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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味·樂(휴·미·락)

미니멀리즘 음악, 삐딱하게 딴죽 걸기

예술의 역사는 앞 세대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는 저항의 역사와 같았다. 미니멀리즘 음악가들도 다르지 않았다. 기존의 관습에 의문을 던지며 파격과 혁신을 일으켰고, 자신을 향한 세간의 평가에 '그렇게 함부로 규정하지 말라'며 격하게 반발했다. 그러므로 미니멀리즘 음악가들은 '클래식 음악계의 이단아'라 불렸다. '똘끼'로 무장한 덕택에 예측 불가의 영역으로 음악 세계를 확장했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태동부터 삐딱했다. 2차 대전 직후 유럽의 주류 사조였던 전위음악에 대차게 반기를 들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황폐한 삶을 복잡하고 난해한 어법으로 투영한 전위음악이 미니멀리즘 음악가들로선 듣기 힘든, 심지어 참기도 힘든 음악이었다. 그래서 정반대 방향, 간결하고 단순한 음악어법을 추구했다. 화려한 기교나 불필요한 장식을 지양하고 음향의 최소 단위로 작품 전체를 구축한 것이다. 오로지 근본에 집중하면서 최소한의 표현이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기승전결의 서사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대신 무한한 반복과 미세한 변화로 음악을 전개했다. 그래서 미니멀리즘 음악은 '과정 음악'이라 불린다. 반항에서 출발한 혁신은 마치 거울 치료처럼 또 다른 저항과 싸워야 한다. 사람들은 미니멀리즘 음악가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비판했는데, 특히 사회적 문제를 외면하고 물질주의에 경도되었다고 핏대를 세웠다. 그러자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음성을 현악 4중주와 결합한 '다른 기차들(Diffrent Trains)'로 전쟁의 참상을 미국의 목가적 상황과 연결시키며 미니멀리즘 음악에도 시대정신이 깃들 수 있음을 생생히 증명했다. 이 음악가들은 '미니멀리스트'란 호칭마저 부정한다. 심지어 작곡가 필립 글래스는 '반복 구조의 음악을 쓰는 맥시멀리스트'로 불러달라 항변했다. 음표를 더하고 빼는 기법으로 반복 시스템을 무한 확장시켜 거대한 규모에 한정되지 않는 연주 시간으로 승부했다. 미니멀리즘은 최소화에 갇혀있다는 세간의 편견을 불식시키고 무한 증식이 가능한 맥시멀한 음악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단아'의 사전적 의미는 전통이나 권위에 맞서 혁신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다. 미니멀리즘 음악가들은 과거부터 이어진 기존의 관습뿐만 아니라, 현재 자신을 규정하는 세간의 평가에도 발끈했었다. 규정지을수록 청개구리처럼 정반대쪽으로 튕겨 나간 덕택에 음악의 지평은 그만큼 더 창의적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발칙한 '똘끼'로 새로운 영감을 제공할 우리 시대의 이단아는 누구일까.

아침을 열며

이민청 신설, 원래 민주당이 주도했다

D-12일. 22대 국회 개원까지 남은 시간이다. 300명의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지금쯤 개원 준비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이미 총선 이튿날인 4월 11일 국회의원회관에는 개원종합지원실이 마련돼 의원 등록, 의원 배지 배부, 국회 출입증 발급 등의 업무를 원스톱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런 업무들도 중요하나, 당선자들은 국민들을 위해 어떤 법안을 발의하고, 어떤 의정활동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데 개원까지 남은 시간을 써야 한다. 그것이 186가지에 이르는 국회의원 특권을 허락한 유권자에 대한 예의다. 22대 국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그래서 1호로 통과시켜야 할 법안은 이민청 신설이다. 이민청 신설은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공을 쏘아 올린 후 이민정책 국민참여단 토론회 개최, 출입국 이민 관리 체계 개선 추진단 출범 등 지난 2년여 동안 논의가 계속됐으나, 최근 그 동력을 상실한 듯하다. 21대 국회에서 국민의힘 소속의 이명수, 김형동, 정점식 의원과 정의당 이자스민 의원이 이민청 신설 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제대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임기 만료로 폐기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문제 1) 저출생, 고령화, 저성장, 노동력 부족, 지방 소멸 위기 등 사회 문제들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은? 문제 2) 문화적 동질성 훼손, 외국인 범죄 증가, 내국인 일자리 잠식, 국가안보 위협 등의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은? 두 문제의 답은 모두 이민이다. 이민은 우리 사회의 시급한 사회문제를 풀어낼 '해결책'이 될 수 있는 동시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민 이슈를 문제 1과 문제 2처럼, 지나치게 장밋빛으로, 또는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주를 양극화해 단편적으로 보기보다는 통합적인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민 문제에 대해 장기적ㆍ체계적ㆍ종합적인 관리를 하는 이민청의 신설이 필요하다. 사실 이민청은 민주당에서 주도했던 사안이었다. 20여 년 전인 참여정부 시절부터 출입국관리국을 이민청으로 확대 개편하자는 목소리가 있었다. 2019년 백재현 전 의원 등 민주당 의원 11명이 출입국ㆍ외국인청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7년 대선 공약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022년 대선 공약으로 이민정책 컨트롤타워 설치를 제시했었다. 이번 4·10 총선에서도 박지원 민주당 당선자가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계절노동자 확보를 위한 '출입국·이민청 호남본부'(가칭) 유치를 공약했다. 여당과 한동훈이 밉다고 거대 야당 민주당이 이제 와서 이민청 문제에 등을 돌린다면, 그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체 인구의 약 4%가 외국에서 태어난 이주민으로,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국가들(약 15%)에 비하면 아직은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 비율은 앞으로 빠르게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타국으로 이민을 많이 떠나는 나라에서 이입국으로 전환됐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반짝이는 금배지를 단 당선자들은 남은 12일 동안 이주하는 인간, '호모 미그란스(homo migrans)'로서의 인류의 삶과 그것이 국가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꼭 성찰하길 바란다. 그리고, 개원 후 국가 명운이 걸린 이 문제를 1호 법안 통과로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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