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번 심장전기충격 받는 식물환자...누굴 위한 연명인가

입력
2022.03.21 00:00
26면

편집자주

국민 10명 중 8명이 병원에서 사망하는 현실. 그러나 연명의료기술의 발달은 죽음 앞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의료진, 회복불능환자 연명의료중단 의견
가족반대, 심정지 때마다 전기충격 원해
환자에겐 고통의 시간...'연명'재고해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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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후반의 한 여성이 의식을 잃은 채 119구급차로 응급실에 도착했다. 평소 심장 승모판 판막 질환과 부정맥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어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진 것이다.

먼저 119구급대원이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결과, 심장박동이 돌아왔고 호흡도 가능해졌지만 의식은 회복되지 않았다. 병원 입원 후 정밀 검사를 실시했다. 의료진은 심장 정지로 뇌로 가는 피가 부족해 결국 뇌가 손상된 것으로 최종 판단했다. 수개월이 지나도 상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환자는 결국 지속적 식물상태가 되어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오가며 장기 입원을 하게 되었다.

영양공급을 위해 위에 구멍을 뚫어 인공관을 삽입했고, 가래 제거를 위해 기관절개술도 시행했다. 식물상태의 환자는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인해 여러 합병증이 반복해서 발생했다. 특히 조절되지 않으면 짧은 시간 안에 사망하는 치명적 부정맥인 '심실성 빈맥'의 빈도가 증가했다. 여러 가지 약물치료를 시도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심실성 빈맥으로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질 때마다 심장에 전기충격을 가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전기충격으로 심장박동이 일시적으로 정상으로 돌아왔다가도 다시 심실성 빈맥이 발생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어떤 날은 하루에 100회 이상의 전기충격을 하는 때도 있었다. 전기충격은 심장박동이 정상화될 때까지 전류의 세기를 증가시켜야 한다. 때문에 환자의 앞가슴과 등의 피부는 심각한 화상을 입었고, 화상 부위에 2차 감염까지 생겼다. 환자는 자발적 호흡도 불가능해져 결국 인공호흡기까지 달게 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심장에 전기자극을 주면 심장마비나 부정맥을 정상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개발된 의료기기가 '제세동기'다. 제세동기는 심장에 전기충격을 가해 심장박동을 정상적으로 회복시켜준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부터 자동 제세동기(AED)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에 의무적으로 설치됐다. 지하철역 같은 장소에 가면 제세동기를 쉽게 볼 수 있다.

제세동기는 기본적으로 응급상황에 사용하는 기기다. 뇌기능이 거의 소실된 말기환자에게 사용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의료진은 환자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설명했지만, 가족들은 환자의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질 때마다 전기충격을 해달라고 계속 요구했다. 가족 입장에선 환자가 죽어가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으리라.

의료진은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반복되는 심장 전기충격으로 불필요한 고통의 시간을 연장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의료기관윤리위원회에 연명의료 중단을 요청하였으나 승인되지 않았다. 환자 의사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 환자 가족들의 동의가 있어야만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기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의료진과 가족의 의견이 일치하는 비율은 40%, 환자와 가족의 의견 일치율은 65% 수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은 연명의료의 대상이 되는 걸 반대하면서도 가족에게는 찬성하는 사람이 많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이후 그 환자에겐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100번 전후의 전기충격이 가해졌다. 185회 시행된 날도 있었다. 그리고 전기충격을 포함해 1시간30분이나 심폐소생을 받은 후에야 환자는 공식적으로 임종을 맞을 수 있었다. 심폐소생술 평균 시행시간은 30분인데, 마지막 날까지 그는 3배에 달하는 심폐소생을 받아야 했다. 가족에게는 환자를 하루라도 더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미 자기의사를 표현할 수 없게 된 환자도 과연 같은 생각이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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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대석서울대병원 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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