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이 '진화론의 아버지?' 알고 보니 중국에서 아이디어 얻었다

'Q. 세상을 뒤흔든 발견을 한 과학자를 세 명 꼽아보시오.' 이 같은 질문을 받으면 곧장 어떤 얼굴이 떠오를까. 1543년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한 폴란드의 코페르니쿠스? 1687년 운동의 법칙을 발견한 영국의 뉴턴? 19세기 '종의 기원'을 출간하며 진화론을 주장한 영국의 다윈? 20세기 특수상대성이론을 제안한 아인슈타인? 그렇다면 이들의 공통점도 찾을 수 있겠다. 바로 '서구 사회의 남성 과학자'라는 것. 아무리 합리적 지식의 총체로 여겨지는 과학일지라도 이론이 만들어지는 시대 상황이나 행위자의 성격 등과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 과학도 '인간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는 논리적일지라도 과학을 기록하는 역사나 실험 방법에 편향이 생길 수 있는 이유다. '유럽, 남성'이라는 과학에 대한 주류적 시선의 빈틈을 메우는 책 두 권이 최근 발간됐다. 책 '과학의 반쪽사'는 그간 서구 사회 중심으로 구축된 과학에 대한 세계관을 180도 전복한다. 이른바 근대과학의 태동시기라 여겨지는 1500~1700년의 유럽 이전에도 6개 대륙에 걸쳐 수많은 과학자와 그들로부터 축적된 지식이 있었고, 오늘날 잘 알려진 유럽 과학자들의 성취는 일정 부분 그것에 기대고 있다는 것. 저자는 "과학은 유럽만의 특별한 문화적 산물이 아니었다"고 단언한다. 가령 근대과학의 시발점인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살펴보자. 코페르니쿠스는 우주에 대한 정확한 모델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보다 먼저 천동설의 오류를 지적한 이슬람 천문학자들의 연구를 두루 살폈다. 18세기 유럽의 탐험가들은 새로운 지역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잉카 천문학자 등 토착민의 과학 지식에 크게 의존했다. 다윈 역시 자신이 진화론의 창시자가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윈은 명나라의 '본초강목'에서 기본 아이디어를 얻었음을 '종의 기원'에 언급하기도 했다. 책은 난생처음 듣는 과학자들의 인명사전이다. 이슬람 천문학자 나시르 알딘 알투시, 말라리아 치료법을 발견한 아프리카 노예출신 식물학자 그라만 콰시, 양전자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1936)을 받은 칼 앤더슨에게 초기 실험으로 영감을 주고도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 중국의 과학자 자오중야오... 왜 이리 많은 이들의 이름과 성과가 누락된 걸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과학에 대한 서술 역시 제국의 패권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과학은 노예제와 착취, 전쟁, 이데올로기 갈등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오늘날 인공지능(AI), 우주 탐사, 기후 과학 분야 등 첨단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책 '유인원과의 산책'은 각각 아프리카와 인도네시아에서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을 한평생 연구하며 동물행동학에 한 획을 그은 세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1991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후 한국에서는 두 차례 출간된 후 절판된 책은, 2009년 판본을 저본으로 삼아 재출간됐다. 제인 구달을 비롯해 다이앤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 같은 여성들은 고등교육기관에서 과학적인 훈련을 오랫동안 받은 적이 없다. 그렇지만 동물을 납치하다시피 해 온갖 화학 약물을 주입하고 고문을 방불케 하는 실험을 자행하던 당시 연구 방식에는 문제 의식을 느꼈고, 반기를 들었다. 남성 과학자들은 실험실과 같이 통제된 환경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반복 수행하는 일의 정량적 값을 매기는 방식이 객관적이고 완벽하다고 봤다. 하지만 탄자니아에서 침팬지를 연구하는 구달은 달랐다. 자신이 연구하는 침팬지에 번호가 아닌 이름을 붙이고 침팬지가 아프면 항생제를 주사한 바나나를 제공하기도 했다. 하염없이 기다리고 꿋꿋하게 관찰하며 개체의 상황을 이해하고 교감했다. 주류 남성 과학자들이 '아마추어'라 비웃었던 구달은 2010년 영장류 연구 50주년을 맞았다. 그는 자신의 방식을 끝까지 고수해 침팬지가 육식을 하기도 하며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그 전까지 도구를 사용한다는 건 인간만이 지닌 특징으로 여겨졌다. 이른바 겸손하고 수용적이며 여성적인 '소문자 과학(science)'을 지향한 구달은 이렇게 말했다. "과학을 대문자로 시작하는 권위적인 과학(Science)으로 보는 것은 나로서는 소름 끼치는 일입니다. 그건 사람을 기계로 만드는 과학입니다."

