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하기 좋은 나이가 있나

입력
2023.05.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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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이맘때 와인 따개 '안나 G'로 유명한 이탈리아 산업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2019년 작고)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얼굴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1931년생, 당시 그의 나이 84세였다. 몸에 밴 한국인의 인사 예절이 절로 튀어나왔다. 사진 촬영 때 어린아이들이 잘하는 양손 꽃받침 포즈를 취했던 일 등 그에 대한 몇 가지가 기억에 또렷하다. 특히 '나이'에 대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80이 넘어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비결을 묻자 그는 '너 그 질문 할 줄 알았다'는 듯 얼굴에 미소를 올렸다. "그 시기에 좋은 작품이 나오니까요. 우리가 하는 일이 그래요. 경험이 쌓여야 하거든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 내리 건축가로 살았던 그가 디자이너로 전향한 건 58세였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나이가 걸린다'는 누군가의 고민을 들을 때면, 요새도 그가 떠오른다.

최근 미국 워싱턴 정가에선 '나이 논쟁'이 한창이다. 내년 차기 대선에서 현재 만 80세인 조 바이든 대통령과 76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맞붙을 가능성이 커져서다. 이미 미국 역사상 최고령 현역 대통령 기록을 가진 바이든 대통령이 이겨 4년 더 일하면, 그는 86세가 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그 역시 80대 대통령으로 퇴임하게 된다.

우리보다 나이에 관대할 것 같은 미국도 '고령' 후보들에 대한 걱정을 숨기지 않고 있고 있다. 지난달 NBC방송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70%는 바이든 대통령의 출마를 반대했는데, 그중 절반가량은 반대 이유로 '나이'를 꼽았다.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도전 발표 후 뇌, 심장, 소화 기능 등 아예 의학적 관점에서 80대 건강을 파헤친 기사들도 나오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나이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유권자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지 여부가 차기 대선의 관건"이라고 했다.

7080 후보들의 리턴매치를 앞둔 미국인들의 걱정도 이해는 간다. '나이 운운'을 꼭 '나이 차별'이라고만 볼 순 없다. 대통령을 뽑는 일인데, 나이 역시 도마에 오를 순 있다. 하지만 건강 염려와 나이 공격은 구별돼야 한다. 노화의 과정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극히 개인적인 차이가 있는데다, '고령은 곧 결함'이란 인식이 나이 공격으로 나타날 때가 많아서다. 찰스 M 블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꼬집는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도 이미 최고령이었는데, 그동안 뭐가 달라졌나. 나이에 대한 공포는 정치권과 언론이 만들어낸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최고령 대통령의 정면돌파는 그래서 더 통쾌하다. 최근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나를 '고대인'이라고 하던데, 난 지혜로운 것"이라고 했다. 헌법 1조(표현·언론의 자유)를 신봉한다며 "내 친구가 썼기 때문은 아니다"라고도 했다. 200여 년 전 취임한 미국의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을 친구라 부를 정도로 나이가 많다는 걸 인정한다는 취지의 '미국식' 유머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선 "내가 몇 살인지도 모르겠다"고 농담을 했다. 스벤 푈펠 독일 브레멘 야콥스대 교수의 말을 떠올려본다.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실제로도 늙는 법이다."

조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