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1년간 보여준 개혁 성과가 없다”(성태윤 교수), “산업 경쟁이 심화하는 세계적 대전환기에 정부가 무엇을 할 것인지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하준경 교수) 등이 학계 질타다.

남은 임기 4년 경제 정책 성공의 관건은 추가 성장동력 확보라는 제언이 많았다. 김상봉 교수는 “반도체 비중이 절대적인 산업 구조 개선이 시급하다”며 “전략은 세계 경쟁력이 기준인 선택과 집중”이라고 했다. 힘든 때인 만큼 ‘사회 연대’라는 가치에 정부가 집중하면 좋겠다는 당부도 나왔다. 하준경 교수는 “신자유주의 가치에 매달려 부자 감세를 추진하다 취임 45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했다.

세종= 권경성 기자
세종= 변태섭 기자
세종= 박경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