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 세상을 보는 균형

'최소 60개국' 이상 한국 지지 장담... 尹 “예측 빗나갔다” 전말은

2023.11.30 04:30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를 향한 부산의 도전은 29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함께 막을 내렸다. 초반 열세를 접전으로 이끌었다는 윤 대통령과 정부의 자신감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119표를 내주며 1차 투표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급기야 윤 대통령은 "예측이 빗나갔다"며 고개를 숙였다. 왜 상황을 오판한 것일까. 정부의 전략은 '2차 투표 올인'이었다. 경쟁자 리야드, 로마(이탈리아)에 비해 후발주자인 터라 1차 투표에서 로마를 제치고, 결선에서 로마 표를 흡수해 리야드와 승부를 펼친다면 '이길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다. 근거도 있었다. 정부와 민간이 '원팀'으로 움직여 지난 17개월간 182개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 모두와 대면 접촉했다. 그 결과 부산엑스포 유치위원회는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최소 60개국'이 부산을 지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1차 투표에서 리야드가 3분의 2(182개국 가운데 122개국) 이상 지지를 얻지 못하면 결선 투표로 가는데, 반대로 한국 지지가 60개국을 넘기면 최소 저지선을 확보하는 것이다. 앞서 3개국 이상 경쟁했을 경우 1차 투표에서 끝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립서비스로 우군을 확보한 것은 아니다. 문서로 한국을 지지한 국가도 상당수였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표결 직후 "서면으로 지지를 받은 나라들의 표수보다 나오지 않은 건 충격적"이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표결을 앞둔 시점에 이탈리아와 정상회담을 하고, 대통령과 총리가 총회 직전까지 유럽을 순방하면서 지지를 호소한 건 모두 이 같은 전략과 시나리오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우디의 물량 공세 앞에 전략은 무용지물이 됐다. 결전의 날이 다가올수록 유치위 내부에서는 "어쩌면 1차에서 끝날 수도 있겠다"는 부정적 전망과 함께 "실패했을 경우 국민들에게 설명할 논리를 미리 만들어놔야 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한다. 특히 국부펀드를 앞세운 사우디의 막판 스퍼트는 매서웠다. 경제적 지원을 넘어 '새로운 유형의 지원 약속'까지 등장했다는 후문이다. 사우디가 저개발국에 지원한 금액이 10조 원을 넘는다(유치위 자문 김이태 부산대 교수)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 소식통은 "한국을 지지한 나라가 사우디로부터 뒤로 돈을 받는 걸 알면서도 우리와의 외교 문제 때문에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었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사우디가 한국과 접촉한 BIE 회원국을 따로 관리한다는 말도 나와 불안감은 가중됐다. 정부 관계자는 "그럼에도 2차 투표로 간다면 승부를 걸 만하다고 봤다"면서 "포기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다만 '예견된 패배'와 '예상치 못한 참패'의 차이는 크다. 여론의 충격이 큰 이유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패인을 분석하고 개선해 나가는 후속 조치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치전 참패에 대한 책임 공방도 불가피해 보인다. 대통령실에 엑스포유치 전담기구로 만든 미래전략기획관실과 산하 미래정책비서관실은 해체 수순에 무게가 실린다. 아울러 정부와 민간의 판세 분석을 종합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해온 김대기 비서실장의 거취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다. 유임이 유력했던 박진 외교부 장관의 교체 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엑스포 충격에 고개 숙인 尹... 첩첩 난제에 험난한 연말

