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과 거꾸로 가는 연방대법원

입력
2022.07.10 10:00
수정
2022.07.10 13:27
25면
연방대법원의 보수적 판결을 이끌고 있는 6명의 대법관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캐버노, 고서치, 배럿, 로버츠, 토머스, 알리토. 연방대법원

연방대법원의 보수적 판결을 이끌고 있는 6명의 대법관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캐버노, 고서치, 배럿, 로버츠, 토머스, 알리토. 연방대법원

때는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공립교육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는 것이 인종차별이라고 판결했다. 그리고 이후 20여 년간 대법원은 수많은 진보적인 판결을 쏟아냈다. 아울러 법학자와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결정하는 요인에 대한 논쟁도 시작되었다. 헌법과 법률 그리고 법 논리에 따라 판결한다는 법학의 기존 주장으로는 1960~70년대의 대대적인 진보적 판결을 설명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정치학에서는 법 이외의 이유, 특히 대법관의 이념과 정책적 입장에 주목했다. 예를 들면, 얼 워런(Earl Warren)이 1953년 말 대법원장에 취임한 이후 새로 임명된 윌리엄 브레넌(William Brennan), 서굿 마셜(Thurgood Marshall) 대법관과 손발을 맞췄는데, 이들 모두 상당히 진보적인 인사로 알려져 있다.

2001년에는 앤드류 마틴 교수와 케빈 퀸 교수가 미국 건국 이후 모든 연방대법관의 이념성향을 통계적으로 측정한 연구결과(Martin-Quinn Scores)를 발표했는데, 이 이념지표가 법 논리에 기반한 법학자들의 견해보다 미래의 대법원 판결을 훨씬 잘 예측하기도 했다. 이는 민주당 대통령이 진보적 대법관을, 공화당 대통령이 보수적 대법관을 임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는 역사적 사실과도 맥을 같이한다.

그런데, 최근 연방대법원이 미국 정치의 중심에 다시 섰다. 이번에는 보수적 판결을 쏟아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6월 21일에는 미션스쿨에 주 정부의 수업료 지원을 금지한 것이 위헌이라며 보수진영의 손을 들어줬다. 6월 23일에는 권총을 공공장소에서 휴대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한 뉴욕주의 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여성의 임신중지가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라는 1973년 '로 대 웨이드' 대법원 선례를 뒤집는 판결도 6월 24일 나왔다.

6월 27일에는 공립학교의 운동경기 이후 코치가 선수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기도를 못하도록 한 것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6월 30일에는 연방 환경청이 지구온난화에 대비하여 온실가스를 규제하는 것은 적절한 연방법에 근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앞으로 성소수자의 권리에 관한 판결이나 소수자 우대정책, 투표권 제한 등의 인종차별 관련 판결도 보수적으로 나올 듯 보인다.

세 가지 점이 눈에 띈다. 첫째, 대법관들의 정치적 이념이나 정책적 입장이 판결을 결정했다. 보수 6 대 진보 3의 구도가 예외없이 이어지고 있는데, 강성 보수로 알려진 클래런스 토머스(Clarence Thomas) 대법관이 주도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세 명의 보수 대법관 트리오가 적극 가담하는 모양새이다.

둘째, 법과 법 논리가 정치적 입장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다. 판결문의 다수의견을 분석한 법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하나의 법 논리를 적용함에 있어서 여러 사례들 사이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고, 특히 헌법상의 중요한 원칙에 관해서는 개인의 '이해'나 '견해'를 근거로 내세우는 빈도가 증가했다.

셋째, 이번 판결들은 국민 여론과 정반대이다. 30% 정도의 미국인들만이 공립학교에서의 기도 허용에 찬성하고, 낙태 관련 판결에 대해서는 62%나 반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대비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56%로 과반을 훌쩍 넘었고, 최근 거듭되고 있는 총기사고로 인해 총기규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위기에 빠진 미국을 구해내고 '건국 원칙'(자유)과 '신의 가르침'에 충실하게끔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민주주의가 위기인지 아닌지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박홍민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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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민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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