덕후가 쓴 '책을 향한 찬가'

동방세계를 정벌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페르시아를 무너뜨린 후 다리우스의 왕좌에서 가장 값비싼 보물 상자를 마주한다. “여기에 얼마나 값어치가 나가는 물건을 보관해야 할까?” 그가 물었다. 주변 사람들은 돈, 보석, 향수, 향신료, 전리품을 들먹였다. 알렉산드로스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에 잠기더니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을 상자에 보관하라고 명했다. 바로 아킬레우스와 트로이 전쟁을 다룬 역사서 ‘일리아스’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일리아스와 함께 자랐다. 어린 시절 그는 베개 밑에 단검을 넣고 일리아스를 품에 안은 채 잠들었다. 그는 신화 속 영웅들을 닮아가는 꿈을 꿨고 명성과 존경을 갈구했다. 알렉산드로스가 공포한 첫 번째 칙령도 “지구는 나의 것이다”였다. 그는 정말 그렇게 했다. 그리스어, 유대어, 이집트어, 이란어, 인도어로 쓰여진 책을 모아 도서관에 채웠다. 그건 세상을 소유하는 한 가지 상징적, 정신적 방식이었다. 고대 시대에도 한 권의 책은 곧 하나의 세계였다. 책 ‘갈대 속의 영원’은 책을 둘러싼 온갖 매혹적 이야기를 풀어놓은 에세이다. 그리스ㆍ로마 신화에 매료돼 고전문헌학을 전공한 스페인 문헌학자 이레네 바예호가 썼다. '책 덕후'답게 그리스ㆍ로마 시대를 뼈대로 고대와 현대, 종교와 역사 속 책 얘기를 오가며 독자를 흥미로운 책의 세계로 안내한다. 가히 책을 사랑하는 이가 모든 것을 바쳐 쓴 책을 향한 찬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스토리텔링이 몹시 능수능란하다. 들어보지도 못한 로마 작가 오비디우스에서 통제와 검열의 아이러니를 꺼내는 식이다. 오비디우스는 여성을 정복하기 위한 조언을 담은 ‘사랑의 기술’을 써 인기를 누렸다.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외설적이고 추잡하다’며 그를 유배시키고 모든 책을 파기한다. 저자는 이를 “유럽에서 도덕적 검열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면서 “검열이 제거하고자 하는 사상을 없애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콕 짚는다. 왜냐하면 황제가 금지한 '사랑의 기술'은 손에 손을 거쳐 현대 도서관에 꽂혀 있으니까.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지루할 틈 없다. 뒤통수에 문신을 새겨 말 그대로 ‘단 하나의 비밀 문서’를 운반한 고대 전령, 차별의 시대에도 자신의 언어로 존재를 증명한 여성 작가 사포와 클레오불리나 등 매력적인 인물이 속속 등장해 눈을 사로잡는다. 시각도 균형 잡혔다. 책은 인류를 진보시키기도 했으나 퇴보시키기도 했고, 영웅과 독재자의 손에 공평하게 쥐어지기도 했다. 강박적 문학 독자인 히틀러가 쓴 자서전 ‘나의 투쟁’은 전 유럽에서 열광적으로 읽히며 나치즘을 퍼트렸다. 문화 학살자 마오쩌둥은 서점을 운영하며 큰돈을 벌었고 혁명 자금으로 썼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꼰대 같은 얘기는 단 한마디도 없지만 주섬주섬 책을 챙겨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마술을 부리는 작품. 라틴 문학의 거장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걸작’으로 칭했다. “이 걸작에는 책과 독서에 대한 사랑이 배경처럼 숨 쉬고 있다. 여러분이 다음 생에서도 읽고 있을 작품이라고 확신한다.”