윤석열 대통령이 2030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실패에 고개를 숙였다.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직접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것은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 이후 처음이다. 당초 엑스포 개최지 투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연말 정국을 돌파할 동력으로 꼽혔다. 하지만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국정운영 부담만 가중됐다. 윤 대통령이 직접 '책임'을 언급하며 지체 없이 사과했지만 국내 상황은 이전보다 험난해졌다. 대규모 개각을 비롯해 각종 난제를 풀기 위한 셈법도 훨씬 복잡해질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29일 낮 12시쯤 전격적으로 담화문을 발표했다. 사전 예고는 없었다. 앞서 오전 1시 20분쯤 최종 탈락 발표가 나온 지 약 10시간 만이다. 브리핑룸에는 김대기 비서실장, 조태용 안보실장을 비롯한 수석급 참모들이 배석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중요한 국정과제에 변화가 있어 국정 책임자가 국민께 직접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사실상 밤을 새워가며 직접 담화문을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 3시로 예정된 국방혁신위원회 제3차 회의는 순연됐다. 사과 메시지에 집중하기 위해 일정을 조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만큼 이번 투표 참패에 따른 충격이 컸던 셈이다. 결과 발표 당시에도 대통령실은 40분이 지나서야 김은혜 홍보수석 명의로 "민관이 원팀으로 치열하게 노력했지만, 아쉬운 결과를 맞이했다. 밤늦게까지 결과를 기다리고 부산 유치를 응원해 주신 부산 시민과 국민 여러분께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는 짤막한 입장을 내는 데 그쳤다. 엑스포 투표 '1차 탈락'은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이 가장 우려하던 시나리오다. 2차 결선 투표에 진출하면 석패하더라도 그간의 유치 노력을 부각할 수 있지만, 큰 격차로 1차에서 승부가 결정될 경우 '따라잡고 있다'던 정부의 장담이 무색해지는 탓이다. 사우디와 격차를 무시하고 '출구전략 없이 총력전을 펼친 것이냐'는 지적 또한 피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의 잦은 해외 순방을 비판하는 여론이 확산될 소지도 있다. 엑스포 유치교섭을 명분으로 그간 다른 국가들과의 접촉면을 넓혀온 측면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유치에 실패한 부산·경남(PK) 지역 민심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엑스포 개최지 투표가 여권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꼽은 '주요 변곡점' 가운데 첫 번째라는 점도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당장 윤 대통령은 야당이 강행 처리한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여부를 내달 2일까지 정해야 한다. 기한 만료 직전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유력하게 점쳐지기는 하나, 더불어민주당과의 관계가 또다시 얼어붙을 수밖에 없어 고심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특히 다음 주부터 10명 안팎을 교체하는 개각이 순차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큰데, 이 또한 언론 검증과 인사청문회 과정을 감안하면 언제든 악재로 돌변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야당이 추진하고 있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소추, 쌍특검(대장동 50억 클럽 특검·김건희 여사 특검)에 대응할 방안도 찾아야 하는 처지다. 내년 초 국민의힘 공천 작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내부 지지층마저 요동칠 수도 있다. 딱히 호재를 찾기 쉽지 않은 구도다.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 이후 민생을 앞세워 국정기조를 틀면서 윤 대통령 지지율을 회복하는가 싶었지만, 여전히 40%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엑스포 유치전 참패가 자칫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물론 지역 염원이 담긴 국민적 이벤트인 데다, 민관과 여야가 함께 나섰던 엑스포 유치전 특성상 파장을 섣불리 단언하긴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민주당도 이날만큼은 날 선 비판을 자제한 채 격려와 위로 메시지를 전하는 데 주력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수차례 자신의 '부족'을 언급하며 발 빠른 사과에 나선 것이 상황을 만회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열세인 것은 알았지만 (사우디와) 표 차이가 큰 것에 실망이 많은 만큼, 왜 그랬는지 (엑스포) 유치위를 중심으로 개선 대책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이르면 30일 조직 개편과 함께 수석급 인사를 단행한다. '비서실·국가안보실' 체제를 '비서실·국가안보실·정책실' 체제로 바꾸는 등 변화를 통한 분위기 쇄신 가능성이 거론된다. 신설되는 정책실장엔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文정부 늑장 대응 탓", 민주당 "이게 尹정부 실력"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가 무산되자 여야는 "부산 시민께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며 일단 민심을 다독이는 데 주력했다. 또한 "외교적 자양분을 얻었다"(국민의힘), "대한민국의 도약은 계속될 것"(더불어민주당)이라며 앞다퉈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동시에 상대를 향해서는 날을 세웠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책임론을,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유치 전략 실패를 강조하며 '뒤끝' 공방을 벌였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29일 페이스북에 "온 국민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부산이 2030 세계박람회 개최지로 선정되지 못했다. 참으로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어 "뒤늦게 유치전에 뛰어들어 처음부터 불리한 여건으로 시작했지만, 유치 과정에서 'K컬처'의 우수성을 알리며 소프트파워 강국의 면모를 보여줬다"며 "이번 유치전에서 체득한 외교적 경험은 앞으로 대한민국이 글로벌 중추 국가 역할을 해 나가는 데에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82개 나라 정상에게 직접 엑스포 부산 유치를 홍보한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기업 국민이 혼연일체로 뛰었던 땀과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며 "민관이 일심동체가 됐던 이번 유치활동은 대한민국의 힘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부산 지역 의원들도 "부산시민의 뜨거운 힘은 식지 않을 것"(박수영 의원), "미래로 도약하는 계기"(안병길 의원) 등 위로와 격려 메시지를 보냈다. 일각에서는 유치 실패의 원인이 전임 정부에 있다는 주장을 폈다. 5선 서병수(부산 진갑) 의원은 페이스북에 "2018년 4월 기획재정부 국제행사 타당성 심사 통과 후 도합 4년을 문재인 정부가 손 놓고 있는 동안 사우디는 전 세계를 상대로 유치전을 펼쳐 온 결과라는 점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유치 실패가 내년 총선 부산·경남(PK) 지역 표심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 김 대표는 30일 부산 지역 현역 의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지역 민심 수습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비록 엑스포 유치는 실패했지만, 가덕도 신공항·광역 교통망 확충 등 남은 현안 사업들이 중단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홍익표 원내대표도 "많은 기대를 모아주셨던 부산 시민과 국민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부산을 비롯한 부울경 지역발전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은 계속될 것이다. 민주당은 가덕도 신공항 등 국가균형발전과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윤 정부의 '외교 무능'을 탓했다. 박성준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엑스포 유치 불발 결과가 충격적"이라며 "우리나라 외교 역사상 이렇게 큰 표 차이가 난 적이 없었다. 이번 결과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성호 의원은 페이스북에 "슬프지만 이게 무능, 무책임, 무대책 윤석열 정권 실력이고 수준"이라고 썼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한국 정부의 외교 성과와 정보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를 겸허히 돌아봐야 할 것"이라며 "국가 내실과 외교적 신뢰를 다져 이번 유치 실패를 대한민국과 부산의 심기일전 계기,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속보] 부산 엑스포 유치 좌절에... 한덕수 "기대 미치지 못해 송구... 무거운 책임감"

28일(현지시간) 오후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낙점되며 부산의 도전이 좌절된 것과 관련,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민 여러분의 열화와 같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송구스럽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날 한 총리는 프랑스 파리 시내 팔레드콩그레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 엑스포 개최지 최종 결과가 발표된 후 취재진을 만나 "2030 부산 엑스포를 위해 노력해주신 재계 여러 기업들과, 정부의 모든 분과, 부산 시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많은 분들의 응원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결과에 대해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가 그동안 182개국을 다니면서 가졌었던 모든 외교적인 새로운 자산들은 계속 더 발전시켜나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