자유 외치는 BTS 지민·아이브, 그 이면엔 케이팝의 속박

'더 이상 아파도 숨지 않아/미치지 않기 위해 미치려는 것/지나간 나를 위해 손을 들어/나우 셋 미 프리(Now set me free)'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이 최근 선보인 첫 솔로 앨범 선공개곡 '셋 미 프리 파트2'에는 자유와 해방의 메시지가 담겼다. 지민이 직접 작사·작곡에 참여했다. 비슷한 시기, 그룹 트와이스도 같은 제목의 곡 '셋 미 프리'를 냈다. 뮤직비디오에선 멤버들이 진한 메이크업을 지워 버리거나 목걸이나 몸에 묶인 끈을 끊어내는 모습으로 자유를 향한 갈망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억압과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갈망하는 서사가 K팝의 화두다. 기획사에서 만들어진 이미지가 강한 K팝 아이돌들이 '진정한 나'를 찾겠다는 주체성을 찾는 변화다. 팬들도 호응한다. 하지만 아이돌의 '자아 찾기'의 이면엔 여전히 아이돌로 자라나며 겪는 속박과 대중의 모순적 시각이 존재한다. 주체적인 아이돌을 기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대중의 환상 사이에 놓인 K팝 아이돌의 모순이 표면화하고 있다. 아이돌의 메시지는 더욱 과감해지고 있다. 지난 27일 선공개된 4세대 아이돌 '아이브'의 '키치'엔 '자유'라는 단어만 21번 등장한다. '너의 의도대로 따라가진 않을 거야/난 똑똑하니까', '난 생겨먹은 대로 사는 애야' 등 가사는 직설적이다. 공개되자마자 국내 주요 음원 사이트인 멜론, 지니, 벅스에서 1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박희아 대중음악 평론가는 "아이돌이 자신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전하는 주체가 됐을 때 더 호응하는 팬층이 많아졌다는 변화를 방증한다"고 말했다. 선배 아이돌 세대에게도 자유는 하나의 키워드다. 엑소 멤버 카이가 최근 낸 솔로곡 '로버'의 콘셉트 역시 제목 그대로 자신을 속박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랑자'다. 서정민갑 대중음악 평론가는 "K팝을 향유하는 세대가 청소년에서 3040세대까지 확장된 지금 자아에 대한 고찰이 가사에 담겼을 때 공감대가 확장되고 아이돌도 입체적 캐릭터로 거듭나게 된다"고 분석했다. 아이돌들이 자유를 외치고 있지만 최근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 6화에서는 변하지 않은 케이팝의 이면이 그려졌다. 특히 눈에 띈 건 2세대 아이돌의 고백. 원더걸스의 멤버였던 선예는 "현역 아이돌을 하다가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최고의 배신자가 됐다"며 씁쓸하게 웃는다. 한창 인기가 절정기이던 지난 2012년 선예는 결혼을 발표했다. 선예의 선택을 두고 일부 팬들은 "그룹 활동에 폐가 된다", "이기적이다"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물론 K팝 시장도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 소속사들은 아이돌 연습생에게 어느 정도 자유를 보장하며 정신 건강 관리를 위한 상담도 진행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프로그램에서 K팝 팬들은 "심하게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내 아이돌이) 말랐으면 좋겠다", "연애할 수는 있지만 들키진 않았으면 좋겠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더 이상 아이돌일 수 없다" 등 일종의 아이돌로서의 '덕목'을 이야기한다. 사실상 '한 인간으로서의 아이돌'을 존중한다면서도 금기와 억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K팝 아이돌의 모순은 여전한 셈이다. '케이팝 제너레이션'의 스토리총괄 프로듀서인 차우진 대중음악 평론가는 "한국 사회에 구조적으로 자리 잡은 모순이 가장 극단적 형태로 드러나는 곳이 이 K팝 아이돌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K팝 종사자와 팬들도 K팝 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로 이 모순에 대해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차 평론가는 "K팝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게 되면서 받게 된 팬들의 피드백을 통해 다양성이나 젠더 측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진보해 나간 측면도 존재한다"면서 "K팝 종사자와 팬들이 함께 상호작용해 나가면서 점진적으로 K팝 시장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를 향한 아이돌의 외침이 공허해지지 않으려면 근본적인 시스템 변화도 필요하다. 김영대 대중음악 평론가는 "(소속사와의) 재계약을 강요하지 않는 것, 신인이더라도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 등 시스템적으로도 아이돌에게 '자유'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결국 의식 있는 제작자들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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